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표’ 퓰리즘(populism)
[선비촌만필] ‘표’ 퓰리즘(populism)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20.05.1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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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선거를 치르고 국회의원이 된 지인들은 말했다. “국민 앞에 전인격을 걸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소명의식으로 선거에 나간 당초의 결기가 선거 중반전이 되기도 전에 이미 민의(民意)에 영합해 과장되고도 달콤한 공약으로 승부를 걸게 되더라”는 고백을 듣곤 했다.

“선거에 나온 후보라면 주목을 받고 보자는 식의 선정적 포퓰리즘의 유혹을 외면하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지난 4월 총선 과정에 핫 이슈로 떠오른 ‘재난 지원금’을 두고 포퓰리즘 논쟁이 뜨겁다. 정치학이나 선거현장에서 쓰는 이 전문용어가 시민들의 선거평론에도 상장(上場)됐다.

‘포퓰리즘(populism)’이 무엇이기에 세계 각처의 선거현장에서 기승을 부릴까?

포퓰리즘은 대중의 요구사항을 대변하는 정치 운동이자 지지를 획득하는 수단인데 소수 엘리트가 다수의 대중을 리드하는 ‘엘리트주의’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출발했다. 한국에서 매우 부정적 뉘앙스로 쓰이고 있는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는 원래 대중에 영합한다는 긍정적 뜻으로 대중민주정치 시스템의 속성이기도 하다.

옛 그리스 직접 민주정치 시대나 로마 공화정 시대, 현대 국민주권과 대의(代議) 정치 시대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포퓰리즘이라는 바이러스가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주권’과 ‘다수결’이 결합한 제도인 민주주의 선거가 포퓰리즘의 숙주(宿主)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히틀러나 문화대혁명 때 모택동 같은 포퓰리스트들은 대중 동원력을 통해 전체주의로 치달아 공동체를 광기(狂氣)로 내몰았던 시대도 있었다. 또 21세기 남유럽이나 남미국가들처럼 악성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 경제가 파탄 난 경우도 있고 30년 전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같이 실현 가능한 복지와 빈곤퇴치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룸으로써 성공한 포퓰리스트로 평가받은 경우도 있다.

모든 국민의 1인 1표제가 정착된 20세기 이후 민주국가의 선거에서 포퓰리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정당이나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포퓰리즘에 중독되어 거덜 난 나라가 속출하면서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선심성 복지공약은 마약과 같아서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도 서서히 빠져드는 대중심리를 악용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포퓰리스트들은 기본적으로 대중들은 어리석다는 중우(衆愚)정치의 허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심화한 사회에선 좌파 포퓰리즘이 먹혀들고 국수적이거나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땐 우파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릴 공간을 제공한다”고 지로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특히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을(乙)’을 공략한다. 어느 시대나 60% 이상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노동자나 서민 대중이야말로 포퓰리즘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선거에서 어떤 정책이나 공약도 이성적, 합리적, 논리적이기보다 가시적, 말초적, 감성적이어야 단시간에 다수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 포퓰리즘의 특징이다. 그러기에 장기적, 체계적 국가발전 전략은 공약에서 사라지고 즉시성, 가시적, 현금성 복지공약들이 유권자를 유혹하는 추세이다.

포퓰리즘은 다른 이데올로기와 달리 목표나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포퓰리스트들은 오직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인기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중독성 강하고 선정적인 공약들을 남발한다. 파시즘같이 포퓰리즘이 창궐할 때 광적인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도 횡행했다.

대중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지식인이나 전문가들이 대중의 적개심을 표출하는 대상이 됐던 것이다. SNS를 통한 테러 수준의 증오와 공격이 난무하는 오늘 같은 현상도 그런 역사적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21세기 들어 무책임하고 현실성 없는 정책이나 공약으로 대중을 열광케 하고 그런 정책을 강행하다가 나라가 망가지던가 아니면 약속했던 공약을 외면하여 권력이 몰락하는 경우를 보면서 악성 포퓰리즘 이야말로 중우정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포퓰리스트 정치인 중에 스트롱맨 성향의 권력자가 다수 등장하면서 국제정치의 불가측성을 키우고 있다. 문명사회에서 추구해 온 인류 보편적 가치나 인륜, 도덕적 가치를 외면, 무시하거나 돈으로 환산하는가 하면 오직 인기 위주의 자국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것도 이런 포퓰리스트들의 준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포퓰리즘이야 말로 민주주의 제도의 함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선거사(選擧史)에서 포퓰리즘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소위 1987년 체제(현행헌법) 이전과 이후 선거를 나누어 살펴보면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전의 각종 선거는 선거 공약이나 정책 이슈가 주목받지 못했다.

체제논쟁, 즉 민주 대 반민주 대결 구도 속에 흑백 논리가 충돌하면서 조직과 선전, 선동이 선거의 주요수단이었다. 삶의 방식이나 이념, 복지 같은 정책논쟁 자체가 부각될 수 없는 선거환경이었는데 1987년 이후 정권 교체가 가능한 정치, 선거제도가 확립되고서야 비로소 이념이나 정책, 인물경쟁 프레임이 구축되면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90년대 이후 한국의 양대 주류(主流)정당들도 표가 된다면 정당의 정체성에 반하는 모순된 정책이나 공약을 남발하는 포퓰리즘 정당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당의 이런 행태가 서구식 진보나 보수라는 이념적 성향 분류가 무의미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중 민주정치 선거현장에서 ‘포퓰리즘’의 위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 이젠 대중들도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제시하는 정책이나 공약이 실현할 방법과 능력을 갖추었느냐가 중요한 검증 포인트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중은 포퓰리스트의 노예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차피 표를 얻기 위해 인기 영합적 정치에 몰두하는 포퓰리즘이 일상화하는 시대라면 나는 표(票)와 포퓰리즘을 합성한 ‘표 퓰리즘’이라는 신조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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