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74] 춘천막국수
[아! 대한민국-174] 춘천막국수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9.08.24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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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고향은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실례마을이다. 봄, 여름, 가을 많은 사람이 실례마을을 찾는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그 정경이 그림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김유정의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은 그 장면 하나하나가 삽화처럼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메밀꽃 필 무렵 달밤의 메밀밭을 보며 걷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의 작품에는 또 국수를 ‘눌러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금시로 날을 받아서 대례를 치렀다. 한 편에서는 국수를 누른다. 잔치 보러 나온 아낙네들은 국수그릇을 얼른 받아서 후룩후룩 들이마시며 색시 잘났다고 추었다.(산골나그네)”, “저 건너 산밑 국수집에는 아직도 마당의 불이 훤하다. 아마 노름꾼들이 모여들어 국수를 눌러 먹고 있는 모양이다.(솟)”

김유정이 묘사한 눌러 먹는 국수는 밀 반죽을 눌러 뽑은 면을 동치미 국물에 넣어 먹는 막국수를 말한다. 국수를 만들 때, 반죽을 치대 가늘게 뽑는 일반국수와 달리 글루텐이 거의 없는 메밀은 반죽을 국수틀에 넣고 눌러서 면을 만든다.

춘천시에서 발간한 ‘춘천백년사’에는 춘천막국수가 구한말 의병봉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 후 춘천에서는 의암 유인석 선생을 필두로 의병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 의기는 장했지만, 힘에 몰려 일본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의병들의 가족은 산으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화전을 일구며 연명해야 했다. 특히 춥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이 화전민의 주식이 됐다. 이렇게 막국수 제조·조리법이 개발되면서 이제 화전촌이 아닌 읍내에서도 메밀을 재료로 한 국수집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1968년에 무장공비의 거점이 될 수도 있는 화전을 정리하는 화전정리법이 발효하면서 춘천 도심으로 이주하게 된 화전민들이 생계 해결을 위해 여기저기에 막국수 음식점을 열었다. 이것이 춘천막국수 전문점의 시초다. 전두환 5공정권 때에 여의도광장 일원에서 ‘국풍81’이 열리면서 강원도의 대표음식으로 춘천막국수가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강원도 특화 음식으로 명성을 얻게 됐다. 지금은 춘천시내에서 80여곳의 막국수 전문점이 성업 중이고 중요 관광지는 물론 인근 경기도의 양평, 남양주 등에도 막국수집이 생겨났다.

막국수는 냉면처럼 쫄깃하지 않다. 쫄면처럼 매콤하지도 않다. 하지만 메밀 특유의 구수함과 담백함으로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막국수의 ‘막’은 ‘바로 지금’ 또는 ‘마구’라는 뜻이라고 한다. 메밀은 글루텐 성분이 적어 면으로 뽑아 삶으면 금방 불어터진다. 막(금방) 만들어 막(곧바로) 먹어야 해서 막국수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맷돌로 메밀을 갈아 분말을 만드는 과정에서 겉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은 채 막 가루로 만든 국수라고 해서 막국수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1930년대에 관(官)에서 제작한 지도를 보면, 춘천시 소양 고개 인근에 이미 ‘방씨 막국수’라는 상호의 식당이 표시돼 있다고 한다. 춘천막국수의 역사가 그만큼 길다는 것을 말해준다. 선조들은 국수를 만들 때 디딜방아나 맷돌 등을 사용하여 막국수를 만들어 먹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생산양식을 달리해서 맛이 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춘천막국수는 여전히 강원도의 대표음식이다. 춘천시 신북읍 산천리에는 ‘춘천막국수 체험관’이 있다. 거기에 가면 춘천막국수의 역사는 물론 만드는 방법 등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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