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91] 지일(知日)을 위한 이세신궁과 구마노고도 여행
[유주열의 동북아談說-91] 지일(知日)을 위한 이세신궁과 구마노고도 여행
  •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0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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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방문 열풍이 불고 있다. 일본 방문 외국인의 절대다수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몇 년 전 ‘No Japan’의 분위기와 격세지감이 있다. 지난 8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미국과 일본의 정상을 만났다. 우리 대통령이 선진국 정상으로서 일본과 대등한 모습으로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이면 한일 수교 60주년이 된다. 한일 양국은 1500년 이상 이웃 나라로서 서로 교류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 20세기 초에는 열강의 묵인하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합병하여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어느 지인은 임진왜란 등 역사 속에 얽혀 있는 양국의 실타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한칼에 자르고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이제 일본과 대등한 관계에 놓인 우리가 일본과 협력, 엉킨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 과거의 콤플렉스에서 빠져나와 서로가 서로에 필요한 파트너로서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격상·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과거 우리는 악랄한 군국주의 일본의 만행 트라우마의 피해의식에 젖어 일본의 진짜 모습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외교관으로서 일본에서 6년간 근무하고 그 이후에도 민간차원에서 한일 협력관계의 일을 해 본 경험에서 본래 일본은 우리와 문화와 전통이 비슷한 나라인 것을 알게 됐다. 특히 한반도 뿌리를 잊지 않은 간무(桓武) 천황의 헤이안(平安) 시대,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는 우호협력의 관계였다. 이러한 헤이안 시대의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 일본 미에현 이세신궁(伊勢神宮)과 와카야마현의 구마노고도(熊野古道)라고 생각한다.

이세신궁의 도레이
이세신궁의 도리이

일본의 신사 또는 신궁 하면 군국주의 일본의 유물로 침략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일본 고유의 민족신앙인 선조나 자연을 경배하는 토착 신앙과 관련된다. 일본의 신사는 전국적으로 20~30만 개가 있으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신사는 8만 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전국의 편의점이 5만여 개라고 하니 신사가 편의점보다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한반도와 연결된 일본의 고유문화가 신사에 남아 있어 일본을 알기 위해 신사를 찾아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신사 입구에는 우리의 홍살문 같은 것이 서 있다. 도리이(鳥居)라고 한다. 새가 쉬는 곳이란 뜻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마을 어귀나 무당집 앞에 있었던 솟대와 비슷하다. 도리이를 지나 신전까지 가는 길을 참도(參道)라고 한다. 신전 앞에는 참배객의 몸을 정화하는 데미즈야(手水舎)라는 물통이 있다.

국자 같은 용기로 물을 떠서 양손을 씻고 입을 헹군다. 신사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은 가끔 약수인 줄 알고 마시는 사람도 있다. 마셔도 큰 탈은 없지만 마시는 물은 아니다. 신전에 도착하면 고개 숙여 인사 두 번, 박수 두 번 그리고 신에게 기원한 뒤 다시 인사 한번을 하고 떠난다. 일본에서는 니레이(二禮) 니하쿠(二拍) 이치레이(一禮) 예법이라고 한다. 종교가 달라도 사찰에서 스님의 안내로 부처님께 가볍게 인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와카야마현의 구마노고도(熊野古道)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세이간토지 [사진=일본 와카야마현 홈페이지]
와카야마현의 구마노고도(熊野古道)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세이간토지 [사진=일본 와카야마현 홈페이지]

신전 앞에는 돈을 넣는 새전함(賽錢函)이 있다. 돈을 넣는 것이 의무는 아니나, 소액 동전을 넣는 경우가 많다. 일부 신사에는 방울 달린 새끼줄이 있는데 참배 전에 새끼줄로 방울 소리를 내어 신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신전 안에는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체(神體)를 안치하는데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구리거울(神鏡)이 주로 사용된다. 큰 바위나 폭포 같은 자연물을 경배하여 신사를 지을 경우 건물 안에 봉안할 수 없으므로 그 대상이 되는 자연물 앞에 신전을 짓기도 한다.

우리가 일본의 신사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거부하고 있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 군국주의 일본이 통치용으로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신사를 지어 강제 참배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우상 숭배를 기피하는 기독교 신자에게도 강요하여 거부하면 투옥까지 시켜 많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일본에는 3대 신사 또는 신궁(신사보다 큰 규모)이 있다고 한다. 1868년 유신을 통해 일본을 근대화하고 부국강병을 이끈 메이지(明治) 천황을 경배하는 메이지 신궁은, 도쿄 중심부에 일본 전국에서 가지고 온 수목으로 조성한 20만 평의 인공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유신을 반대하는 세력과의 내전에서 희생된 혼령을 제사 지내고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전쟁 신사(War Shrine)였다. 야스쿠니(靖國)라는 말은 중국 고전에서 인용한 것으로 “나라를 안정시켰다(吾以靖國也)”는 의미인데 여기에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14명의 A급 전범을 포함하는 1048명이 합사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이웃 나라를 침범한 군국주의 전범을 경배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세신궁
이세신궁의 자연

상기 2개 신사(신궁)와 달리 이세신궁은 가장 정치적 색깔이 없다. 이세신궁은 12세기 일본이 사무라이(武士)에 의해 지배되던 막부(幕府) 시대 이전 평화로운 일본의 참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세신궁은 미에현 이세시에 소재한다. 이세는 바닷가를 의미하는 이소(磯)에 유래된 것처럼 태평양 연안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세-시마 국립공원 안에 있다.

이세신궁은 천황가의 조상인 아마테라스(天照)를 모시는 내궁과 함께 곡식의 신 토요우케(豊受)를 모시는 외궁이 있다. 이세신궁의 배치는 일반 신사와 큰 차이가 없다. 이세신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세시를 관통하는 이스즈가와(五十鈴川)강에 걸쳐 있는 일본 전통교량 우지바시(宇治橋)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성속계(聖俗界)를 가른다고 한다. 일반 신사가 불교사원 모습의 중국 또는 한국의 전통건물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이세신궁의 본전은 고대 일본의 곡식 창고였던 다락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상에서 일정 높이에 있어 수해 침수뿐만이 아니라 쥐 등 동물로부터 곡식을 보호하기 위한 건축양식이다.

이세시마 국립공원
이세시마 국립공원

이세신궁은 식년 천궁(式年遷宮)이라 하여 20년에 한 번씩 기존 건물을 해체하고 새로운 건물을 지어 옮긴다. 목조건물이기에 20년이 되면 노후하여 유지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아파트 재건축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헐고 그 자리에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새로지어 옮기는 식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건축기술이 수천년 이어져 보존된다고 한다.

이세신궁은 일본의 모든 신사의 총본산이다. 이시센궁의 최고위직인 제주(祭主)는 황족이 맡고 있는데 현 제주는 나루히토(徳仁) 천황의 여동생 사야코이다. 그녀는 전임자였던 연로한 고모를 보좌해 오다가 고모가 타계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세신궁은 예로부터 일본인은 생애 한번은 찾아야 하는 마음의 고향이라고 한다. 마치 이슬람교도가 메카를 방문하듯이 ‘오이세 마이리(お伊勢参り)’라 하여 전국에서 이세신궁을 찾아온다. 이세시도 참배객으로 번성한 도시다.

수년 전 일본에서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연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이세-시마 국립공원이 선정된 적이 있다. 진주 양식에 성공한 미키모토(御木本)의 출생지인 도바(鳥羽)시, 아고만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시마(志摩)시도 유명하다. 이곳에는 부부 금실을 좋게 하는 부부 바위(夫婦岩)가 있다. 2개의 바위(男岩, 女岩)가 금줄로 묶여 있다. 화목하고 원만한 부부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곳을 다녀간 부부는 금실이 더욱 좋아진다고 한다.

일본 신사의 중심이 된 자연숭배(애니미즘) 신앙의 시작은 기이(紀伊, 와카야마) 반도의 원시림에서였다고 한다. 일본 중부지방에서 태평양으로 돌출한 일본 최대의 기이반도의 중남단은 높은 산과 숲 바위로 이루어진 산지였다. 이 산지에 여러 가지 자연숭배 신앙이 발생됐는데 불교의 도입과 함께 불교 정토 신앙과 어울려 이곳을 인간세가 아닌 신의 세계로 생각했다. 당시 헤이안 시대의 황족 귀족 등은 신령스러운 이 지역에 고난을 무릅쓰고 순례함으로써 장수와 소원 성취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이곳을 구마노(熊野)라 부르고 그 순례길을 구마노고도라고 했다.

기이산지와 세계유산 등록을 표시한 암석
기이산지와 세계유산 등록을 표시한 암석

7세기 이후 수도 교토의 황족 및 귀족들이 몇 달을 걸려 기이반도의 서쪽 해안을 따라 구마노의 다나베(田辺)까지 내려온다. 이곳에서 혼구(本宮) 신사로 가는 나카헤치(中辺路)를 따라 산길을 들어가기도 하고 동남쪽 해안가로 가는 오헤치(大辺路)를 통해 낙차 133m의 일본 최대의 나치 폭포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순례했다. 1000년 이상의 엄격한 예배와 정화를 위해 걷는 것 자체가 신앙 의식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간주했다.

구마노 순례는 구마노 신들의 영지 즉 지상과 천계 또는 예토(세속)와 정토가 만나는 곳을 찾는 구마노 신앙의 발현이었다. 2004년 5월 유네스코는 구마노 순례길(古道)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세계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성지 순례길에 이어 두 번째로 신앙과 관련되는 순례길로 인정받은 것이다.

구마노혼구 신사의 삼족오

산티아고 순례길의 대상이 된 산티아고는 예수님의 12제자의 한 분이 된 성 야곱이다. 그는 지금의 이스라엘 북쪽의 갈릴리호에서 성 요한과 함께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다. 산티아고는 지금의 그리스 지역에서 순교했으나 여기저기 이장되어 마지막 매장지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8세기경 스페인에서 발견됐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700년 이상 이슬람 국가에 의해 정복되어 탄압받던 기독교 국가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레콩키스타(재정복)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 산티아고 무덤의 발견은 기독교를 고무시켜 레콩키스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이유로 산티아고는 스페인의 수호신이 되어 스페인 또는 과거 스페인 식민지에 산티아고의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 주변에 800km를 일주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은 많은데 같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구마노고도를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다. 구마노고도가 덜 알려지기도 했지만, 반일정서로 기피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마노고도가 일본의 고유 자연숭배의 신앙과 한반도에서 건너간 불교에 의한 합작품으로 생각된다.

구마노 고도 여행을 하면 우리에게 친숙한 삼족오(三足烏)를 만날 수 있다. 구마노의 신사는 삼족오를 경배하며 신사의 여기저기에 삼족오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일본 신화에 의하면 기원전 7세기 초대 진무(神武) 천황이 나라(奈良) 분지의 원주민을 물리치기 위해 구마노의 바닷가에 도착했다. 구마노에서 나라까지 가는 길을 잃자 조상신인 아마테라스가 삼족오(일본에서는 야타가라스)를 보내, 안내를 시킨다. 진무 천황은 삼족오의 길 안내를 받아 무사히 나라 분지 원주민을 정복하고 야마토(大和) 왕조를 세웠다고 한다. 일본의 야타가라스(八尺烏)가 우리의 삼족오에서 전래된 것인지는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삼족오를 통해 고대 한일교류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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