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영승의 붓을 따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9.1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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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말하기 싫은 아린 사연 하나를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내 출생과 관련한 일로 비밀 아닌 비밀이기도 했다. 물론 가족과 친지들은 그 사연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내가 어떤 애환을 겪으며 살았는지는 구체적으로 다 알지 못한다. 어릴 적에는 모르고 자랐고, 철든 후에는 부모를 몹시 원망도 했다. 비록 동족상쟁의 참화로 빚어진 비극이지만 왠지 내 인생의 부끄러운 단면인 것 같아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한 때 사실을 밝히며 상대보다 내가 연장자임을 주장한 적도 있으나 결과는 무의미 했으며 자존심만 상했다.

내 호적상 출생일은 1955. 1. 10일이다. 하지만 실제 출생일은 6.25 전쟁 발발 81일 후인 1950. 9. 14일이다. 정확히 4년 3개월 26일이 늦다. 당시 집안 어른 한 분이 마을 이장이셨다. 아버지께서 형들 때와 마찬가지로 그분께 출생신고를 부탁했단다. 그런데 전시 중이라 그분이 그만 깜박했으며, 그 후 전사했다. 당연히 출생신고가 되었으리라 생각한 아버지는 확인을 하지 않았으며, 5년 뒤 태어난 늦둥이 동생 출생신고 시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그때 내 출생신고를 하고, 동생은 1년 후에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호적 정정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관련서류를 준비해 관계기관에 접수하려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호적이 수정되는 즉시 입영영장이 나온다는 것이다. 나와 비슷하게 출생신고가 늦게 된 같은 반 친구가 이를 모르고 호적을 정정해 바로 입대한 사례가 있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감당이 되지 않아 포기 했으며, 이후부터 본래 나이는 생각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호적이 늦어 겪은 애환은 수없이 많으나 선배와 있었던 일화다. 코오롱 입사시험을 치기위해 구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과 인사를 하고보니 같은 수험생인데 고교 4년 선배였다. 당시 나는 사회에서의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를 잘 알지 못했다. 대화 말미에 내가 먼저 “제가 호적이 5년 늦어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데 말을 트고 지내시죠.”라고 했다. 선배는 기가 찼던지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그러던 가 ~”하고 좀 못마땅하게 대답했다. 시험 결과 두 사람 모두 합격했다. 회사 내에는 동문회가 있었는데 4년 선배와 말을 놓고 지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른 동문들이 있을 때는 말을 가급적 피했으며, 어색한 관계가 지속되었다.

1년쯤 지나 그 선배가 한전 입사시험에 합격해 김천으로 갔다. 다음해 나도 한전에 입사해 안동으로 발령받았다. 안동에는 4년 선배가 세 명 있었다. 미리 불편을 경험한 나는 그분들에게 깍듯이 존칭을 썼다. 어느 날 김천에 근무하던 선배가 안동으로 발령받아 왔다. 선배 동기 세분이 환영회를 한다기에 나도 함께 갔다. 내가 그 선배에게 말을 놓자 다른 선배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졌다.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김천 선배가 “호적이 늦어 그렇지 나이는 우리와 비슷하며, 코오롱에서 같이 근무할 때 말을 놓고 지냈으니 이해하라.”고 했다. 그러자 한 선배가 “우리는 모두 동기인데 누구에겐 말을 놓고 누구에겐 높일 수 없으니 오늘부터 말을 고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으며, 난감했던 분위기가 해소 되었다. 그 후부터는 1년 선배라도 무조건 말을 깎듯이 높이게 되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다. 타 사업소로 전근을 갔더니 54년생 직원이 자기보다 나이 적은 직원이 와서 반가웠는지 첫날부터 마치 동생 대하듯 반말을 했다. 호적 얘기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네 살 적은 사람에게 말을 놓고 지내기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존칭을 썼다. 그는 나를 예의바른 후배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그가 어찌 알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도 존칭을 쓰기 시작했다. 아마도 누군가로부터 내 호적이 늦은 정보를 들은 것 같았다. 서로 존칭을 쓰며 원만히 지내게 되었다.

호적나이로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수 없었던 부모님은 나를 2년 조기입학 시켰다. 그래서 동기생들보다 실제 나이는 두 살 정도 많고, 호적 나이는 두 살 정도 적다. 그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도 친구들이 나를 놀릴 때는 가끔 주민등록증을 까자고 한다. 학창시절 그 말에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내 나이 또래 중에는 호적이 한두 살 늦은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다. 서너 살 늦은 사람도 간혹 있다. 그 사람들을 보면 동병상련인 듯 친근감을 느꼈다. 직장 내에 호적이 나보다 1년 더 늦은 사람도 한 분 있었다. 그 분만 생각하면 위안이 되었다.

호적이 늦은 덕분에 현역복무를 합법적으로 면제 받았다. 입대가 늦어지는 사이에 군 특례법이 제정된 것이다. 기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기간산업체에 근무하면 5년 근무 조건으로 군부대에서 기초훈련만 4주 받은 후 예비군에 편입되는 제도다. 호적이 늦음으로 인해 회사에 4년 반을 더 다녔으며, 그 사이 정년이 연장되어 또 2년을 더 다닐 수 있었다. 3년간 현역면제까지 감안하면 돈으로 환산해도 실로 상당하다. 그래서 나는 퇴직 후 재취업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버지는 실로 선견지명이 계셨나 보다. 그토록 원망했던 부모님을 후일이렇게 감사할 줄 내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인생만사 새옹지마’와 ‘전화위복’이라는 말은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긴 세월 가슴속에 묻고 살았던 내 출생의 아린 사연을.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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