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6’이란 숫자의 의미를 아시나요?
[기고] ‘46’이란 숫자의 의미를 아시나요?
  • 박정연<캄보디아한인회 사무총장>
  • 승인 2012.03.25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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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추모 2주기 맞아 캄보디아한인회가 단 현수막 화제

최근 천안함 피격 사건 2주기를 맞이하여 수도 프놈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대구경북문화센터(PGCT) 건물 외벽에 캄보디아 한인회(회장 박광복)가 설치한 현수막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로 5미터 세로 6.5미터의 대형 현수막에 "We Never Forget You"(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습니다!)라는 영문 문구와 함께 서해바다에서 장렬히 산화한 46명의 용사를 상징하는 ‘46’이란 숫자를 아주 큼지막하게 써 넣었다. 그리고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조국을 위해 몸 바친 46명의 용사들 이름을 일일이 적었다.

대형 현수막이 시내중심가에 펄럭이자, 건물 앞을 오가는 수많은 현지인들과 외국인들이 ‘46’이란 숫자가 갖는 의미에 대해 무척 궁금해 왔다. 간혹 물어오는 이들에게 2년 전 발생한 북한의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면,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며 놀라기도 한다. 어느새 ‘46’이란 숫자의 의미를 이해한 건물 경비원들도 오가는 현지인들에게 대신 설명을 해주는 고마운 일도 생겨났다.

천안함 피격사건 2주기를 맞이하여 46용사들을 추모하는 현수막을 이렇게 만든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당초 ‘46’이란 숫자를 굳이 부각시켰던 이유는 현지인들의 이목을 끌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캄보디아는 과거 우리나라 7-80년대처럼 현수막이나 광고물에 대한 사전 검열이 무척 심하다. 경찰이나 시공무원들로 부터 현수막이나 광고물의 내용에 신고를 해야 하고 일일이 사전 검열도 받아야 한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판단되면 바로 철거를 당하고 벌금을 물리기도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추모 현수막이 뭔 문제냐며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캄보디아 정부입장은 다르다. 추모 문구마저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때가 많다.

이렇듯 규제가 심하다보니, 이 나라에서는 도심에서 붙일 수 있는 현수막의 내용과 장소가 극히 한정되어 있다. 국가주관 행사나 캠페인성 구호 외에는 도심 거리에 현수막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거의 다 불법으로 간주된다. 상업성 광고는 허가된 장소에서만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현수막을 단 건물이 위치한 지역은 우리나라 광화문에 해당되는 곳으로 이 나라 수도 프놈펜의 심장부에 해당되는 도심 한복판이다. 게다가 불과 400미터 근처 대각선 맞은편에 북한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고, 캄보디아 정부 역시 남북의 갈등관계를 잘 알기에 이를 감안하여 한인회가 주관하는 모든 행사와 설치물에 대해 현지 시공무원이나 경찰들이 늘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 예로 재 작년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 소재 한인회도 연평도 포격사건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설치했다가 현지 경찰당국에 의해 기소된 전례도 있다.

그런 전후 사정 때문에 캄보디아 한인회에서는 고민 끝에 46명의 천안함 용사를 상징하는 숫자만 현수막에 표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현지 경찰과 시공무원들의 제재와 철거 요구를 피하기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사전검열을 담당하는 시공무원은 ‘46’이란 숫자에 대해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지만, 천안함 피격사건을 모르는지, 대충 두리 뭉실하게 설명하자 별 문제를 삼지 없고 현수막 설치를 허락해 주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추모 2주기를 앞두고 현수막을 내건 지 불과 이틀 여 만에 입소문이 돌기 시작, 현지 언론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최대일간지 라스메이 캄푸치아 데일리가 지난 26일자 신문 전면에 프놈펜 시내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을 실었다. 덤으로 상세히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한 진실과 이에 대한 부연설명도 친절히 곁들여 주었다. ‘46’이란 숫자가 세간의 주목을 끈 덕분에 다시 한번 연평도 사건과 더불어 북한의 침략적 만행을 현지 사회에 알리는 더 없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캄보디아는 한때 친북성향국가로 분류되었던 국가였다. 하지만 오늘날 현지 국민들도 남북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핵문제를 비롯 북한이 지탄받아 마땅한 범죄를 끊임없이 저지르는 테러국가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주변 동남아 사회 역시도 북한에 대한 인식전환이 이뤄지고 있으며, 최근 들어 사회 전반에 골고루 확산되는 느낌이다.

현재 추모 현수막이 설치된 본 건물과 북한 대사관과의 거리는 불과 400여 미터로 매우 인접해 있다. 먼 벌치에 펄럭이는 인공기 깃발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한 대사관 직원들도 이 앞길 도로를 지나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46용사들을 추모 2주기 현수막을 보고 지나칠 것이다. 그들도 분명 ‘46’이란 숫자가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46’이란 숫자는 그들의 입장에선 애써 부인하고 싶은 숫자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46용사 그 숭고한 영혼들이 지금 이 순간에 서해바다를 지키고 있는 이상, 진실을 아는 북녘땅 그들 누군가에겐 천안함 46용사를 의미하는 이 숫자가 분명 가슴 철렁하게 만드는 의미심장한 숫자로 다가올 것이다.

다시 한번 천안함 46용사들의 넋을 추모하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헛되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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