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사랑과 베풂의 신년 음악회
[Essay Garden] 사랑과 베풂의 신년 음악회
  • 최미자 재미수필가
  • 승인 2024.01.11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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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처럼, 지휘자 금난새가 미국 어바인(UCI) 대학교로 날아왔다. 갑진년 1월 7일 일요일,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안고서. 고국에 살 때 오래전 나는 ‘금난새’라는 독특한 이름을 알았는데, 지금은 해설해주면서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지휘자라는 것도 알고 반가웠다. 만나고 싶던 그분이 온다는 소식에 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연주 전날 저녁을 먹고 나는 남편과 딸을 위해 유튜브를 TV에 연결해 그가 누구인지를 알도록 권고했다. 그런데 부녀의 반응이 좋았다. 흥이 난 나는 부엌일을 하면서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날아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가더라-

가곡 ‘그네’는 금수현(금난새의 부친) 작곡, 김말봉(금난새의 외할머니)의 작사이다. 이곡이 해방이 된 후 1948년에 발표되었다니 금난새 지휘자가 두 살 때쯤 인가보다. 대한민국 최초로 순 한글이름을 자녀들에게 지어준 애국심이 가득한 부친 금수현. 지휘자 금난새의 아들도 음악대학 교수라니 3대가 복 많고 자랑스러운 음악가 집안이다.

이민 올 때 나는 우리 가곡전집인 LP판을 들고 왔지만, 여전히 미국생활은 삭막하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회가 더욱 고맙다. 샌디에이고에서 두 시간 운전하여 처음 가보는 어바인 대학교는 생각보다 꽤 넓었다. 구글 지도 안내는 때론 엉터리가 많아 나는 미리 지리 공부를 하고 왔지만, 조금 헤매었다. 어제저녁부터 매섭고 차가운 칼바람은 일요일에도 불었다. 바클레이(Baclay) 극장의 주차장에 막 들어와 주차직원에게 표를 사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이 행사를 알려주고 내 딸의 이름으로 등록을 해준 전원일(의대동문) 박사가 어디쯤 왔느냐며 묻는 전화였다. 몇 해 전 그는 샌디에이고 노인회와 감리교회에서 친구인 황교안 전 총리의 강연자리를 마련해 준 분이었다. 그가 여기서 15년 살았다는데, 우린 서로 모르고 지냈다. 지난해인가 은퇴하여 어바인 근처로 이사를 간 후에야, 우연히 우린 전화로 대화를 자주 나누게 되었는데, 지금은 긴 세월의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또 직장 생활을 하던 내 딸아이가 수년 전 고국으로 역유학을 가 뜻밖에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게 되어 오늘의 인연에 닿은 것이다. 삶은 이렇게 때론 경이롭다.

며칠 전 신문에서 음악회 정원은 750명인데 900명의 신청이 들어왔다는 기사를 읽었다. 극장 앞에는 겨울코트와 양복을 입은 대한민국의 멋진 지성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거나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4시가 되어 모두 자리에 앉았다. 팸플릿 인쇄물에는 빼곡하게 연주자의 경력과 음악회를 위해 협찬해준 분들의 광고가 영어와 한글로 완벽하다. 드디어 무대에 오른 금난새 지휘자가 소개를 하며 서곡 음악을 짧게 들려준 후 해설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들어보라며 서곡을 연주했다. 그의 온화한 독특한 미소와 함께 일상에서 대화를 하듯이 악보의 가락을 재미있게 설명해주었다.

여기 단원 중에 바이올린(앤디 권)과 비올라(대 권) 형제가 있다면서 연주자들의 긴장도 풀어주었다. 그의 유머스러운 대화는 청중인 우리를 계속 웃게 만들었다. 비발디(Vivald)의 사계절 중 ‘겨울’로 음악회를 시작했다. 다음은 무디(Moody)의 스페인 환상곡 ‘톨레도’는 하모니카와 협연했다. 작곡과에 진학했지만 하모니카 공부만 했다는 이윤석(현재 명지대 객원교수). 입고 나온 연주자의 파란색 의상까지도 사랑과 관심으로 섬세하게 소개하던 지휘자. 우린 계속 박수를 보냈다. 그는 앙코르 곡으로 ‘Moon River’를 들려주었다. 하모니카와 오케스트라, 정말 멋지다. 문득 친정아버지가 긴 호흡으로 멋진 베이스를 붕붕 넣으면서 부시던 하모니카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두 번째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김기경. 베를린 국립음악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한 젊은이란다. 뮤지컬과 연극 등 다양한 재능과 경력으로 <복합 문화공간>이라는 유튜브를 현재 운영하고 있단다. 지휘자는 재치 있는 대화로 연주자와 청중을 웃음 속으로 몰아넣는 마력이 있었다. 그는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곳 동문회장을 호명하여 박수를 쳐준 후 신청곡을 받았다. 덕분에 우린 ‘닥터 지바고’의 주제곡인 ‘Some where my love’를 생음악으로 피아노의 연주와 함께 들었다.

이어서 이 극장인 장소를 마련하느라고 애쓴 캐롤씨를 불러 세우고 또 신청곡을 받았다. 그녀는 ‘러브 스토리’를 청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김기영 피아니스트는 아름다운 변주곡으로 우리의 말라붙은 심장을 잠시 사랑에 빠지게도 해주었다. 우리 모녀는 브라보, 브라보를 곡이 끝날 때마다 큰소리로 외쳤다. 곁에 앉은 남편은 지휘자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말 외엔 눈을 크게 뜨고 앉아있었다. 결코 지루하거나 따분한 오케스트라가 아니었다.

이젠 기타리스트와 함께 ‘디앙(Dyens)의 탱고 엔 스카이’ 연주 차례이다. 출연자 중 막내인 지익환도 경력을 읽어보니 대단한 음악가였다. 금난새 지휘자의 눈에 발굴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며 연습했을까. 금 지휘자는 병역을 마치고 이십대 후반에 독일로 들어가 어렵게 공부한 사연이 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로벤스타인’이라는 교수의 따뜻한 배려로 6년 동안 독일에서 사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받은 은혜를 지금 고국에 돌아와 음악을 공부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한다.

KBS 교향악단 최연소 지휘자로 시작했지만 12년 후에도 편안히 살지 않고 옮겨 다니면서 도전하고 있는 지휘자이다.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내의 내조도 보이지 않지만, 나는 상상할 수 있다. 백발의 나이에도 먼 곳에서 이렇게 건장함을 보여줄 수 있는 저력은 가족의 힘이다. 마지막으로 다 함께 ‘고향의 봄’ 노래를 합창했다.

오늘 예쁜 팸플릿에는 서울대 한국동문회장(김종섭)과 미국 총동문회장(이상강)을 비롯하여 삼익피아노 등 여러 동문들의 크고 작은 광고와 명단이 있었다. 이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리더와 큰손들이 있기에 오늘처럼 아름다운 음악회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아이는 ‘Moon River’를 들을 때는 무대로 달려가 마이크를 잡고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8명의 단원이 어떻게 대인원의 오케스트라처럼 소리를 낼 수 있느냐고! 모처럼의 행복한 시간에 감동의 연속이었다고 우린 입을 모았다. 2024년을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필자소개
미주 한인언론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네번째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Ⅱ>(2022)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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