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대자적(對自的)인 삶
[대림칼럼] 대자적(對自的)인 삶
  • 최옥란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 승인 2024.01.11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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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배병우 님은 40여 년 동안 산속에 들어가 소나무를 찍은 작가로 소나무 사진작가라는 닉네임을 얻고 있다. 영국 가수 엘튼 존이 배작가의 소나무 작품에 매료되어 그의 사진작품을 구입하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유심히 살펴볼 점은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소나무들이 대부분 이른 새벽에 촬영된 것들이라는 것이다. 왜 작가는 어두컴컴한 새벽에 산속에 들어가 적막함과 씨름하며 그 시간을 기다린 것일까?

작가는 “바로 숲에 빛이 들어오는 순간, 공간이 열리기 시작하고 시시각각 새로운 형상들이 창조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빛이 들어오면서 공간이 열리는 시시각각의 순간들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는 순간 숲의 주인공은 ‘관찰자’다. 변화하는 모습들의 찰나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초 집중적으로 렌즈를 통해서 관찰하고 있는 시선 자체가 곧 주인공이다. 만약 사진작가 자신이 그 관찰자의 시선을 잃어버린다면 그 숲은 여느 숲과 다르지 않으며 고요한 적막은 말 그대로 적막에 불과할 뿐이다.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런 자연현상으로부터 괴리를 만드는 것이며 거리를 유지하는 의도적 행위에 속한다. 철학에서는 이것을 ‘대자적’이라고 한다.

‘대자적’이란 현상에 대해서 일정의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관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대립하면서도 침몰하지 않을 힘을 갖게 된다. 성숙한 인간의 삶은 이렇게 의도적으로 마음의 공간을 유지할 때 형성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와 반대로 인간의 태도는 현상에 즉각 반응하고 여과 없이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으며 건강한 대립이 양립할 수 없는 태도를 즉자적(卽自的)이라고 말한다. 이런 태도로 우리는 100년을 산다 해도 성숙된 걸음은 1센치도 걷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즉자적’, ‘대자적’이란 말은 독일 철학자 G.W.F.헤겔이 사용한 용어이다. ‘즉자적’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에 매몰되어 객관적이지 못한 것을 말하는 동물적 태도이고, ‘대자적’이라는 것은 ‘거리를 둔다’는 뜻으로 주관인 자기 자신까지도 객관화하여 반성하고 관찰하는 태도를 지니는 이들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대자적 관점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두운 숲에 빛이 들어옴으로써 공간이 열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상에서 자신을 안으로 비추어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긴다. 그 순간 현상과 타인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의 공간이 확보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는 전제가 있다. 사진작가가 빛이 들어오기 전에 어두운 산속을 올랐듯이, ‘나’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인식과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안의 어두운 동굴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숙으로 가는 여정은 늘 그러하듯이, 자신의 미성숙함을 인식한 그 순간 시작된다.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대자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그에 앞서 자신의 미성숙함을 인정할 용기가 있는지 자신에게 묻고 싶다.

필자소개
최옥란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동북아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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