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디아스포라 그리고 헤로니모를 만나다
[해외기고] 디아스포라 그리고 헤로니모를 만나다
  • 황현숙(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27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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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Diaspora)란 단어는 이스라엘을 떠나서 방황하며 전 세계를 떠도는 유대인의 역사적인 현상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글로벌시대를 맞아 고국을 떠나서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다른 민족들도 사회 과학적으로는 ‘디아스포라’라고 불린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 말은 호주에서 삶을 살아가는 한인 교민들을 부르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호주에 살고 있는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혹은 호주 사람입니까? 또는 한국계 호주인입니까?(Are you Korean or Australian or Korean- Australian?”) 1세대의 부모들은 2세대, 3세대에 이르는 후손들의 정체성을 어떤 대답으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기에 이른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갈등하고 고민하던 뉴욕의 한 젊은 한국계 변호사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인생을 탈바꿈하는 계기를 맞았다. ‘전후석 감독’,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쿠바의 한인 이민자 일 세대인 헤로니모를 알게 된 것이다. 헤로니모는 스페인식 이름으로 헤로니모 임(Jeronimo Lim: 임은조)이 정식 이름이다. 그 사람의 3세대 후손을 쿠바여행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전후석이라는 사람의 인생에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3월 20일, 퀸즐랜드대학교 St. Lucia 캠퍼스에서 특별한 토크쇼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Jeronimo)와 초선(Chosen)을 기획 촬영한 전후석 감독이 브리즈번을 방문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강연회를 가졌었다. 나는 이번 이벤트와 관련해서 참으로 큰 기대를 하고 설렘 속에서 그 사람을 기다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 감독이 출연했던 유튜브나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큰 관심이 있었다. 호주에 살고 있는 나와 내 가족이 바로 ‘디아스포라’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다.

전 감독의 얼굴은 영상을 통해서 익숙했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는 갓 40을 맞은 나이답지 않게 더 젊어 보였고 헌칠한 키의 훈남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한 청중이 그에게 ‘전후석 영화감독, 전후석 변호사, 조셉 전’ 중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좋은가를 물었을 때 조셉으로 불리는 게 좋다며 소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후석 감독이 잘나가는 뉴욕의 변호사라는 직업을 뒤로하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된 이유는 ‘헤로니모’라는 인물에게 빠져들면서부터였다.

전감독은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쿠바 혁명의 주역이자 쿠바 한인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니모(임은조)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풀어내며 독립운동의 정신과 뜨거운 조국애를 느꼈다고 했다. 헤로니모는 역사와 정치적인 문제의 중심에서 사라져간 영웅 같은 한 인물을 알리고 그를 통해서 한국 이민자의 삶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전 감독의 강연은 강의실에서 그에게 온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참가자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가슴을 적시는 울림을 전달해주었다. 특히 성경의 한 구절인 선한 사마리안의 이야기를 예시로 말했을 때, 그 순간 내 가슴안에서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시대에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으로부터 멸시를 받았던 종족이었다. 모두가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던 희생자를 구해낸 사마리안이 바로 디아스포라라고 말했다. 이 성경 구절의 인용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참으로 풍요로운 지혜를 전달해주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디아스포라 적인 정체성은 의식적 경계성, 온전한 이중성, 혼합성, 다양성과 환대 성이라고 간결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전후석 감독은 <헤로니모> 프로젝트가 결국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과 닿아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지의 한인을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부르는 그는 “이 사람(헤로니모)을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 수 있겠다는 설명하기 힘든 끌림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는 미국에서 이민자와 유색인종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내던 도널드 트럼프가 막 집권한 때이기도 했다. 전 감독은 더 큰 세상을 향한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담은 “당신의 수식어”라는 책을 출판했다.

전후석 감독은 미국 내 한인과 중국 옌볜의 조선족부터 쿠바·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의 한인,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요르단 한인들까지 두루 만나며 고민의 답을 찾아 나갔다. 그는 그 고민의 결과가 “민족의 개념에 속박되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의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애정은 그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여정의 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빅토르 휴고의 말을 인용하며 디아스포라(이민자)를 표현하기도 했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미숙하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은 모든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코스모폴리탄이며, 성숙한 사람은 모든 것을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방인 (디아스포라)이다.” 이 또한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닌가!

자신의 인생을 갑자기 뒤바뀌게 만든 쿠바의 혁명가였으며 한인 리더였었던 헤로니모(임은조)의 역사를 추적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전후석 감독에게 존중의 마음을 담아 보낸다. 그는 오늘도 미래에도 전 세계를 누비며 한인들의 숨겨진 역사와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 믿어진다. 멋진 그에게 홧~~팅을 보낸다.

황현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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