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한인후손들과 광복절 기념행사 열어… 민주평통 20기 미주협의회장단의 쿠바 방문기
쿠바 한인후손들과 광복절 기념행사 열어… 민주평통 20기 미주협의회장단의 쿠바 방문기
  • 김동수 민주평통 OCSD협의회장
  • 승인 2023.08.2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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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1일 아바나에 도착해 6일간 일정으로… 한글학교도 방문해 성금도 전달
지난 8월 12일 쿠바 카르데나스에 있는 ‘센트로 크리스티아노 레플렉시온 이 디알로고 (Centro Cristiano Reflexión y Dialogo)’에서 제78주년 광복절 경축행사가 열렸다.
지난 8월 12일 쿠바 카르데나스에 있는 ‘센트로 크리스티아노 레플렉시온 이 디알로고 (Centro Cristiano Reflexión y Dialogo)’에서 제78주년 광복절 경축행사가 열렸다.

미주의 12지역 협의회 회장들이 쿠바에 모였다. 20기 평통을 마치며 미주지역 3분기 운영회의를 쿠바의 한인 후손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20기 마지막 미주지역 행사가 될 이 모임을 위해 박요한 미주지역 부의장 직무 대행과 민주평통 중미·카리브협의회 박래곤 회장, 임원들이 일찍부터 준비해 행사를 진행했다.

8월 11일 아바나에 집결한 우리는 34인승 버스를 타고 2시간 반 정도 이동해 휴양도시인 바라데로의 Melia Las Americas에 여장을 풀었다. 밤늦게 도착해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바닷가 앞에 세워진 이 호텔은 상당히 크고 현대식이었다. 아바나 공항에 내려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던 우리 일행은 에어컨이 잘 돌아가는 호텔 방에 여장을 풀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8월 12일 아침 우리는 약 30분 정도 떨어진 카르데나스 교회당으로 갔다. 거기에는 벌써 많은 쿠바 한인 후손들과 한글학교에 다니는 쿠바인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와 함께 광복절 행사를 하기 위해 모였는데, 거의 250명이 되는 듯했다.

쿠바의 한인 역사는 멕시코에서 시작된다. 멕시코 유카탄반도에서 힘들게 일하던 1세대 한인 이민자들은 쿠바가 좀 더 일하기 쉽다는 소문을 듣고 3백 명가량이 배를 타고 쿠바로 건너갔다. 이때가 1921년 3월 25일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무렵 금값 같던 설탕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며 1880년대부터 성황을 이루어왔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자리가 없어졌다. 그리고 선박 등에서 쓰는 밧줄의 재료가 되는 에네캔 농장이 쿠바에서 발전하게 돼 한인 이민자들은 에네캔 농장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가 대한민국에서 3.1 운동이 일어난 지 2년째. 이들은 힘든 노동일을 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아 중국 상해 임시정부로 독립자금을 보냈다. 당시 중요한 한인 지도자가 임천택이었다. 그는 쿠바 이민 한인 1세였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이민 한인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날 마침 임천택 독립 유공자의 딸인 마르타도 광복절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쿠바에 살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잃어갈 때도 있었지만, 근래 가끔 찾아오는 한국인들 때문에 스스로 누구인지를 다시 알게 된다고 말했다.

임천택 독립 유공자의 딸 마르타 씨
임천택 독립 유공자의 딸 마르타 씨

그는 90세가 가까워지는 나이처럼 보였고, 한국말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펴낸 <쿠바의 한인>(Coreanosen Cuba)라는 책을 한 권 선물로 박래곤 회장에게 건네주었다. 쿠바에는 현재 1천 명 정도의 한인 후손들이 살고 있고, 이 카르데나스에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이날 행사는 카르데나스 한글학교 다니는 한인 후손들과 쿠바 학생들도 참여했는데, 이들이 연주한 피리 곡이 아주 인상 깊었다.

우리는 멕시코 협의회에서 준비해간 선물을 전해주고, 각 협의회에서 준비해온 선물도 전달했다. 쿠바 방문을 준비하면서 쿠바 한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생활필수품이라고 생각해 필자는 비누, 치약, 칫솔 등과 약간의 의약품, 식품을 선물로 준비했다.

광복절 행사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만세, Viva Cuba를 태극기를 흔들며 함께 외쳤고, 쿠바 문화 행사도 즐겼다. 우리 일행이 나름대로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그들과 같이 나누며 78주년 광복절 행사를 치렀다.

우리는 이번 방문 때 한인들이 쿠바에 처음으로 도착한 마탄사스 엘볼로를 방문하고자 했으나, 길 찾기가 너무 어려워 방문은 하지 못했다. 현재는 기념 비석만 남아있다고 한다. 일행은 호텔로 돌아와 곧바로 마지막 20기 미주지역 운영위원회를 개최했다. 우리는 그간의 근황도 서로 소개하고, 그날 열렸던 광복절 행사 소감도 나눴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바다로 나갔다. 약 40분 떨어진 Catamaran으로 이동해서 돌고래와 허그를 하고, 랍스터도 잡아 즉석요리도 해 먹었다. 또 스노클링도 즐기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쿠바는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로 거의 하루 내내 무덥고 땀이 흐르는 곳이었다. 한국의 여름 무더위보다 더한 더위였지만, 바닷속으로 몸을 내 던질 때는 최고의 기분이었다.

8월 14일, 우리 일행은 바라데로에서 버스에 올라 아바나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여행 가이드 레이날도가 쿠바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1492년 콜롬버스가 쿠바를 발견한 이후 스페인이 들어와 인디안 원주민을 모두 학살하고,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데리고 와서 일을 시켰다고 한다. 이후 백인과의 혼혈아로 태어난 사람들이 지금의 주류 쿠바인이라고 했다.

이후 1898년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거의 미국 식민지처럼 지내다가 쿠바에 사회주의 혁명 세력이 자라나 결국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는 과정, 또 미국과의 갈등으로 케네디 대통령 때 핵 위기를 거치고 지금의 쿠바가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쿠바는 2015년 오바마 대통령 때 50여 년 만에 미국과 다시 국교를 맺어 잠시 경제적인 부흥을 이루는가 싶었더니 2016년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다시 관계가 악화된 데다, 2019년 12월부터 3년 반 이상 지속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쿠바의 경제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아바나로 오는 도중 핀카 비히아에 있는 헤밍웨이 고택을 찾았다. 헤밍웨이가 한때 살았던 이 집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돼 관람객을 받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 집을 둘러보고 또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코히마르 어촌 마을도 돌아봤다. 박물관에는 당시 헤밍웨이가 낚시용으로 썼던 배도 전시돼 있었다.

헤밍웨이는 술과 여자, 낚시와 사냥을 좋아하고, 많은 글을 쓰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지만 62세 때 건강악화에 따른 우울증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나는 그의 삶을 되짚어 보며 일시 감상에 젖어 들었다.

우리 일행은 아바나로 들어와 오바마 대통령이 식사하고 지난 12년 동안 24명의 대통령이 와서 식사했다는 산크리토발 식당을 찾아 점심을 들었다. 식당은 바닷가 옆에 근사하게 세워진 파세요 델 프라도 호텔 안에 있었다.

쿠바는 관광 사업을 확충하려는 쿠바 정부의 의지로 인해 꽤 좋은 호텔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서 있었다. 이어 우리는 아바나 구시가지 투어에 나서서 스페인 식민지 시대 때 지어진 아르마스 광장, 샌프란시스코 광장, 비에하 광장, 카데드랄 광장을 걸으며 더 많은 쿠바의 역사를 체험했다.

헤밍웨이가 오래 머물렀던 호텔 Ambos Mundos와 작은 플로리다라는 뜻의 floridita bar에도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젊은이들로 꽉 찼으며 생음악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사실 쿠바에는 많은 곳에서 레게 뮤직이 공연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공산주의 국가이면 서도 이들이 얼마나 예술을 사랑하는지 열정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쿠바는 국토 면적이 남한 땅 비슷하지만, 인구는 1천150만 명, 하바나에는 약 200만 명 이 산다고 한다. 남한의 인구가 쿠바보다 4.5배 더 많은 것이다.

다음 날 아침은 광복절 78년이 되는 날이었다. 우리 일행은 1920-30년대에 만들어진 옛 미국 포드 폰티악 오픈카 7대와 밴 1대에 나눠타고 센트로 아바나를 지나 혁명광장으로 갔다. 혁명광장에는 혁명탑과 공산당 본부건물, 체 게바라의 부조가 크게 그려진 건물이 눈에 띄었다. 체 게바라는 쉽고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전체 생애를 쿠바뿐만 아니라 남미의 여러 나라들과 아프리카 콩고까지 찾아가서 민중을 위한 혁명을 완성하려고 했던 인물이다.

나는 작년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체 게바라에 대해 들은 것도 있어서 더욱 흥미가 있었다. 그는 원래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였지만 친구와 함께 남미 전역을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면서 사회주의에 관심을 두게 된다. 많은 노동자와 인민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또 부가 제한된 극소수계 귀족층에 분배되는 것을 보고 사회주의 혁명에 끌린 것이다.

그는 나중에 멕시코로 피난 가 있을 때 마침 쿠바에서 멕시코에 피해와서 사는 피델 카스트로와 마음이 맞아 하룻밤 사이에 혁명 동지가 됐다. 그 후 그는 무력으로라도 인민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동참했다. 1961년 쿠바 혁명이 방향을 잡아갈 때 그는 쿠바 시민권을 받고 초대 산업 장관, 은행 총재 등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1965년 피델 카스트로와 결별하고 쿠바를 떠난다.

그가 과테말라 게릴라전을 거쳐 볼리비아 게릴라 전투에 참여하다 정부군에게 잡혀 사살당할 때의 나이가 고작 39세. 파란만장했던 그의 혁명에 대한 신념과 열정은 사후에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쿠바와 남미 여러 나라에는 그를 영웅시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나는 체 게바라가 즐겨 썼던 모자를 하나 기념품으로 사서 아바나 시내 거리를 쓰고 다녔다.

아바나에서의 공식 행사로, 우리 일행은 아바나 한국 문화원과 한글학교를 방문했다. 장소는 좁고 더웠다. 하지만 102년 전 이곳 쿠바에 이민 온 선조들의 후손이 한국 문화를 지키기 위해 한글도 주 5일 수업하고 한국 문화 행사도 진행한다는 설명을 듣고 대한민국의 뿌리는 어디에 가도 없어지지 않음을 눈으로 실감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170명에 달하는 쿠바 현지인 학생들에게 약 3천5백 불 상당의 물품을 증정하고 서투른 한국어로 서로 얘기도 나누며 가족 같은 기분을 느꼈다.

쿠바 한국문화원 및 한글학교는 2014년 개원 당시, 임대료가 3천 불이었다. 재외동포재단 50%, 중미·카리브협의회가 50%씩 임대료를 충당하다가, 중미·카리브협의회의 부담을 점차 줄여갔다. 2022년 한국문화원 및 한글학교를 이전하면서 임대료를 2,000불로 줄이고, 현재는 재외동포청이 임대료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중미카리브협의회는 이전 비용 및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나 아직 함께 모일 강당이 없어서 증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쿠바한국문화원 및 한글학교 정호현 교장은 교실 앞마당에 지붕도 올리고, 조명도 달아 강당 및 K-POP 센터를 만들고자 하나 재정 문제로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고충을 밝혔다. 이에 우리는 협의회장과 자문 위원들이 조금씩 돕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이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구은희 상임위원은 우리나라 직지심경에 관해 설명하고 한글 교수법도 강의했다. 오후에는 쿠바 영사협력원으로도 일하고 있는 문윤미 쿠바 자문 위원의 안내로 쿠바의 가우디라고 불리는 미술관 같은 푸스터의 집(Casa de Fuster)도 방문하고, 럼주 박물관(Museo de Ron)도 구경했다.

저녁은 문 위원이 집으로 직접 초대해 줘서 쿠바인이 사는 것도 보면서 멋진 저녁 대접을 받았다. 쿠바에서는 외부인을 집으로 초대해 같이 식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일 같이 보였다.

6일간의 쿠바 방문 기간 우리 일행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특히 8월 14일 아바나에서 15명의 한인 후손 회장단을 초청해 저녁 식사를 했다. 이날 만찬에는 Antonio Kim 쿠바 한인 후손 대표자와 마르타 임 할머니도 참여했다. 밤에는 쿠바 내셔널 호텔 파리지엔 카바레에 가서 쿠바의 역사를 춤과 음악으로 표현한 Habana de Fiesta 쇼도 재미있게 보았다.

우리는 쿠바에 있는 우리 한인 후손들이 잘 지내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쿠바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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