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월미도 주민의 눈물
마르지 않는 월미도 주민의 눈물
  • 연합뉴스
  • 승인 2011.06.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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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난 뒤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아직 떠돌이 인생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반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역사의 뒤안길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으로 하루 아침에 가족과 이웃을 잃은 슬픔도 모자라 수십년이 흐른 지금까지 고향과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지 못한 월미도 주민들이다.

사건의 시작은 한국전쟁 기간인 1950년 9월 10일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던 인천시 중구 월미도 상공에 난데 없이 미군 항공기들이 나타났다.

항공기들은 사전 예고도 없이 월미도 민간인 거주지역에 네이팜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주민이 잠자고 있던 시각이었다.

월미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던 민가는 형체도 없이 부서졌고 곳곳에서 불기둥이 솟아 올랐다.

주민들은 혼비백산해 집 밖으로 뛰쳐 나왔다. 항공기들은 비무장 상태의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일부 주민은 산 곳곳에 마련된 대피호에 몸을 숨겼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주민은 월미도 앞 갯벌로 달려가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납작 엎드린 채 벌벌 떨어야 했다.

10일 하루 동안 3차례에 걸쳐 진행된 폭격은 11일을 건너 뛰고 12일부터 14일까지 계속됐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 다음날인 15일 유엔군은 월미도를 비롯한 인천 해안을 통해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3월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작전상 전략적 위치에 있던 월미도를 폭격하면서 민간인 거주지까지 공격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폭격은 미군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항공기들이 네이팜탄 95발을 월미도 동쪽 지역에 투하하고 기총 소사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인민군의 방위시설을 숨겨주는 은폐물을 없애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민간인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조치는 없었다.

당시 월미도에는 80여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었는데 폭격으로 1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으로 가족과 이웃을 잃은 주민들은 아직도 고통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원회 한인덕(66.여) 위원장은 남편이 월미도 폭격 사건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된 뒤인 1990년대 후반부터 월미도 주민의 피해 보상을 위한 운동에 뛰어 들었다.

한 위원장은 "남편이 어머니와 피란 갔다 폭격 소식을 듣고 월미도 고향에 돌아와보니 마을이 온통 초토화되고 시신이 곳곳에 널려 있어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월미도 폭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정지은(67)씨는 택시 운전업을 하며 1개월에 3차례씩은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의 농성장을 찾아 자리를 지킨다.

정씨는 "어머니를 따라 송도 외갓집에 피란 갔었는데 그 멀리서도 월미도가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는 장면이 생생히 보였다"며 "마을에 돌아와 새까맣게 타 누군지 알 수 없는 시신 1구를 발견했는데 아버지와 같은 금니를 하고 있어 그제야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기나긴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월미도 주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미군이 월미도에 주둔하며 그곳에 있던 민가를 군부대로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미군의 출입통제 조치로 고향을 등져야 했고 일부는 월미도를 떠나지 못한 채 근처에서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이후 우리 해군 부대가 30여년간 주둔하다 2001년 이전했고 지금은 월미공원이 조성돼 있다.

주민들은 지난 수십년간 월미도 사건으로 인한 피해 보상을 요구해왔다.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가 과거 월미도 민간인 거주지였던 월미공원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2천400일을 넘겼다.

지난 2월엔 위원회와 피해주민 44가구 대표자 명의로 우리 정부와 인천시, 미국 정부, 유엔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진실화해위 월미도 사건 진실 규명 이후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가능 시한 전에 급하게 소를 제기하면서 인지세가 모자라 가구당 300만원씩의 배상을 요구했었는데 최근 인지세를 더 거둬 가구당 1억원씩을 배상해야 한다며 소송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

월미도 주민들은 지난해 북한군의 도발로 포격 피해를 당한 연평도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각종 지원책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같은 정부, 같은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누구는 보호받고 누구는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라며 "모두가 자랑스러워 하는 인천상륙작전의 뒤안길에서 희생을 겪었고 이후 남들처럼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는데 이같은 억울함은 누가 풀어줄 거냐"라고 답답해 했다.

그는 "월미도 사건으로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60~80대 노인이 됐다"며 "2004년 농성을 시작한 뒤 7명이 유명을 달리했고 아픈 사람도 점점 늘고 있어 문제 해결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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