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아공 잼버리 대원들과 보낸 나흘
[기고] 남아공 잼버리 대원들과 보낸 나흘
  • 김달호 수필가(2002년 『수필문학』 <허수아비 축제>로 등단)
  • 승인 2023.08.24 10: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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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카눈(Khanun)이 한반도를 덮친다는 소식이 톱 뉴스로 올랐다. 카눈은 잭 플루트(Jackfruit)라는 열대과일로 태국어였다. 세계 차세대 지도자들이 될 재목들이 4만6천 명이 새만금에 모였을 때였다. 대원들이 벌레와 싸우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식사와 화장실 문제는 심각했다. 무더위도 극심했다. 거기에 태풍까지 덮친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영국과 미국은 대원들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은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앞서 8월 8일 저녁 9시 46분 낯선 전화가 걸려 왔다. 내일부터 잼버리 통역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참여하겠다고 했다. 용인시 마북동의 코오롱 인재개발원에서 8월 9일부터 12일까지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는 통역업무라고 했다. 하지만 남아공 잼버리 대원들 통역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정부가 태풍으로 비상사태에 돌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공에는 두 번 간 적이 있다. 하지만 20여 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희미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인구 5천9백만 명의 큰 나라였다. 국민소득도 1만 달러를 넘었다.

‘코오롱 인재개발원’에는 처음 가는 길이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도착하니, 8시가 막 지났다. 주차장에서 본관으로 가는 길에는 분홍빛 무궁화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본관에 들어서니,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앞에 창업자 고 五雲 이원만 회장의 흉상이 서 있었다.

통역으로 왔다고 하니, 8시 반 회의에 참석하라고 했다. 회의장에는 남아공 잼버리 단장 David 등 세 명과 한국 측의 잼버리 대원 지원 인력 등 10여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인재개발원 원장과 담당 임원은 물론 행안부, 도청, 시청 직원 등이 모여서, 갑작스럽게 맞은 손님을 어떻게 보살필 것인지 묘안을 찾는 일이 주제였다. 아무도 대안을 갖고 있지 않았고 태풍에 떠밀려 온 난민 같은 상태에서 대책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데이비드 단장은 “에버랜드는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대원들이 동의하기 어렵고, 135명이라는 대원들이 이동하는데 필요한 버스가 확보되지 않았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동 수단이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나는 인재개발원을 품고 있는 법화산 산책을 제안했다. 세계의 큰 도시에서 하이킹을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고 숲이 우거진 우리나라 산을 보여주는 것은 좋은 일 같아서였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 법화산 둘레길을 가기로 하고, 개발원에서 등산 지도를 복사하여 배포하였다. 산림청 직원이 안내를 맡았다. 둘레길 걷기에는 100여 명이 참여했고, 경찰과 소방관이 따라붙었다. 마침 버스 한 대가 확보되어서, 나머지 대원은 죽전역 인근에 있는 이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도록 지원했다.

통역봉사자를 3명을 요청했다는데 갑작스러운 사태라, 통역은 나 혼자였다. 연수원에서 급한 대로 통역을 맡아줬고, 나는 가벼운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을 제공하는 통역을 해주었다. 8일 새만금 철수 때는 통역하는 사람이 없어서, 잼버리 대원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버스를 탔다고 했다. 마지막 버스가 새벽 5시 무렵에 도착했다고 하니 사정을 짐작할 만했다. 행사와 상관없는 금감위 직원 한 명도 영어를 잘한다고 파견돼왔다. 이처럼 비상대책위원회는 태풍과 함께 잼버리의 모든 일을 새로 설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날은 태풍이 멀리 있는지 날씨가 좋았다. 건물 앞에는 개발원에서 준비한 포장마차 2대가 왔다. 한쪽은 핫도그를 서비스하고 다른 쪽은 커피와 차를 서비스하며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마치 재난을 피해 안전한 곳에 도착한 사람들처럼 활기가 넘쳤다. 건물로 오르는 계단에 단체 사진을 찍는데, 흑인 소녀와 백인 소녀가 두 손으로 누워서 하트를 만드는 모습이 남아공의 흑백차별 이미지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저녁 7시 30분, 다시 회의가 소집됐다. 다음 날, 8월 10일에는 국가에서 재정지원을 하기로 했다며, 태풍에 대비해 실내활동만 허용한다고 했다. 논란 끝에 롯데월드가 실내활동 장소로 최종 합의됐으나 데이비드 대장은 대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대원들이 모여 있는 강당에 갔다. 잠시 뒤에 온 동네를 흔드는 ‘야’ 하는 함성이 들렸다. 대원들이 만장일치로 롯데월드로 가기로 했다.

롯데월드에서 입장하면서 인원 파악을 했다. 5열 종대로 줄을 세웠는데, 마치 처음 줄을 서 보는 것처럼 대원들이 어색해했다. 자유이용권을 외국인에게 5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입장시켜 놓고 보니, 대원 10여 명이 별도 부담으로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 대원이 눈을 다쳤다. 실비아 팀장은 병원에 들러서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연을 듣고 보니, 동료가 뒤에서 이어폰을 뺏으려다가 눈에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다고 했다. 버스로 출발했는데, 1시간 정도면 숙소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래서 도착 후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

잼버리와 협약이 된 병원으로 동백세브란스병원이 있었다. 거기서 응급조치를 하기로 하고 119구급차를 탔다. 나는 보호자로 함께했다. 16살 Joshua는 침대에 누운 채 대화를 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은 일과 후에 안과의사가 없다며, 응급의사의 1차 진료로 마무리했다.

새만금 사태나 병원이나, 손님을 맞는 자세는 다를 바 없다고 항변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간호사가 할 수 있는 가벼운 응급처치만 하고 다음 날 다시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다행히 환자가 병원에 안 가고 좋겠다고 했다.

상암구장에서 폐영식으로 잼버리는 끝났다. K-POP 행사로 잼버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이 위기에 뭉치고 협조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MF 때 집에 있는 금을 내놓아 모았던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길 가던 아주머니가 잼버리 대원들에게 음료수를 나눠 주고, 나이든 아저씨가 ‘새만금 쏘리’를 외치던 장면도 새롭다.

필자소개
김달호: 수필가(2002년 『수필문학』 <허수아비 축제>로 등단)
경제학박사, 시조 시인, (사)한국시조협회 세계화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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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진 2023-08-26 13:04:13
애셨습니다 ㆍ감사합니다 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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