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중국 징광(京广)고속철도, 3시간 연착해 광저우 도착
[탐방] 중국 징광(京广)고속철도, 3시간 연착해 광저우 도착
  • 베이징, 광저우=이종환 기자
  • 승인 2023.12.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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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서역

(베이징, 광저우=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기자   

기차에서 한눈을 파는 사이에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소설 ‘설국’의 첫머리는 이런 느낌으로 썼을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세계였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이렇게 시작되는 ‘설국’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이다.

중국 북부지역에는 이날 눈이 내렸다. ‘올겨울 첫눈’이라는 뉴스가 광저우행 철도를 타러 가는 택시 안에서 소개되고 있었다.

이날 북경의 차량들은 거북이 운행을 했다. 10시행 기차를 타려고 아침 7시에 출발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인타운인 왕징에서 광저우행 고속철도가 출발하는 북경 서역까지는 택시로 한 시간이면 충분했지만, 무려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북경을 방문한 것은 4년 만이었다. 코로나와 한중관계 악화 등으로 북경 방문이 쉽지 않았다. 중국한국인회총연합회가 총회장의 연이은 사퇴 등으로 흔들린 것도 한몫을 했다.

이번 방문은 중국한국인회총연합회장 취임식과 함께 2023 한중우호의 밤 행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12월 8일 저녁에 열린 이 행사에는 중국 전역에서 40명에 가까운 전현직 한인회장들도 참여해 오랜만의 ‘단합’ 분위기도 감돌았다.

“비행기로 가지 않고 왜 기차로…”
“고속철도 차창으로 비치는 풍경을 한번 즐겨보려구요.”

이런 문답을 하며 예약한 고속철도 표는 북경에서 광저우까지 7시간 40분간 달리는 여정이었다. 10시발 기차가 개표를 시작한 것은 출발 30분 전이었다.

고속철도는 개표할 때 신분증을 꺼내야 했다. 중국인 승객들은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증을 꺼내 검표기를 통과했다. 외국인은 여권 확인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표가 필요 없어요. 신분증으로 누가 어디 가는지 다 알거든요.”

여행사에서는 휴대폰으로 표를 보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말대로 검표원은 휴대폰의 표를 보자고 하지 않았다.

북경에서 탄 기차는 홍콩 구룡역이 종점이었다. 옆자리에는 종점까지 가는 젊은 사람이 앉았다.

북경에서 광저우까지는 7시간 40분이 걸리고, 홍콩 종점까지는 다시 한 시간 반이 더 걸린다고 기차 구내 방송은 소개를 했다.

기차가 출발하자 창밖은 온통 흰색이었다. 넓은 들녘에 눈이 덮여 눈에 보이는 모두가 설국이었다.

“다음 역은 정저우역입니다. 165분 연착해서 죄송합니다.”

이같은 기차 구내방송이 나왔을 때 승객들은 태연했다. 한국이면 20분만 늦어도 보상을 하느니 방송이 나오는데, 중국은 기차 방송도 승객 반응도 달랐다.

황하를 지나자 고속열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첫눈 때문에 기차 속도가 느렸던 모양이었다.

정저우를 지나 고대 하나라의 수도였다는 안양 부근에 이르자 들녘은 푸른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밀인지 보리인지, 중원의 대평원은 마냥 녹색이었다.

“황학루가 차창에서 보일까?”

호남성 성도인 우한이 다가올 때 이런 생각을 했지만, 차창 밖으로는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 정저우의 황하는 푸른 물빛이었는데, 우한의 양자강은 언제 통과한 지도 모르고 지나쳤다.

“2위안 대신 이 물로 드릴께요.”

밀차를 끄는 젊은 여성이 잔돈 대신 작은 물 한병을 내밀었다. 백두산에서 담은 물이었다. 사천식 육포를 사면서 현금을 내밀자, 잔돈은 나중에 주겠다고 하더니 물을 들고 왔던 것이다.

중국은 현금이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기차에서 식사 주문도, 간식 결제도 모두 위챗으로 했다. 현금 실종의 사회였다. 택시도 편의점도 중국은 한결같이 위챗 결제로 바뀌어 있었다.

이 때문에 외국인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현금으로는 잔돈 거슬러 받기가 어렵다.

광저우에 도착한 것은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였다. 광저우에서는 승객들이 많이 내렸다. 연결편 기차표를 샀다가 연착으로 놓쳐서 호텔에서 자고 가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해봐야 결과는 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 언론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광저우 가는 기차를 탄 적이 있었다. 기차가 무려 40시간이나 걸릴 때였다. 지금은 불과 8시간이면 도착한다. 이 때문에 창밖 풍경도 기대하고 탔으나 이날은  ‘장날’이었다. 강설로 인해 3시간 가까이 연착된 것이었다. 중국대륙다운 ‘연착’이라고 할까?

광저우 남역에 내려 호텔로 가는 택시에서 눈 때문에 고속철도가 3시간이나 연착됐다고 하자, 택시 기사는 비행기라면 훨씬 더했을 것이라고 웃어넘겼다.

광저우 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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