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③]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시를 노래하다
[홍미희의 음악여행 ③]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시를 노래하다
  • 홍미희 기자
  • 승인 2019.09.0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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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자 이수인 선생님과 함께 하는 살롱음악회

지난 8월31일 가을이 성큼 다가온 토요일 저녁 성산동 작은 사거리 모퉁이집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벌써 28회를 맞이하는 ‘성산동 살롱음악회’이다. 이 음악회는 ‘내맘의 강물’ ‘고향의 노래’ ‘별’의 작곡자 이수인 선생님 댁에서 다섯번째 토요일마다 열린다. 이수인 선생님의 가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수인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음악회이다. 모인 사람들은 소박한 일반인들이지만 내공이 깊은 일반인이다. 하나같이 합창을 하거나 가곡부르기 모임, 성가봉사 등을 통해 노래부르기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살롱음악회에 모인 사람은 30여명이 됐다. 이중 몇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수인 선생님의 가곡을 하나씩 연주했다. 사회자가 간단히 소개하는 형식으로 편하게 진행된 음악회였다. 가을이 다가와서 그런지 ‘고향의 노래’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내맘의 강물이’ 많았다.

음악회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이 더욱 고마워하는 것은 반주자이신 손세창 교수님이 각자의 음역에 맞춰 자유자재로 키를 바꾸어 반주해 주신다는 점이다. 그래서 높은 음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도 자유롭게 중저음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노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다. 사람들이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이수인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반주는 자기 고집으로 하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반주하는 거야. 아무리 피아노 잘 치는 사람도 못 맞추는 경우가 많거든, 손 교수는 참 잘하는 거야.” 사실 반주는 참 어렵다. 일단 기본적으로 연주실력이 밑받침돼야 하고 거기에 연주하는 사람의 특성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며 빛내주는 역할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소리를 나타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창을 불러보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상대방보다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이크 볼륨이나 울림까지도 서로 안 보이게 번쩍이는 실랑이를 하게 되니 말이다

중간에 특별출연으로 귀여운 초등학교 남자아이 둘이 이수인 선생님 작곡의 ‘솜사탕’을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이수인 선생님은 가곡 뿐 아니라 동요도 많이 작곡하셨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둥글게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나뭇가지에 실처럼 날아든 솜사탕~’ 등이다. 이런 국민동요를 작곡하신 것은 이수인 선생님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선생님은 1968년 KBS 어린이합창단의 지휘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동요를 작곡하셨다. 옆자리에 앉아 계신 선생님께서는 흐뭇한 표정을 손으로 살짝살짝 박자를 맞추고 계신다. 이 동요에 대한 사랑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1990년에 ‘파랑새 창작동요회’를 만들었고 이후 현재까지도 후배 작곡가들을 이끌고 있다.

선생님의 작은 거실은 일부는 의자에, 또는 바닥에 앉아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모습을 보며 살롱음악회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한다. 살롱이라는 단어는 옛날 서양에서 음악이 귀족과 왕실 중심이던 당시 살롱에서 주로 음악이 연주됐던 것에 기인한다. 이후 산업혁명이 일어나며 음악은 일반 사람들도 향유할 수 있는 것이 됐고, 당시 발명된 피아노는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가 만들어지면서 일반 사람들도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됐다. 그렇게 살롱 음악은 일반인에게 스며들었고, 이어 마이크와 앰프, 스피커의 발달은 연주장소를 대형 공연장을 이끄는 원인이 된다. 선생님의 거실에서 듣는 노래는 편안하다. 연주자들의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나를 안심시키는 사람도 있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너 노래해 보라고 보채는 사람도 없다. 그저 이수인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좋아하고 이해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본인의 아이가 KBS 누가누가 잘하나 노래자랑에 나갔을 때부터 인연을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는 분이 옆에서 말해주신다. “선생님을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 말이 맞다. 슈베르트 음악의 특징은 노래가 아름답고 가사, 시가 아름답고 거기에 반주가 아름다운 것 아닌가. 그래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예술가곡’, ‘리이트’라고 부른다. 슈베르트는 괴테의 시에 마왕을 작곡했고, 겨울나그네의 가사를 쓴 빌헬름 뮐러는 독일인의 사랑을 막스 뮐러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겨울나그네 중 제6곡 ‘보리수’의 피아노 반주는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을 묘사한다. 그런가 하면 오지 않는 소식을 기다리는 13곡 ‘우편마차’에서는 요란한 말발굽소리를 묘사한다.

이처럼 노래와 가사와 피아노가 하나가 돼 만든 슈베르트의 가곡과 선생님의 가곡은 서로 일치한다. 선생님의 노래는 참 서정적이다. 노래의 선율이 아름답게 흘러간다. 거기에 이병기 등 여러 시인의 시를 노랫말로 하여 만든 노래의 가삿말도 아름답다. 그중 이수인 선생님이 직접 가사를 쓴 ‘내맘의 강물’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절절하다. “수많은 날은 떠나갔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그리고 “국화꽃 져버린~”으로 시작되는 가을의 노래 전주는 또 어떠한가. 밤사이 몰래 내린 서리처럼 조용히 다가온다. 결국 노래는 시를 노래하는 것이다.

“정말 좋으신 분이예요.” 옛날 KBS 시절에 선생님 아래서 일하고 있던 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이 친구가 밖에서 식사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돈이 없어 선생님의 주머니에 쪽지를 써서 넣었단다. “선생님 친구가 놀러온다는데 제가 돈이 없어요. 조금만 빌려주세요. 1970년대는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돌아온 꼬기꼬기 구겨진 쪽지에는 지금으로 따지면 10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 있었고 쪽지의 뒷면에는 “갚지 않아도 된다”라고 써있었다고 했다.

요즘 일과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여쭤보자 “앉아있으면 조금 편하고~ 아까 얘기한 파랑새 동호인들이 모여서 작곡 의논도 하고. 뭐 그렇게 지내지” 장난기 섞어 어떤 사람이 질문한다. “위대하신 선생님들이 곡이 많잖아요. 대중가요하는 분들은 곡에 대한 인세를 많이 받는데 가곡은 어떤가요?” 옆에 있던 반주자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아쉬운건 노래방가서 내맘의 강물을 찾는데 곡이 없어서 못 불러요. 옛동산에 올라, 바위고개, 복음성가 같은 것도 있는데 선생님 곡이 없어요. 그리고 인세는 방송을 타는 경우에 나오는데 가곡은 방송에는 거의 안 나와서 아쉬움이 있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옛날 육영수여사가 돌아가셨을 때 ‘고향의 노래’가 매일 방송에서 나왔다고 한다. 국화꽃 져버린~ 가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다시 몇 명이 선생님 댁으로 돌아왔다. 다시 편하게 노래하는 것이다. 그중 두 명이 오 솔레미오를 중창으로 노래했다. 오랜만에 듣는 이태리 가곡이 선생님께는 자극이 됐나보다. “나도 샘나서 한 번 불러야겠다. 산타루치아 해봐” 반주에 맞춰 “술마레 루치카~” 하고 원어로 부르는 산타루치아에는 젊은 시절의 열정이 담겨있다. 참 노래 잘하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모님이 깜짝 놀라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7년 만이예요. 이렇게 노래부르시는 게, 옛날에 테너로 참 잘하셨어요.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이 많았어요.”

사모님께 여쭤본다.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나요?” “나는 다 좋았어, 내가 복이 많아. 선생님 안계셔봐 누가 나를 알아보겠어, 내가 부부동반으로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이 나를 호기심에 노래 시키면 우리 마누라가 노래 못하는데 그러면 안 되지. 하면서 당신이 대신 불러주셨지. 나는 못 잊어.“

피아노 반주를 하던 교수님이 한마디 하신다. “근데 피아노 참 잘 사신 것 같아요. 요즘 이런 야마하 없어요.” “응. 피아노하는 사람한테 샀어. 값도 싸고, 한 20만원...” 사모님이 “무슨~” 하며 큰 소리로 웃으신다. 역시 예술가답다.

문득 집안을 돌아보며 오래된 집임을 느낀다. 내겐 요즘 세상에 같은 집에서 오래 사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다. 얼마 전 부동산하는 분이 집으로 돈 번 사람들 등본을 떼보면 몇 장을 넘어간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옮기면서 돈을 버는 거라고.. 이 집은 선생님께서 40년 사셨다고 한다. 집의 오랜 역사를 알게 해 주는 여러 표식물들이 곳곳에 있다. 2002년 귀국연주회 포스터부터 2005년. 2015년 창원 연주회 등 벽에는 오래된 추억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지금은 창원으로 통합됐지만, 마산은 선생님이 고향이자 젊은 시절 활동하셨던 곳이다.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마산에 가서 교사를 하고 합창단을 지휘했다. 개인적으로 마산이라는 이름이 던져주는 묵직함. 날카로움. 문학. 낭만적인 것들이 창원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산업도시로 변해버린 듯한 아쉬움을 느낀다. 창원이 낳은 음악가, ‘이수인 가곡의 밤’은 올해로 12년째를 맞고 있다.

선생님께 질문한다. “정말 식상한 질문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곡은 어떤 건가요?” 1초도 망설임 없이 나온 대답 “별이지, 별이야” 다 같이 별을 부르며 가사 하나하나를 생각한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지금은 밤, 저녁에 시작한 살롱음악회는 어느덧 밤이 됐다. 선생님이 계속 건강하시길 빌며 성산동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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