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코리안] 영화 ‘말모이’ 그리고 겨레말큰사전
[비바 코리안] 영화 ‘말모이’ 그리고 겨레말큰사전
  • 정길화(방송인, 본지 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14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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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영화 <말모이>가 화제다. 어느 덧 믿고 보는 배우가 된 류해진과 <범죄도시>의 장첸 이후 이미지 변신을 노리는 윤계상 등이 열연하는 가운데 갈수록 관객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다소 상투적이고 신파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새해 벽두에서 충분히 감동과 공감을 준다. 일제 강점기 하에서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는지 그런 가운데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려는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잘 그리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조선어학회, 우리말 큰사전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선어학회' 그리고 '우리말 큰사전'이다. 돌이켜 보면 한힌샘 주시경 선생의 웅숭깊은 뜻을 계승한 이극로, 최현배 등 일단의 연구자들은 조선어연구회, 조선어학회를 거치면서 ‘가갸날’을 제정하고, ‘한글’ 잡지를 발행했다. 이후 조선어학회는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로 하고 10여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말모이 작전'을 펼치게 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뚜벅뚜벅 그려내고 있다. 

영화 <말모이>에서는 역사적 사실의 많은 부분이 허구적으로 극화된 것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된 내용을 135분의 러닝 타임에 다루려니 압축과 생략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대중영화로서 흥행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한국말을 그냥 공짜로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분명히 깨닫게 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있다. 말이 있는 곳에 뜻이 있으며, 곧 독립의 길이 있다."(영화 '말모이' 중에서). 사전을 만들기 위해 말을 모으는 과정에서 전국 방방곡곡의 민중이 함께 노력하는 장면이 나온다. 팔도의 사투리가 필요하자 김판수(류해진 분)가 거리의 서민들을 몰고 온다. 이들은 사전에 등재될 표제어를 정하는 논의 과정에도 참여한다. 바야흐로 사람, 말, 뜻이 모이는 과정이다.   

주지하다시피 일제는 ‘내선일체’를 기치로 민족 말살 정책을 전개하여 일본어를 사용하게 하고 우리말 사용을 금지했다. '말모이 작전' 역시 일제에 의해 발각되고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1942년 10월 1일 이중화·장지영·최현배·이극로·한징·이윤재·이희승·정인승·김윤경 등 핵심인물 11명이 검거되어 함경남도 홍원으로 압송된 뒤, 1943년 4월 1일까지 모두 33명이 고문을 당했다. 이윤재, 한 징 등 두 분이 옥사하고 다수가 고초를 겪었다(다음백과, 이근호). 

사진은 마포구 공덕동 소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사장 염무웅 문학평론가).
사진은 마포구 공덕동 소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사장 염무웅 문학평론가).

해방 후 기적적으로 발견된 말모이 원고

당연히 그때까지 작업했던 사전의 원고도 일제에 압수되었다. 십수년 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해방 후인 1945년 9월 서울역 창고에서 이것이 발견된다. 필경 재판의 증거물로 함경도에서 송부했던 압수품이 방치되다가 포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적적인 스토리는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물로 여러 번 만들어졌고 <말모이> 엄유나 감독의 눈에도 띄었다. 엄감독은 "우연히 본 조선어학회 관련 다큐멘터리가 영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 원고를 토대로 1947년에 '조선말 큰사전' 1권(을유문화사)이 나온다. 이 사전은 나중에 '우리말 큰사전'으로 완간된다(1957). 우리말인 조선어가 말살되는 것을 막으려 온몸으로 저항한 일제 말기. 그때는 남과 북이 따로 없었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의 말은 체제와 이념에 따라 다른 길을 걸어갔다. 사전도 달라졌다. 남한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이 그것이다. '표준어'와 '문화어'는 서로 다른 남북의 언어적 상황을 웅변한다. 

제2의 말모이 정신, 겨레말큰사전

해방 이후 74년... ‘조선말 큰사전’을 만들던 일제하의 조선어학회 연구자나 당시에 함께 느꺼이 말을 모았던 갑남을녀들이 지금과 같은 광경을 보면 통탄할 일이다. 그들이 장차 이렇게 되라고 그렇게 어렵사리 ‘말모이 작전’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은 남과 북의 말이 서로 통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남과 북의 연구자들에 의해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은 1989년 방북한 문익환 목사가 씨를 뿌렸다.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가 2005년 2월에 남북의 연구자들이 금강산에서 공동편찬위원회를 결성하고 제1차 회의를 개최하면서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시나브로 진행되었고,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물살을 타기 시작해 이제 80% 정도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겨레말큰사전은 ‘민족의 언어유산을 집대성하고 남북의 언어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남과 북이 공동으로 편찬하는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다. 또한 ‘분단 이후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함께 편찬하는 첫 사전’이며, 남북의 겨레가 함께 볼 최초의 사전‘이다(겨레말큰사전편찬위원회). 이는 일제 말기 그 엄혹한 시절에 말모이 작전으로 우리말 큰사전을 만들던 올곧음을 되살리는 것이다. 겨레말큰사전은 제2의 말모이 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소개
정길화(언론학박사, MBC 통일협력사업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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