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체험수기] 어둠 속에서 창조한 밝은 그림(장려상)
[병역체험수기] 어둠 속에서 창조한 밝은 그림(장려상)
  • 오창윤(1510부대 2작전지원중대 일병)
  • 승인 2024.01.18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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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자녀들이 모국에 들어와 자원입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병무청(청장 이기식)은 이들의 군 생활 체험을 담은 수기 공모전을 2년마다 진행해 이북(e-book)으로 발간해왔다. 월드코리안신문은 병무청의 승낙을 받아, 최근 발간된 이북 <2023년 대한사람 대한으로>에 실린 우수 체험수기들을 연재로 소개한다.[편집자주]

‘대한민국 군 입대’라는 색은 제 가족, 친구 할 것 없이 모두를 놀라게 하였고, 그들은 이미 합법적으로 군 복무가 연기된 입장에서 여태 미국에서 자리 잡아놓은 많은 것들을 뒤로하려는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앞다퉈 만류하기 바빴습니다. 제 지인들 눈에는 마치 이미 완성되어가는 초록색 산봉우리 그림 위에 뜬금없이 파도를 그려 넣기 위해 파란색 붓질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시간 낭비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이 결정에는 사실 심금을 울릴 만한 애국심에서 비롯하였다기보다 큰 굴곡 없이 살아온 인생에 한층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저에게는 고향이지만 새로운 환경인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일들에 도전해 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병역이행이 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로 가득 찼던 결심은 입대 후 단 3일 만에 후회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제 그림에 아름다움만 더해줄 것이라 믿었던 제 당찬 파란 덧칠은 도리어 한 번의 붓질로 순식간에 그림을 망친 것만 같아 보였고, 여태 순조롭게 완성해오던 그림을 복구하기 위해 족히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막연함과 절망감만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에서 생활하다 순식간에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14명이 걸음걸이, 식사, 샤워, 심지어 용변까지 24시간 통제되는 삶을 피부로 경험하니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내렸던 결심이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후회로 가득 찼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최대한 빨리 흐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6년 만에 처음으로 책을 펼쳐보기도 했고 난생처음 명상도 해보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는다는 마음이었으나, 발버둥 칠수록 더욱 끌어내리는 늪처럼 더 깊은 고민에 빠지는 저 자신을 발견할 뿐,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낯선 생활에 하루하루 지쳐갈 때쯤, 제가 그토록 찾던 제 그림의 해결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바로 제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은 바로 ‘전우’ 였습니다.

입대 전 6년 넘게 사회생활을 해온 저로서는 한 개인의 막대한 영향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면접을 볼 때마다 느꼈던 것은 회사의 산업, 목표, 명성에 상관없이 면접 후보자의 인성을 가장 중요시하였습니다. 특출나고 똑똑한 인재들이 넘쳐나는 시대이기에 지적 수준만 높은 사람보다 몇 개월에 걸쳐 밤낮없이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함께 인내할 수 있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판별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강도 높은 업무가 주는 신체적 피로를 팀원들과의 교류를 통한 해소로 심적인 안정감을 촉진함으로써 이상적인 근무환경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근본적 사고였습니다. 이는 훈련소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국 각지(어쩌면 세계 각국)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모인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낯선 생활을 헤쳐나가는 데에는 공통적으로 서로의 전우가 큰 몫을 해냈습니다.

입영 후 하루가 지나자 바로 옆 침대에 있는 동기와 말을 트고, 한 주가 지나자 분대에 있는 14명이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한 주가 지나자 한 소대가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했고, 한 달이 지났을 땐 한 중대 전체가 하나가 되어 움직였습니다. 사격 훈련장에 햇볕이 세게 내리쬐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서로 가려주기도 하였고, 당일 오전 진료 때문에 교육을 듣지 못한 저를 위해 당장 오후 평가를 앞두고도 본인 연습을 뒤로 하고 차근차근 자세와 총기 제식을 가르쳐 주는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화생방 훈련에 앞서 서로의 방독면 끈을 묶어주는 것은 물론이며, 세열수류탄 투척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전우를 위해 흐르는 식은땀을 숨기며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마지막 훈련이자 악명 높은 20KM 행군 때는 본인의 어깨가 짓눌리고 발바닥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으면서 서로의 군장을 한 번씩 들어주며 무게를 잠시나마 나누기도 하였고, 저도 그간 경험했던 선의들에 동화되었는지 행군 마지막 바퀴를 앞두고 탈수 증세를 보이던 소대원에게 한 치의 고민 없이 제 마지막 남은 물 몇 모금을 건네주기도 하였습니다.

앞서 나열한 선의들은 훈련소 기간 동안 목격한 수많은 선행 중 극히 일부분이며 찬양받을만한 행위처럼 비추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 사격 훈련장에서 받았던 도움이 마지막 행군훈련장에서 베풀 수 있었던 호의로 자연스레 이어진 것처럼 서로를 향한 소소한 도움의 손길들이 줄을 이어 하나의 ‘선행 뫼비우스 띠’를 만드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나비효과였다고 생각합니다.

고된 훈련들을 버티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개개인의 타고난 신체 능력보다도 중요한, ‘바로 옆에 있는 전우와 함께라면 그 어떤 역경도 쉽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로써 입대 직후 소용돌이치던 후회는 눈 녹듯 사라지고 앞으로 사회에 나가 마주칠 험난한 ‘전시상황’이 오더라도 곁에는 언제나 함께 맞서 싸울 수 있는 ‘전우’들이 있어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계기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대장 훈련병으로서 소대원들과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하고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캔버스 전략(The Canvas Strategy)을 직접 펼칠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하였습니다. 캔버스 전략이란 로마어로 안테암불로(anteambulo), 또는 길라잡이가 되어 다른 사람이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도록 캔버스를 준비하듯 자발적으로 타인에게 편의를 제공해줌으로써 그들의 효율성을 높여주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길을 만들어나가는 상황으로 이끄는 현상을 뜻합니다.

훈련병으로서 적지 않은 나이 탓에 대단하지는 않지만 타 훈련병들보다 비교적 많은 사회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조언들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여러 가지 업무가 몰려들거나 추가로 급작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우선순위를 매기며 효율적으로 처리를 하는 지식을 토대로 출타 준비, 설문 조사, 분담지역청소 등 다수의 지시가 동시에 상급자에게서부터 하달됐을 경우 당황하지 않고 차례대로 해결하는 비결을 전수해주었습니다.

또한, 훈련병, 조교, 그리고 교관님들 사이에 확연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군대라는 하나의 사회구성 안에서 중요한 소통법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해보았습니다. 상급자인 조교와 교관님들과 대화를 할 때 존칭을 쓰듯, 계급이 같고 나이가 비슷한 또래일지라도 동기 훈련병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최대한 상대방을 존중하는 어조를 사용해보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 제 의견을 받아들여 준 훈련병들 사이에서는 이전과 같은 의미를 전달해도 투박했던 말투들이 점차 순화되기 시작했고 이내 수료할 때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저에게는 이미 시작해버린 파란 붓질의 방향 정도만 바꾸는 행위에 불과했을지라도 이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그림을 시작해볼 수 있는 캔버스를 선물하게 된 값진 기회였습니다.

병역이행을 통해 느낀 보람은 훈련소를 지나 자대에서의 임무를 완수하면서 부모님이 매일 밤 두 다리 뻗고 편히 주무실 수 있게 해드릴 수 있다는 자부심, 기쁨, 그리고 책임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우가 각자의 위치에서 불철주야 전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생활할 때에는 군 관련 소식을 접하거나 용사들을 직접 마주하게 되어도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있다는 사실에 표면적으로만 감사하고 당연시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군사 훈련을 받고 실무에도 투입되어보니 긴 역사 동안의 선대들의 노고와 희생에 더욱더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이어지는 역사의 한 장에 작게나마 이바지할 수 있다는 기쁨이 생겼습니다.

제가 취하는 행동 하나가 어쩌면 저희 부모님을 포함한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국가를 위험에서 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책임감도 커져갔습니다. 암담해 보이기만 했던 군 생활이 하루하루 자부심, 기쁨, 또는 책임감으로 채워져 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저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보람찬 날들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는 모든 전우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서로를 위하는 사람 관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막대합니다. 군대라는 하나의 사회는 강력한 위계질서와 절차들로 자칫 딱딱하기만 하고 융통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당장 내 옆에 있는 전우들과 함께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군 생활은 시간 낭비가 아닌 보람 가득한 생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전역을 한 후 끝없이 많은 사람과 무한한 교류가 이어질 사회로 뛰어들게 될 저는 전우들이라는 소중한 관계와 서로 간에 신뢰를 쌓고 상부상조할 수 있는 가르침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속해서 마주하게 될 새로운 도전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와 설상가상 원판과는 조화롭지 못해 보이는 모험적인 붓질을 추가로 하게 되어도 긍정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며 해결책을 찾을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앞으로의 인생은 어떤 그림이길 희망하십니까? 그 어떠한 색으로 채워진 그림이 펼쳐져도 본인만의 발자취가 담긴 작품을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 설령 그림의 색채가 다소 어두울지라도 관점을 달리하고 새로운 ‘붓질’을 시도할 용기를 내어 그 위에 밝은색을 하나둘 덧칠하다 보면 보다 희망적인 색으로 뒤엎어 결국에는 두고두고 보고 싶을 만한, 그런 예술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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