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빛나는 지혜를 나눠줘
[대림칼럼] 빛나는 지혜를 나눠줘
  • 정련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이사
  • 승인 2023.08.17 1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끼리 M의 이야기' 사막여우 편을 읽고

<코끼리 M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주인공은 왜 코끼리였을까'였다.

우리 첫째가 어린 시절 이불가게에서 받은 핑크 코끼리 사은품이 있었다. 엉덩이에 향낭이 있어서 좋은 냄새가 나는 보들보들한 인형이었는데, 첫째의 애착인형이 되어 아직도 끼고 잔다. 코끼리는 동물원 밖에서는 본 적이 없는 아이인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참 친숙하다. 

왜 코끼리 이야기였을까. 보아뱀의 배 속에 있었던 것이 코끼리여서? 아니면 내가 누구인지 참말로 헷갈리게 장님들이 다양한 코끼리를 만지고 묘사를 해서? <코끼리 M의 이야기> 흐름 상, 코가 황금나선형을 구사할 수 있거나 커다란 코끼리의 몸으로 극장과 도서관을 다니면서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되어서? 

<코끼리 M의 이야기>의 저자 황명호 교수는 나의 북경대학교 선배고 오래 알고 지내던 분이다. 학술연구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시는 분이고 지혜로운 분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선배가 늘 말씀하던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게으름 없이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그 마음에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코끼리 M은 인생 수십 년을 살면서 서서히 배워가는 인생의 지혜들을 우리가 알 만한 귀여운 캐릭터들을 만나면서 배워 나간다. 빛나는 지혜를 배워가는 것이었다.

코끼리 M은 이름이 두 개였다. 고아인 그를 서커스 단장님이 불러주는 미스터리 M과 스스로 희망하는 매직 M. 코끼리 M은 도서관에 몰래 다니면서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숨어서 보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지식을 많이 축적하게 된다. 코끼리에 관한 책들에 더불어, ‘메트릭스’, ‘어린 왕자’ 그 외에도 수많은 인생, 자아, 미래를 탐구하는 것들에 매료되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에게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미스터리 M은 너무 싫고 매직 M이고 싶으며, 미스터리 M이라고 불리는 이 상황은 너무 스트레스라는 것. 나는 누구인가.

코끼리 M의 인생 지도인 황금 나침판을 찾아가는 길에서, 코끼리 M은 어린 왕자의 사막여우를 만난다. 어린 왕자는 만인의 사랑이다. 나 또한 여러 번 정독한 자로서, 사막여우의 영롱한 빨간 털이 아주 인상 깊다. 내 기억 속의 사막여우는 이 한마디로 귀결된다. ‘나를 길들여줘’. ‘헤어지게 되면 슬플 거야, 왜냐면 나를 길들였으니까.’ 

사막여우는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했을 때 만나는 첫 생명체다. 처음에는 서로 주저하며 대화를 나누지만,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자신을 길들여 달라고 부탁한다. 그들 사이에는 서로에게 소중한 관계가 맺어진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친다. 

내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봐야 보인단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사막여우는 이렇게 어린 왕자에게 서로에게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과정, ‘길들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려주며, 그것은 일상에서의 예상치 못한 만남이 미래에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막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사랑과 우정에 대한 깊은 교훈을 가르치게 되며, 이는 어린 왕자의 여행과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처음’ 만나게 되고, 그들과 관계를 맺어 나간다. 어떤 식으로 서로 길들이는 것이다. 나는 코끼리 M 같은 이방인이었다. 누구나 하나뿐인 세상의 이방인일 것이다. 다만 나는 나의 정체성을 위하여 고민할 틈이 많이 없었다. 내가 뭐가 부족한지에 대하여도 생각할 틈이 별로 없었다. 늘 숨 가쁘게 쫓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앞에 있었으니까. 나는 내가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성인으로 길들이며 전문성도 매너도 책임도 가질 수 있는 계기들을 접하게 되었다. 

사회초년생 때, 업무를 하다 보니 법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나는 전공이 경제학이었고 법과는 인연이 없었으나, 실무 담당자로서 변호사의 의견을 따르기보다 질의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꼬치꼬치 질문을 하면서 업무와 관계된 법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졸지에 사법고시에 도전해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는 떨어져도 되는 핑계가 충분했고 그냥 해보는 것에 지나치지 않은 하나의 이벤트였다. 그때 나의 ‘사막여우’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시험에 대한 예의는 갖춰. 공부했다고 남는 건 있어야 할 것 아니야. 하는 것은 하는 것이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그냥 해보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뭔가를 열심히 해봤던 것 같다. 임신한 몸으로 공부하기에 너무 졸려왔으나 누구나 졸음을 참고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운칠기삼’이라고 노력한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노력하지 않을 핑계를 가지는 것은 나쁜 습관이라고 배웠다. 

전형적인 유교적 꼰대인 나는 내가 손해 보고 마음이 편한 것이 너무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이었다. 집요하게 열심히 한 탓인지, 일복이 붙어서인지, 내가 하는 업무가 빛이 보이면서 연봉도 선배보다 역전하고 승진도 빠른 그런 아이가 되었다. 익숙했던 관계에 금이 가기도 하도 가까웠던 사람이 다시는 눈길을 안 주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기에 나에게 마이너한 조건은 상당히 많았다. 여자, 출산휴가, 외국인 등등 중요한 업무를 내가 아닌 다른 자에게 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늘 있었다. 이직하고 새로운 업무를 배워가면서 나는 늘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일에 임했고 더 많은 ‘사막여우’와 좋은 관계를 맺어가려고 노력했다. 연차가 차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다지 대단한 일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선배와 후배들 사이에서 생활하면서 중요해지고 싶지만 튀는 것이 불편해지는, 관계가 더욱 조심스럽고 어렵게 느껴질 때, 다른 ‘사막여우’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Life is unfair’를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불이익을 당할 때도 담담하게 대하라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혜택을 볼 때도 당당하게 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Asian은 보통 후자에 약하다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이 목표였던 시절, 본부장이 되면 저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느끼게 한 ‘사막여우’가 있었다. 수백억의 이익을 내는 100명 본부를 이끄는 수장이었던 그는 방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돌아다니는 것을 더 선호했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야 했던 나의 동료들은 특이한 버릇들이 있어 시장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상품이 발행되는 것을 괴로워하고 타사의 동향을 살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제안서를 틈틈이 만들어낸다. 그런 제안서 작업이 없더라도 심야 퇴근이 일상인 자들이었다. 그들의 틈에 껴서 나도 그런 시도를 함께 하는 자가 되어 버렸다. 그 ‘사막여우’는 늘 어슬렁거리며 우리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슬쩍 와서는 그러신다. ‘뭐 재미있는 거 있냐?’. 사람을 신나게 일하게 하는 기술일까, 나는 ‘조직’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후에도 종종 찾아뵙고 이런저런 내가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을 여쭙기도 했다. 

회사라는 조직은 크면 클수록 별의별 일들이 다 있다. 누구에게는 인생 중대사이지만 누구에게는 그냥 가십거리인 일들이 수없이 많다. 그러던 중 폭행 사건이 한 건 있었다. 그 조직의 모 선배(차장)가 후배직원들을 불러 놓고 기합을 넣고 조인트를 까는 등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폭행을 긴 시간 동안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사는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기도 하지만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아야 하기에 그 피해자를 수차례 면담하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린 피해자는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재발되지만 않는다면 넘어가고 싶다는 의견을 수차례 피력하였다. 나의 또 다른 ‘사막여우’는 인사팀을 불러 엄정하게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 인사팀에서 피해자 보호를 어필하는 그 순간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보호해야 하는 직원은 그 피해자 한 사람이 아니라, 이 회사의 모든 직원입니다. 그들에게 이런 일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줘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나는 보아뱀에게 삼켜진 코끼리라는 유명한 일화를 지니고 있지 않고, 엉덩이에 향낭을 지니고 누군가의 따뜻한 추억이 되었던 적도 없다. 왜 주인공이 코끼리여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태어나 오늘을 사는 내가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 이런 경험을 하는, 이런 장단점과 습성과 감성을 지닌 ‘나’여야 하는지도 알 수는 없다. 나 또한 코끼리 M으로 갈팡질팡 나를 찾아가고 미래를 찾아가는 길에서 허둥대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살면서 이런저런 ‘사막여우’들을 접하게 되고, 끝임없이 길들이고 길들어져 간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녹여져 지금의 ‘나’의 중요한 조각을 구성하게 되고 지금의 나의 사고방식과 의사결정의 루트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나에게 빛나는 지혜를 나누어 줄, 나의 부족함을 이겨낼 계기가 되어 주고, 나를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사막여우’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사막여우’가 되어 길들게 되고 지혜를 나누어 줄 수 있기 위해 게으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필자소개
2002년 흑룡강성 문과 수석, 북경대학 경제학원 국제경제무역학과 졸업, 동북아신문 칼럼니스트, 현재 브이아이금융투자 기획담당 상무,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이사, 수필 수기 칼럼 여행기 등 수십 편 발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