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천부당만부당
[이영승의 붓을 따라] 천부당만부당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3.12.02 0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사람이 파리목숨보다 못하게 죽어간다. 동유럽과 중동 다음은 한반도와 대만이 시한폭탄 지역이라고 한다. 나라마다 핵무장을 하겠다고 혈안이니 원자폭탄 확산도 시간문제다. 이러다 정말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인간을 흔히 ‘만물의 영장’이라 한다. 과연 그럴까? 나도 수년 전까지는 그 말을 믿었다. 수많은 동물 중에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자부심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요즘은 동물보다 못한 인간도 많지 않던가?

나는 동물의 생태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단 한 번 애완견을 키워본 적 있으나 그도 결과가 좋지 못했다. 40년 전, 초임 과장으로 발령받았을 때이다. 정년퇴직을 앞둔 지점장이 매일 간부 회의를 애완견 얘기로 시작했다. 하루는 기르던 치와와가 새끼를 낳았다며 세 과장에게 분양해주겠다고 했다. 다들 반겼으나 나는 동물에 관심이 없고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걱정이 앞섰다. 예고 없이 퇴근길에 강아지를 안고 들어가자 아내는 무척 놀랐다. 그러나 네 살 전후 두 아이는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치와와는 ‘재롱’이란 이름으로 한 식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불 속을 파고들어 잠을 깨우는 재롱이에게 정을 붙일 수 없었다. 수시로 똥을 누고 털을 날리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 수개월 후 서울로 발령났다. 급히 이사하느라 재롱이를 시골 처가에 맡겼다. 그런데 1년 후에 갔더니 소, 개, 닭들과 같이 바깥에 재우고 아무 음식이나 먹여 보통 강아지나 다름없이 되어 있었다. 목욕을 자주 시키지 못해 몰골이 말이 아닌데 뜨거운 소죽 솥에 데어 다리도 절었다. 치와와를 본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아이들이 울고불고 난리였다.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천만 명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아마도 장수 시대라 독거노인이 많아지고,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아 1인 가구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삭막한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 동물이 인간보다 정을 많이 주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 애완견을 끔찍이 사랑하는 지인을 만났다. 키우던 애완견이 병사하여 장례식을 성대히 치렀는데 병원비와 장례비가 천만 원 넘게 들었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소중한 인연으로 만나 제대로 정을 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우리 치와와에게 깊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 후 나는 동물을 인간과 대비하여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인간도 광의로는 분명 동물의 한 종이다. 인간의 뇌가 동물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것은 사실이겠으나 그렇다고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너무 자화자찬이다.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지혜가 동물보다 무조건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닭의 경우만 보아도 어느 정도 입증된다.

수탉의 벼슬은 금관을 연상케 하며 작은 체구의 울음소리는 천하를 진동시킨다. 그리고 털 없는 닭의 걷는 모습이 공룡을 닮았다 하여 익룡(翼龍)의 변종이라는 설도 있으며, 그 위풍은 언제 보아도 도도하다. 수탉은 암탉 20마리 정도 거느리는데 암탉을 절대 편애하는 법이 없으며, 암탉도 서로 시기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닭의 지능은 7세 아이 수준인데 자기 인지능력이 있고 간단한 연산도 가능하며 24가지 울음소리로 언어도 구사한다. 병아리를 부화시킬 때는 21일간 먹지 않고 알을 품으며, 부화 후 50일간 키울 때도 새끼들 배를 채우기 전에는 먼저 먹는 법이 없다. 독수리가 공격해도 물러서지 않고 목숨 바쳐 싸울 때는 맹금류에 버금간다. 이토록 모성애가 강하건만 독립시킨 후에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집착하는 인간과 달리 남남으로 돌아서 초연하게 살아간다. 이만하면 인간보다 더 달관한 삶이 아닌가?

닭은 인간이 사육하는 가축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에게 유익하다. 2018년 기준 연간 도축된 수가 600억 마리로 2위에서 7위까지 도축된 가축의 7배나 된다. 그리고 연간 낳는 달걀은 세계 인구 76억 명이 1인당 매년 160개를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래서 만약 닭이 없었다면 인류가 단백질 부족으로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고마움을 모르고 닭을 저능한 동물로 치부하여 머리 나쁜 사람을 보고 ‘닭대가리 같다’라고 조롱한다.

생명체가 사는 궁극 목적은 종족보존(種族保存)이다. 그런데 이를 위한 인간의 삶이 동물보다 절대 우위일까? 개미 같은 작은 미물도 생존의 지혜가 인간보다 나은 면이 있으며, 동물은 생존을 위해 상대를 죽일지언정 인간처럼 종족을 대량살상하지는 않는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만 해도 동물이 먼저 감지하여 대피하지 않던가? 어떤 생명체가 지구촌에 오래 생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인간보다 더 사악하고 이기적인 동물은 없을 것이며, 지구 종말이 온다면 분명 인간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하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부회장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