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경계에 대하여
[대림칼럼] 경계에 대하여
  • 예동근 재한동포문학연구협회 회장(부경대학교 교수)
  • 승인 2024.03.19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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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란 용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다문화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 인종, 민족, 국경의 경계들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고 “경계를 넘어서다”와 같은 말은 이제 봇물처럼 쏟아지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관광의 국제화가 되면서 세계테마여행을 비롯한 다양한 여행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은 직접 여행을 다니면서 경계 넘어서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경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반려동물 사이의 경계가 민감해지면서, 새로운 갈등과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2027년부터 개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여야의 합의로 통과되었다.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해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은 이제 개고기 종주국에서 개고기 소멸국이 되었다.

어떤 나라에도 먹는 것을 금지하는 법은 없다. 무슬림 등 종교에는 특정 동물을 먹지 못하는 율법은 있지만, 국가가 법으로 개고기 같은 가축을 법으로 금지하는 선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법을 개고기를 먹을 수 있는가, 아니면 금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물이 두 개의 경계로 나뉘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합의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개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개(狗)’와 ‘인간의 반려동물로서의 견(犬)’으로 이해하는 두 가지 경계 사이에서 완벽하게 교차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동물적 종과 사회적 종으로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애완견은 한국 사회가 서구 문화의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부터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단독 가구 증가, 그리고 출산율 감소와 같은 문제에 부딪히면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유모차에 어린아이 대신 애완견이 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현실이다. 이러한 급변하는 상황에 대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합의를 이루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즉 반려동물에 대한 체계적인 법안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개를 먹을 수 없다”, “개고기 먹는 사람을 인간 취급하지 않고 개를 사육하는 사람에게 벌금을 내려야 한다”는 접근 방식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반려동물에 대한 체계가 잡힌 법안이 없고 반려동물을 “인간의 동반자”로 대할 법과 사회의 합의도 형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개가 죽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이 또한 여전히 미해결 상태이다. 이를테면 화장은 가능하지만 수목장은 불가능하다. 매장도 불가능하다. 덩치가 1.5 미터 이상 되는 개는 화장시킬 수 있는 화장터를 찾기 힘들어서 반 토막 내야 한다. 개가 급사하여 빨리 처리해야 하면 그냥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쓰레기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을 키울 때는 잘 모르지만 그 죽음을 맞이할 때, 시체를 처리할 때 그 경계는 명확해진다. 이는 애완견을 키우는 이들에게 심리적인 고난을 안겨준다. 애완견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인과 반려동물은 단순히 동물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작명하여 이름을 불러 준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영혼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영혼을 교류하는 동반자급으로 오히려 사람보다 더 친하고 익숙하고 가까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친한 친구의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애완견이 아프면 조문하러 가는 것보다 동물병원에 먼저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안해, 친구야, 우리 집 ××가 아파서 문상 못 갔어!”. 혹은 “우리 집 ××가 어제 저세상에 가서 지금 갈 기분이 아니야!” 이런 대화들로 카톡방에서 갑론을박하는 논쟁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애완견과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부 사람들에게 동물과 사람의 경계는 흐려졌다고 할 수 있다.

개를 기르고 도축하고 먹는 시대는 이미 가고 말았다. 그때는 개라 할지라도 주인들이 양이나 돼지, 소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정성을 쏟아 기르긴 했지만, 결국 사회적으로는 “개는 개다”, “개는 소나 양과 같은 동물이다”라는 합의가 있었다.

개를 도축하고 개고기를 팔고 먹을 수 있는 자유가 법적으로 사라진 순간부터, 개는 더는 그저 개가 아니다. 개는 이름을 가진,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개고기를 먹는 소수자의 문제는 다수의 힘으로 입법이란 합법적인 폭력으로 묵살되었지만 더 큰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개와 사람의 경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애완견이 들개로 변해서 미친 듯이 거리를 다니면서 사람의 위협할 때는 사살할 수 있을까? 애완견이 갑자기 도로 중간에 뛰어들어 교통사고를 일으킬 때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애완견이 인간에게 살해당했을 때 어떤 처벌이 필요한가?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정말 개의 세상인지? 사람의 세상인지? 경계를 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합의가 없이 너무 급속하게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예동근 재한동포문학연구협회 회장(부경대학교 교수)
예동근 재한동포문학연구협회 회장(부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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