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영원히 나의 가슴 속에 묻어 있는 김우중 회장님을 떠나 보내며...
[해외기고] 영원히 나의 가슴 속에 묻어 있는 김우중 회장님을 떠나 보내며...
  • 조홍선 전 나이지리아한인회장
  • 승인 2019.12.1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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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에서 버스공급사업을 하고 있는 조홍선 전 나이지리아한인회장의 사무실에는 김우중 회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슬픈 소식이 카톡에 와 있었다. 김우중 회장이 타계하셨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재기하지 못하고 이제는 영원히 오실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구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유(?)를 떠나시기 직전인 1999년 7월 집무실에서 마지막으로 뵈었던 초췌하신 모습이 떠올랐다.

김우중 회장은 나이지리아에 굉장히 애착이 많으신 분이었다. 우리나라가 나이지리아와 수교한 것이 1980년인데 이미 대우건설이 1978년에 진출해 석유사업 관련 수주를 하여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대우 과장 3년 차인 1997년 2월20일 대우자동차 나이지리아 법인장으로 부임했는데 그때 나이지리아는 완전히 대우 바닥이었다.

대우무역, 대우건설, 대우자동차가 나이지리아를 휩쓸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은 7번째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1993년 이후 집권하고 있던 SANY ABACHA 였다. 그런데 그가 1998년 6월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후 극심한 혼란을 겪고 1999년 사상 첫 문민정부 대통령으로 OLUSEGUN OBASANJO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아프리카 54개국 정상뿐만 아니라 서방국가들의 지도자 등 수많은 VIP가 5월29일 취임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나는 5월 초 당시 당선자 신분이었던 그를 찾아갔다. OTTA FARM에 있는 집에서 만난 그는 나를 보자 대뜸 “내 친구 잘 있는냐”고 물었다. 어리둥절한 나에게 그는 “내 친구 Mr. Kim…”하고 말했다. ‘아~~ 김우중 회장님을 이미 잘 알고 계시는구나…’

그는 1980년대 초반 대우를 방문해 김 회장으로부터 각별한 환대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조만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즉시 회장실에 보고했다. 그런데 회장실에서 뜻밖의 전갈이 왔다.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나면 늦으니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취임식인 5월29일 이전에 회장과의 만남을 주선하라는 내용이었다.

‘오바산조 당선자가 취임일 이전 엄청 바쁠 텐데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랬더니 뜻밖에 거기서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날짜는 5월22~23일로 결정됐다. 호떡집에 불이 났다. 김우중 회장의 경호나 의전은 이곳에서 대통령급에 가까운데, 불과 10여 일을 남겨 놓고 어떻게 준비하나… 10여 일간 난리를 치며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회장실에서 연락이 왔다. 갑자기 못 가시게 됐으니 대통령실에 잘 이야기하라는 내용이었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여러 궁리를 한 끝에 당선자 측에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신데 대통령의 심부름으로 급히 다른 나라에 가야 해서 부득불 못 오시게 됐다”고 양해를 구했다. 대통령실에서도 흔쾌히 ACCEPT를 하면서 이른 시일 내에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얘기해서 잘 마무리됐다. 그러나 결국 대우사태로 인해 김 회장은 영영 나이지리아에 오시지 못했다.

김 회장은 항상 한발 앞서 멀리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대우는 나이지리아 정부와 이동 통신사업 계약을 체결해 놓은 상황이었는데 ‘먹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이동 통신사업이 되겠느냐’고 모두 회의적으로 생각한 사업이었다. 결국, 대우그룹 해체로 동 사업은 다른 업체로 넘어갔는데 그 후 이동 통신사업은 대박이 나 아직도 나이지리아 최대의 사업이 됐다.

김 회장의 일에 대한 열정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대우자동차 내수 판매를 증진하기 위해 국내에서 중고차를 비싼 값에 사서 중고차 시장이 큰 나이지리아에 원가로 팔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또 김 회장은 말을 빨리하기로 유명하다. 한번은 대우가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어느 국가를 방문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회의를 마치고 나오셔서 관계자들에게 지시했다. “이거는 말이야 이렇게 하고, 저거는 말이야 저렇게 하고… !@#$%&···” 결국 회장님이 떠나고 나서 관계자들은 ‘독해 회의’를 해야 했다.

말씀하신 정확한 발음부터 그 진의까지…. 뿐만 아니라 김 회장은 식사를 빨리하기로 유명했다. 비서실장을 6개월 이상하면 위장병에 안 걸리는 사람이 없어 6개월을 버티기가 힘들 정도였다. 특히 해외에서는 식사 시작하시는 것을 보고 컵라면에 물을 부으면 면이 붇기 전에 이미 나오셔서 컵라면을 든 채로 회장님 뒤를 쫓아가야 했다.

한편 김 회장은 참 검소한 사람이었다. 한번은 본사에서 법인장 회의를 마치고 회장님이 몇몇 법인장만 힐튼호텔 중식당으로 초대했다. 우리는 특별히 몇몇 법인장만 초대받은 것이라 산해진미를 꿈꾸며 참석했다. 그런데 메뉴는 고작 요리 2~3개와 짜장면이었다. 그 대신 김 회장은 일 이야기만 열심히 했다. 결국 우리는 식사 후 모두 소화제를 먹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김 회장은 참 따뜻한 정이 많은 분이었다. 내가 회장님을 마지막으로 집무실에서 면담한 1999년 7월은 대우사태로 숨 가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회장님은 ‘어려운 곳이니 건강에 주의하고 가족들 잘 챙기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그해 11월, 나는 회사로부터 임직원에게 보내진 “대우가 살아온 지난 세월에는 국가와 명예와 미래를 지향하는 꿈이 항상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으나 오늘 우리의 명예는 날개가 꺾이고 말았다”고 비통해하는 회장님의 편지를 읽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지금 아직도 나이지리아에서 대우의 간판을 달고 사업을 한다. 그 덕분에 나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위로의 조문 전화를 받았다. 대우가 해체된 지 2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곳 나이지리아에는 대우와 김우중 회장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다. 

내가 지난 30여년을 오직 '수출보국'의 일념으로 살아 온 것도 그분의 영향이 컸다. 이제는 어쩌면 아직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집무실에 걸려 있을지 모르는 회장님 사진을 떼어내야 할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회장님을 불러 본다. “회장님…. 이제는 아무런 근심 걱정 없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천국에서 마음껏 하시고 싶은 일을 펼치시기 바랍니다.”

조홍선 전 나이지리아한인회장
조홍선 전 나이지리아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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