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청초 우거진 골에
- 임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듸 두고 백골만 누웠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임제(林悌,1549~1587)는 조선의 문신 겸 시인으로 당대의 문장가이며, 호는 백호(白湖)이다. 이 시조는 임제가 술을 매개로 황진이 무덤에 들려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푸른 풀만 수북이 자란 골짜기에 자는지 그냥 누웠는지, 젊은 날의 고왔던 얼굴은 어디 두고 백골로 누워 있느냐. 이제는 잔 잡아 술을 권해 줄 이가 없으니 그것을 설워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청초, 홍안, 백골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한 대조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초, 중장은 설의법으로 인생의 무상감을 표현해 보이고 있다. 평안도 관찰사로 가는 도중에 송도 황진이 무덤에 들려 슬퍼한 것으로 이 일로 인해 파직당했다는 일화가 있다.
* 현대시조
싹
- 박경용
봄 문턱의 훼방군은 샘바리 새싹이다.
몸통을 숨긴 채 시새우는 눈초리들
꽃샘도 바람 탓이 아니다. 저 샘바리들 탓이다.
박경용(朴敬用, 1940~)은 1958년 동아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나온 시인으로 시조와 동시를 쓰고 있다. 새싹하면 귀한 존재, 희망을 품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시조에서 이 새싹을 봄에 대한 샘바리 훼방꾼으로 보고 있다. 보편적으로는 새싹은 봄을 몰고 오는 존재인데 오히려 이를 둔갑시켜 방해하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봄을 가로막는 존재로 보고 있다. 심지어 봄을 시샘하는 것도 꽃샘바람이 아니라 이 싹의 시샘 때문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새싹이 몸통을 숨기고 나오지 않아 봄은 오지 않는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