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포행사 참여하면 정체성 생긴다
[기고] 동포행사 참여하면 정체성 생긴다
  • 임영언 재외한인학회장(전남대 교수)
  • 승인 2023.11.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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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현지 방문조사… 재일동포 차세대들 만나
임영언 재외한인학회장(전남대 교수)
임영언 재외한인학회장(전남대 교수)

재일동포 차세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언제 어떻게 자각할까? 필자는 오사카를 방문해 면접 조사를 했다. 이에 따르면 정체성 자각에는 다양한 계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재일동포 관련 행사에 참여하면서 정체성을 느끼는 경우다. 현지에서 만난 L씨의 말이다.

“민단이 주최하는 ‘춘계학교’행사에 참여하면서 인생관이 크게 바뀌었다. 일본인 학교에 다녀서 재일동포 친구가 하나도 없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민단 산하 단체인 학생회에 참가하게 되어 한국과 재일동포의 역사, 법적 지위 등을 배웠다. 나중에는 민단 청년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다양한 민족적 경험을 겪게 되었다. 춘계학교 참여자 중 학생회에 참가하여 그들의 정체성 등 인생이 크게 바뀐 선후배들도 많이 보았다.”

어머니가 한국 관련 행사에 자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 뿌리를 자각하게 되는 사례도 있다. 현지의 H씨의 사례다.

“너는 아빠가 일본인이고 엄마는 한국인인 일본인이다.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일본학교에서 한국어를 강의하는 행사에 갈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갔다. 이 때문에 청소년만 참여하는 행사에도 많이 갔다. 거기서 나와 같은 친구들도 만나고 한국인 친구도 만났다. 나는 요즘 일본학교에서 인기가 좋다. 친구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해 나에게 많은 것을 물어본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 공부도 한국문화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향후 한국에서 진행하는 캠프에도 참석하고 싶다.”

K씨의 경우도 비슷했다. 그는 재일동포의 한국 관련 행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일동포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동화로 연결되고 있는 것 같다. 단지 일본 사회에 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우리가 자신들의 뿌리를 다시 바라보고 수정하는 것으로 상호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재일동포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은 꽤 활발하게 한국 관련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내가 거주하는 지역은 참여할 기회가 전혀 없어서 유감이다. 어린이 잼보리에 한 번도 참여할 기회가 없었지만 어릴 적부터 같은 처지의 친구와 만나 놀이나 배움을 통해 한국과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많이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들 차세대들의 정체성 자각과 관련해 오사카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 고정자 관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85년 일본 국적법 개정으로 일본국적 결혼 자녀의 국적 취득이 가능함에 따라 재일동포 국적취득자들이 많아졌다. 향후 기존의 역사적 판단을 능가하는 한류 파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정체성 회복의 관건이다. 과거 재일동포 1세들은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일본 사회의 차별에 당당히 맞서왔으며 2세~3세는 약해진 정체성의 회복에 노력해왔다. 그러나 최근 재일동포 3세 이상은 기존의 사고에 크게 구속되지 않은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재일동포 3세 이상의 정체성은 역사성과 무관하게 그들의 호불호에 따라 표출되는 측면이 있다. 이것은 한류가 통째로 재일동포 사회를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한류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한국문화의 흐름을 지칭하지만, 그사이에 존재하는 재일동포의 존재 자체를 망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오사카 ‘왔소’ 문화교류협회 박충홍(朴忠弘) 이사장의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재일동포 차세대들이 루츠(Roots)를 알고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한국 국적을 지키는 것이 민족정체성을 지키는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이제는 국적은 일본인일지라도 한국인의 루츠와 문화를 유지하고 계승해 나가는 방안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일본에서 국적은 귀화해도 용인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루츠와 문화까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글로벌시대 좁은 일본 내에서 우리 민족끼리 모여 살기보다는 글로벌 시민으로서 루츠와 문화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글로벌 시민으로서 차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언어와 이중문화의 장점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국적은 가변적이어도 루츠와 언어, 문화 등 민족적 요소는 불변한 것이며 노력으로 지속될 수 있다. 재일동포 차세대들이 국적은 일본인이더라도 축제를 통해 한국인의 루츠와 문화를 꼭 자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왔소’ 축제의 이사장직을 맡아 매년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류 붐을 타고 전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한류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한국어와 한국문화 배우기를 좋아하는 세대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례도 있었다. B씨는 이 같은 사례에 속한다.

“과거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무시당하거나 기회를 박탈당하는 등 손해 보는 일이 많았으니까 일부러 노출하지는 않았다. 민단이 주최하는 한국어 교실에 일본인이 많았는데 그들 중 재일동포들도 더러 있었다. 일본인 참석자 수강생들이 33명 정도였는데 나중에 33명 중 10명이 자기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밝혔다. 한글학교는 재일동포 학령기 청소년들을 위한 정체성 교육을 제공하는 곳이지만, 일본인의 경우 배움의 시기를 놓친 성인, 한류 붐에 관심 있는 성인들이 교류하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한글학교 역할이다. 많은 일본인이 한글학교를 찾아오고 자연스럽게 한국인임을 커밍아웃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2022년 재외동포재단은 재일동포를 대상으로 정체성 설문조사를 했다. 이에 따르면 재일동포들은 자기 뿌리, 소속감, 문화와 언어 긍지, 자기 인식, 한국에 대한 긍지, 재외동포로서 인식, 문화행사 참여, 한국 미디어 시청 등의 비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반면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 취급 혹은 재일동포로서 혐한 경험 등은 매우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일본 내 재일동포들이 한국의 국격이 상승함에 따라 자신에 대한 긍지가 높아지고 예전보다 차별과 배제 경험을 덜 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재일동포의 국적 선택에 따른 정체성의 차이 분석에서도 일본 국적 취득이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실적인 이유이고 민족의식의 부족에 따른 결과라는 종래의 결과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조사에서 재일동포 차세대들에게 한국계 루츠를 가지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항을 질문한 결과, 한국어 구사 능력 23.4%, 한국 역사 공부 20.9%, 한국문화 습득 18.8%, 본명 사용이 17.9%, 국적 유지가 16.4%, 한국계와 결혼이 2.5% 등으로 응답했다. 재일동포의 한국어 구사 능력과 민족단체 활동 간의 차이 분석에서도 민족단체 참여도가 높을수록 민족정체성의 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한국어 교육을 받은 경험과 단체활동 참여가 정체성 형성과 자기 뿌리 인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정체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재일동포의 친구 관계와 정체성 간의 관계에서 친구 관계가 많을수록 정체성 강도가 높게 나타난 것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결과는 재일동포 차세대들이 친구 관계가 활발할수록 정체성의 강도도 높아 민족학교 활성화, 한글학교 강화 등 재일동포들이 모이는 기회나 활성화 프로그램 운영이 정체성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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