[탐방] 내전의 상처 남은 베이루트...디아스포라의 나라 레바논
[탐방] 내전의 상처 남은 베이루트...디아스포라의 나라 레바논
  • 베이루트=이종환 기자
  • 승인 2018.12.2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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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파간 증오가 15년 내전 초래... 아프리카중동회장단, 시리아 태권도 장비 전달차 방문
베이루트 시내 중앙에 있는 모스크 주변에 로마 유적들이 있다.
베이루트 시내 중앙에 있는 모스크 주변에 로마 유적들이 있다.

베이루트는 시가지 곳곳에 내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주택들이 몰린 곳은 물론이고, 심지어 번화가에서조차 총알과 포탄자국이 선명한 건물들이 텅빈 채 방치돼 있었다.

아프리카중동 회장단이 묵은 숙소 인근도 마찬가지였다. 자이투나이 베이로 불리는 아름다운 해변에는 요트정박장이 있고, 카페와 고급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었다.

이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거리에 흉물스럽게 방치된 고층빌딩이 있다. 내전때 무려 3천명이 죽어나갔다는 홀리데이인호텔이었다. 건물 벽에는 포탄 구멍들이 수없이 남아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짐작케 했다.

사회 구성원 간의 증오가 나라를 순식간에 망친다는 사실을 레바논처럼 뼈져리게 느낀 나라가 달리 있을까? 아프리카중동 회장단을 따라 베이루트와 부근 지역을 돌면서 이런 생각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프리카중동한인회장단은 12월19일부터 22일까지 레바논 베이루트를 방문했다. 시리아 국가올림픽위원회와 시리아태권도협회에 국제경기때 사용되는 전자호구 장비를 전달하러 시리아 인근 레바논을 찾은 것이다.

전달식을 마친 회장단은 베이루트 시내 관광에 이어 유명한 석회동굴도 찾았다. 석회동굴은 탐방노선이 이중으로 된 것이 특징이었다. 아래로는 배를 타고 구경할 있도록 했고, 위로는 도보로 동굴을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일행은 먼저 도보로 동굴을 탐방했다. 짧은 시간 케이블카를 타고 산중턱으로 올라가서 동굴을 걸어서 둘러보는 여정이었다.

동굴은 연중 22도로 온난한 기온을 유지한다고 했다. 종유석 형상을 따라 ‘거북바위’ ‘촛대바위’ 같은 이름이 붙어 있을 만한데도 전혀 없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동굴에서는 사진촬영도 금지였다. 사진기와 휴대폰을 동굴 입구 수납함에 맡겨놓고 들어가야만 했다. 동굴안 폭탄테러를 염려한 것일까?

“동굴 사진이 SNS로 나돌고, 바위들에 이름을 붙여 동굴의 스토리도 만들어져야 관광객도 더 많이 올텐데 이상하네요....”

일행들 사이에 이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왕복 1km 정도의 동굴을 돌았다.

제이타 석회동굴의 코끼리열차 앞에서
제이타 석회동굴의 코끼리열차 앞에서

동굴을 나와서는 코끼리 열차를 타고 아래쪽으로 가서, 다시 배를 타고 동굴을 보는 탐방이 시작됐다. 마침 전날에 비가 많이 온 탓인지 바닥 물길에는 물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머리조심...” “수구리...(고개를 숙이라는 경상도 방언)”

머리를 한껏 낮춰서 천정 낮은 곳도 통과하고, 양쪽 폭이 좁아 벽에 받칠 듯 배가 지나가는 곳도 있었다.

동굴은 산 중턱을 오른 계곡에 자리잡고 있었다. 동굴로 가기 위해서는 깎아지른 협곡도 스쳐지나야 했다. 내려보기만 해도 아찔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협곡이었다.

레바논은 국토면적이 10만평방km로, 남한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인구는 6백만명에 불과하다. 국토의 많은 부분이 산지인 탓도 있지만, 식민지시기와 내전을 거치면서 대거 해외로 이주한 탓이기도 하다.

“레바논은 디아스포라(이산)가 우리보다 더 심했다고 해요. 레바논 인구 몇배에 이르는 사람이 해외에 이주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심현섭 전 쿠웨이트한인회장이 얘기를 꺼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레바논 해외교민이 가장 많은 곳은 브라질이다. 브라질에만 600만명에서 7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민간 사람들의 후예들이다 우리 민족이 중국과 러시아 등지로 찾아 이산해서 떠난 것과 시기가 비슷하다.

2차대전후 독립하면서 레바논은 그야말로 황금시기를 맞는다. 중동지역의 석유자금이 몰리면서 개방된 금융도시로 번성한 것이다. ‘동방의 파리’로 불린 시기다.

‘레바논’은 페니키아어로 ‘하얗다’는 뜻이라고 한다. 해안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흰색 바위산, 일년의 절반을 하얗게 덮고 있는 산정상의 눈, 그리고 베이루트시가지의 하얀 건물까지 어울려 레바논은 지중해의 진주가 됐다.

하지만 오래 구가할 것같던 레바논의 영화를 1970년대 사회 내부의 종교 파벌간 증오가 일순간에 날려버렸다. 국경을 건너 밀려든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불에 기름을 덧부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을 두고, 국론이 갈리었다. 국민 절반을 이루는 기독교도와 무슬림의 의견이 달랐다.

주변국도 레바논을 가만두지 않았다. 친이스라엘, 친시리아, 친서방 정책을 두고 끼리끼리 갈라졌다. 무슬림 내부에서도 온건파와 강경파가 나뉘었으며, 시아파와 수니파의 잠재된 갈등도 폭발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걸친 15년에 이른 내전으로 국토와 민생은 황폐해졌다. 내부 민병대 파벌을 지원하는 이스라엘, 시리아의 공폭과 침공도 뒤따랐다.

내전기간 15만명에서 23만명이 죽었으며, 전인구의 4분의 1이 부상을 입었다. 수도인 베이루트는 동서로 갈려 싸웠으며, 길을 건너는데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 사이 베이루트에 왔던 금융기관과 해외 기업들은 두바이나 이집트로 떠나버렸다. 남은 것은 폐허와 깊은 상처였다.

시내 건물 곳곳에 총탄자국들이 남아있다. 내전의 흔적이다. 

레바논은 지금 새로운 번영의 기회를 잡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1천만명이 넘는 해외 동포들도 모국을 주시하고 있다. 인근 시리아가 내전을 수습하고 전후복구로 움직일 조짐도 희망적인 비전을 던지고 있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서로 미워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시가지 곳곳에 들어서 있는 보루와 이를 지키는 총든 군인들을 보면서 누군가가 말을 흘렸다.

이산의 아픔을 겪은 나라, 내전의 상처를 크게 안고 있는 나라.... 레바논은 그런 점에서 우리와 아주 비슷하다. 사회 내부의 불협화음도 남남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베이루트 다운타운에는 모스크와 동방정교회 성당, 개신교 교회가 서로 뒤섞여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화려한 트리로 장식한 거리에는 때맞춰 모스크의 독경소리가 울려퍼진다.

이처럼 서로 인정하고 관용하는 것이 공존하고 발전하는 길 아닐까? 베이루트의 거리를 찾은 아프리카중동 회장단의 머리를 맴돌았던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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