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83] 선비 정신
[아! 대한민국-183] 선비 정신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20.04.2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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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1910년 9월,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탄했다. 구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매천 황현(1855~1910)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절명시 4수를 지어 놓고, 자제들에게 남기는 편지를 썼다. “… 500년 동안 나라에서 선비를 길렀는데도, 그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순절하는 자가 없다면 어찌 비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위로는 하늘의 떳떳한 도리를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평소 읽은 책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죽음에 임하니 참으로 통쾌하리라. 그러니 너희는 슬퍼하지 말라.” 글을 다 쓰고 나서 독약을 가져와서 삼켰다. 이때 남긴 그의 절명시는 선비가 어떠해야 되는가를 귀감으로 두고두고 일깨우고 있다.

鳥獸哀鳴海岳嚬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세계는 망하고 말았구나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역사를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세상에서 글하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구나

여기서 그가 말하는 “글하는 사람”(識字人)이 바로 선비다. 선비란 안으로 자신을 닦고 공부하며, 밖으로 사람을 다스려(修己治人), 이 땅에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성리학인(性理學人)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먼저 자신의 몸을 닦고 가다듬어 가정을 가지런히 하고 난 연후에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행동규범이요 목표였다. 벼슬에 나아가는 것(治人)이 출(出)이고, 돌아와 자기를 닦음(修己)이 처(處)다. 이때 처가 본(本)이요, 출이 말(末)이다. 조정에 나아가 나라를 다스리는 이를 사대부(士大夫)라 일컬었고, 돌아와 다시 자기를 닦는 이를 일컬어 선비라 불렀다.

이들은 나 자신을 이겨내어(克己) 더불어 함께 인간답게(復禮) 사는 것을 삶의 규범으로 삼았으며, 그렇게 하여 마침내 이 세상에 세우고자 하는 유토피아가 대동사회(大同社會)였다. 그러기에 자신에게는 엄격하고(薄己), 남에게는 관대한 것(厚人)을 그들의 생활 덕목으로 삼았다. 홀로 있을 때도 스스로 삼가하고 가다듬었으니(愼獨) 꼿꼿한 지조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기개, 옳은 일을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불요불굴의 정신력, 언제나 깨어 있는 청정한 마음가짐이 선비의 특징이었다. 그것이 곧 한국의 선비 정신이다.

그러한 삶을 산 대표적인 사람이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이었다. 그는 안으로 마음을 맑게 경(敬)을(內明者敬), 밖으로 단호하고 과단성 있는 의(義)를(外斷者義) 지향, 방울을 차고 다니면서 그 소리를 들으며 늘 스스로를 가다듬고 깨우쳤으며, 칼(敬義劍)을 머리맡에 두고 정의로운 결단을 생각했다. 그는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이는 배우지 않음만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악을 범하는 것이라 하여, 학문을 익히는 것 못지않게 실천을 중시했다. 서양에 기사도 정신이나 청교도 정신이 있고, 일본에 사무라이 정신이 있다면 한국에는 선비 정신이 있다.

매천 황현[사진=국립전주박물관]
매천 황현[사진=국립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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