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코리안] 담대한 상상, 연천 그리팅맨
[비바 코리안] 담대한 상상, 연천 그리팅맨
  • 정길화(방송인, 본지 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0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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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최북단에 있는 군(郡). 1945년 해방 이후 38선에 의해 남북으로 나누어졌다가, 한국전쟁 이후 38선 이북의 지역을 수복해 다시 남한에 속해졌다. 북쪽으로 군사분계선이 지난다...” 경기도 연천군에 대한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중부내륙의 접경지대라는 얘기다. 연천은 경기도의 군 가운데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고 한다.

연천에는 한반도의 경도와 위도의 중앙선이 만나는 ‘중부원점’이 있다. 한편 강원도 양구에서는 지도상으로 한반도의 대각선이 만난다. 그러다 보니 연천과 양구는 ‘국토 정중앙’의 타이틀을 놓고 각축을 벌인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내륙의 오지에 있는 두 곳이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브랜드를 두고 경쟁하는 셈이다.

연천에는 전곡리 선사 유적지를 비롯해 호로고루, 당포성과 같은 고구려 3대성 그리고 주상절리, 재인폭포, 두루미 테마파크 등의 명소가 즐비하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연천은 올해 유네스코로부터 임진강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선정되었고,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야말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이다.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DMZ 세계유산’에까지 등재되면 연천은 ‘유네스코 3관왕’에 오르게 된다.

대북전단 살포, 포격 사건 등의 연천

그런데 경기도에서는 제일 북쪽에 위치했다는 지리적인 이유때문인지 뜻밖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대북전단 살포와 그로 이한 총격전이다. 2014년 4월 10일에는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연천에서는 남북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날 한 탈북자 단체가 대북 전단을 대형풍선에 달아 날려보내자 북한군은 이 풍선을 겨냥해 총탄을 발사했다. 북한의 총격을 확인한 우리 군은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

2015년에는 북한이 연천 지역에 있는 우리측 대북 확성기에 포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북의 목함지뢰 폭파로 대북 방송을 재개하자 빚어진 이른바 '서부전선 포격사건'이다. 남측도 즉각 대응사격을 했고, 연천군의 횡산리와 삼곶리 주민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그런가 하면 반북 전단을 살포하는 단체와 이를 저지하려는 주민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연천은 본의 아니게(?) 대표적인 접적지역으로 부각되었다. 원래 연천은 행정구역(696㎢)이 서울(605㎢)보다 넓지만 98%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고 한다. 수도권에 속하면서도 전혀 수도권답지 않은 지역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는 없다. 연천에서는 지역발전과 이미지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16년 연강나룻길과 그리팅맨

2016년에 들어 연천군에서는 임진강변을 따라서 연강나룻길을 조성했다. 임진강의 옛 이름을 딴 연강나룻길은 군남댐∼옥녀봉∼중면사무소로 이어지는 7.7㎞ 탐방로다. 연천군은 이를 위해 민통선을 뒤로 물리고, 군남면 옥녀봉에 유영호작가의 그리팅맨(Greeting Man) 즉 '인사하는 사람'이라는 높이 10m의 대형 조각작품을 세웠다.

당시 그리팅맨은 2012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제1호 설치 이래, 파나마 파나마시티 등에 세워졌고 국내에는 강원도 양구, 제주도 다빈치 미술관 등에 설치된 상황이었다. 지구촌의 화합과 소통을 위하여 ‘고개숙여 인사하는 그리팅맨’을 지속적으로 세우는 작가의 글로벌 프로젝트가 한걸음씩 진도를 나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옥녀봉 그리팅맨이 고개숙여 인사하는 방향은 북한땅이었다. 2016년 4월 23일 연강나룻길 준공식에서 당시 연천군수는 "일단 연천에 그리팅맨을 세우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장차 북한땅에도 그리팅맨을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북을 향해 인사하는 그리팅맨을 연천에 과감하게 먼저 세운 것이다. 보수정당 소속의 지자체 장으로서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던 2016년

이때가 어떤 때인가. 2016년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던 무렵이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일지를 보면 이 해에 북한은 두 차례의 핵실험을 했다. "첫 수소탄 실험 성공"이라고 주장한 것이 1월의 4차 실험이다. 이어서 9월 9일에는 "핵탄두 표준화, 규격화"를 이루었다는 5차 실험이 있었다.

그뿐인가. 2016년 3월에는 800km 노동미사일을 발사했고, 8월에는 1000km를 비행하는 노동미사일을 발사한 바 있다. 9월에도 1000km 상당의 노동계열 미사일을 발생했다. 심지어 연강나룻길 준공식을 한 4월 23일에도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즉 SLBM을 발사했다.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 압박과 북한의 도발 강행 의지가 정면충돌 위기로 치닫고 있던 시기에 연천군과 유영호작가는 경기도 연천 옥녀봉에 그리팅맨을 세우고 이어서북한의 황해북도 장풍 마량산에 그리팅맨을 세우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이후 그리팅맨은 연강나룻길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과 9.19 남북공동선언이 나오자 그리팅맨은 선견지명의 작품이 되었다.

유영호 작가

접경지대에서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연천

올해 1월 연천군은 통일대비 노력을 먼저 준비할 것임을 밝혔다. 그동안 접경지역으로 인한 불이익을 이제는 군(郡)의 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 사이 지자체 장은 같은 당의 다른 군수로 바뀌었지만 정책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팅맨의 북한 설치 또한 계속 추진된다. 더욱이 그리팅맨 프로젝트는 이미 절반이 완성되지 않았는가. 향후 임진강 건너편 북녘땅 장풍군에 그리팅맨이 건립되면 남북에 서로 마주보고 인사하는 조형물이 탄생해 한반도 평화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상상이다.

경계선을 두고 두 그리팅맨이 마주보고 인사하는 작품의 구상은 2017년 에콰도르 에서 실험적으로 적용되었다. 적도선이 지나가는 카얌베(Cayambe) 시의 그리팅맨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올해 4.27 회담 1주년 기념 공연이 열린 판문점에 유영호 작가의 두 그리팅맨이 마주 보며 설치되기도 했다. 이 사이에서 중국 첼리스트 지안 왕이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고, 악동 뮤지션의 수현은 노래를 불렀다. 하룻밤의 공연 후 판문점의 작품은 철거되었지만 ‘마주보는 그리팅맨’은 이미 우리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연초의 큰 기대에 비해 목하 교착된 북미관계의 연장선에서 남북관계에도 불가피하게 지체와 기복이 있다. 섣부른 낙관도 비관도 금물이다. 연천 그리팅맨은 남북관계에서는 일희일비가 아니라 의연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연천의 소망도 그러하다. 곧 방송될 MBC 특집다큐멘터리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은 연천군과 유영호 작가의 담대한 상상과 도전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필자소개
정길화(방송인, 언론학 박사, MBC 중남미지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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