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物語-34] 신숙주의 유언
[유주열의 동북아物語-34] 신숙주의 유언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0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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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징비록에는 신숙주의 유언이 소개돼 있다. 신숙주는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을 형님 월산대군을 제치고 왕(성종)으로 추대한 인물이다. 신숙주가 죽음에 이르자 성종이 유언을 구했다. “원컨대 일본과 화평을 잃지 마시옵소서.” 신숙주의 마지막 말이었다.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와서 ‘해동제국기’를 저술하는 등 일본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신숙주(1417-1475)가 성종에게 당부한 것은 좋든 싫든 이웃 국가인 일본을 잘 살펴보고 그에 대한 대비를 강조한 것으로 생각한다. 임진왜란을 겪은 류성룡(1542-1607)이 신숙주의 유언을 언급한 것도 일본에 대해 유비무환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징비(懲前毖後 지난 잘못을 거울삼아 후일을 조심한다)한 것이다.

한일관계가 어렵다고 하지만 민간교류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매년 75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한다. 750만의 통신사가 다녀오는 셈이다. 이 많은 통신사들이 일본을 잘 살펴(知日)보고, 적절히 대비(克日)한다면 신숙주가 바라던 한일관계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도쿄에서 외교관으로서 3년간 근무했던 필자는 그 후에도 도쿄를 자주 찾았다. 도쿄에 갈 때마다 400여 년 전 아시아의 가장 변방의 작은 어촌이 오늘 날 세계 중심도시의 하나로 성장한 에도(江戶)와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을 기억하게 된다.

1590년 일본을 거의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이에야스에게 슨푸(駿府)에서 오다와라(小田原)에로의 전봉(轉封)을 제안했다. 오다와라는 중국의 함곡관을 능가한다는 천하의 험소(險所) 하코네(箱根) 동쪽에 있는 성(城)이다. 이에야스는 한 술 더 떠 오다와라보다 더 동쪽의 에도를 선택했다.

히데요시의 속내는 2인자 이에야스가 시골에 쳐 박혀 중앙정치에서 손 떼게 하려는 심산이었는데 이에야스가 에도로 가겠다고 한 것은 의심 많은 히데요시를 더욱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야스의 이러한 발상은 그가 존경하는 한고조 유방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본다.

진(秦)나라를 멸망시킨 항우와 유방은 라이벌 관계였다. 세력은 항우가 강했지만 진의 수도 함양을 먼저 점령한 유방은 덕치로서 민심을 얻고 있었다. 항우의 똑똑한 가신들은 홍문의 축하연에서 칼춤을 핑계로 유방을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우는 주저했다. 유방이 거절할 수밖에 없는 요구를 하여 그것을 빌미로 젊잖게 제거한다는 생각이었다. 항우는 유방을 한중으로 보내 한왕(漢王)으로 봉했다. 진나라 멸망에 공이 큰 유방에게 오지로 좌천시켜 더 이상 라이벌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처사였다.

유방은 기꺼이 받아들일 뿐만이 아니라 한중으로 가면서 진령산맥의 잔도(棧道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서 낸 길)를 모두 불태웠다.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보여주어 항우를 안심시켰다. 그 후 중국은 방심한 항우와의 싸움(楚漢大戰)에서 이긴 유방의 천하가 된다.

당시 에도는 이름 그대로 여러 개의 강이 바다로 나오는 습지와 갯벌로 김을 키우거나 물고기를 잡는 작은 어촌이었다. 도쿄의 히비야(日比谷)는 김을 키우는 대발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의 일왕이 거주하는 고쿄(皇居)는 바닷물이 넘실대는 해안가였다. 이에야스는 분노의 눈물을 흘리는 가신들을 다독거렸다. 불만을 터트리면 항명이 돼 히데요시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진다는 것이다.

에도가 오다와라의 일개 지성(支城)이라고 하지만 황량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에도는 동쪽과 남쪽은 바다로 연결되고 서쪽은 끝없는 억새밭이었다. 북쪽으로 지대가 약간 높아 그곳에 초가집이 몇 채 보이는 정도였다. 이에야스는 부하들로 하여금 칼을 내려놓고 괭이를 들도록 했다.

동남으로 바다를 메우기 시작했다. 바다를 메운 곳에 가옥을 지었다. 지금의 도쿄 중심부 절반 이상이 바다를 메운 곳이고 그곳에 인구가 집중해서 거주하다 보니 마실 물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물을 파면 소금물이 나와 물을 마실 수 없었다.

북쪽의 도네가와(利根川)는 수량이 너무 많아 여름이면 에도 전체가 물에 잠기게 한다. 도네가와의 물길을 동쪽으로 돌려 홍수를 예방하고 농사에 물을 댈 수 있는 거대한 평야를 만들었다. 주민에 대한 식량공급이 좋아졌다. 서쪽으로 다마가와(多摩川) 상류의 깨끗한 물을 상수로 끌어 와 집집마다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했다.

1592년 히데요시는 조선정벌을 위하여 규슈(九州)에 전쟁 지휘부를 설치하고 전국의 다이묘(大名 지방영주)들에게 군사를 차출했다. 그러나 에도를 개척하고 있는 이에야스는 열외 시켰다. 조선의 침략전쟁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가로 막고 육지에서는 의병이 명나라 지원군을 도왔다. 전쟁의 성과가 나지 않는 가운데 1598년 히데요시가 화병으로 죽자 무모한 침략전쟁은 끝이 났다.

1600년 이에야스는 비축된 실력으로 히데요시의 잔존 세력과 세키가하라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1603년 쇼군(征夷大將軍)이 되면서 에도에 막부(幕府)를 개설한다. 이에야스는 에도를 오사카 같은 대도시를 만들 계획을 세우자 가신들은 고등어를 키워 고래가 되게 한다고 믿지 않았다.

이에야스는 산킨코다이(參勤交代)를 실시했다. 에도를 건설해도 각 지역의 다이묘들이 와서 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들을 에도에 인질로 묶어 두면 배신도 막을 수도 있다. 정권의 안보를 위해서 일거양득의 득책이다. 다이묘들은 에도에 집을 짓고 가신들의 주거도 준비하는 등 에도의 주택 경기와 소비 경제가 활발해졌다.

다이묘들은 가신을 데리고 에도에서 1년 그리고 자신의 영지에 1년씩 보내는 이중생활을 했다. 에도와 지방을 왕복해야 하므로 막부는 전국의 다이묘를 동원하여 간선도로를 만들어 모든 길은 에도로 통하게 했다. 교통의 정비로 숙박시설이며 서비스업의 경제가 살아나고 지방과 에도와의 교류가 원활해 상업이 발달했다.

에도는 과거 가마쿠라(鎌倉)처럼 단순한 쇼군의 막부가 있는 군사도시(garrison town)가 아니었다. 한적한 어촌이었던 에도는 인구가 늘어나고 각종 산업의 발달로 대도회지가 되었다. 18세기에는 이미 인구 백만 이상의 종합 도시로 당시 세계 최대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에야스가 설계한 에도는 260여 년간 팍스(Pax) 도쿠가와(도쿠가와에 의한 평화)의 중심으로 오늘날 일본의 근간이 되었다.

일본 전국(戰國)시대의 3명의 영웅을 빗대어 하는 말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쌀을 찧고, 히데요시가 만든 떡을 이에야스가 먹어 치웠다.”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인내와 끈기를 가진 이에야스가 두 영웅을 제치고 마지막 승리자가 된 것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팍스 도쿠가와는 끝났다. 일본의 정치가 교토로 되돌아 갈 기회가 왔다. 1년 전에는 막부의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통치권을 조정에 반환했다. 정치의 중심은 일왕이 있는 교토가 되면서 에도는 동북에 위치하는 하나의 도시로 남을 뿐이다.

일본의 신정부는 일본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던 에도를 버리지 않았다. 에도를 동쪽의 교토라는 의미로 도쿄(東京)로 개명하고 공식적인 수도로 정했다. 도쿄에 왕권 강화를 위해 새로운 왕궁을 호화롭게 지을 수도 있었다. 신정부는 부국강병과 근대화를 위해 국가 재정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기에 왕을 위한 토목건축을 하지 않았다. 쇼군이 거주하던 에도성을 비우게 하여 일왕이 거주하는 궁성으로 정했다.

일본 근대화의 출발은 조선과 중국과는 달랐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서 왕권을 회복하자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 재건부터 시작했다. 왕권강화를 위해서 왕궁이 화려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천금 같은 국가재정을 쏟아 붓고 그것도 부족하여 무리하게 세금까지 징수했다. 중국(淸)도 왕실 권위를 세운다면서 불탄 이화원 재건에 국가재정을 낭비했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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