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캄보디아에서 열린 태양절 100주년 전시회
[참관기] 캄보디아에서 열린 태양절 100주년 전시회
  • 프놈펜=박정연 기자
  • 승인 2012.04.1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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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그 날, 김일성이 태어난 날이기도

 
지난 4월 15일은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 올해로 100년째 되는 날이었다. 이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유럽을 중심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열렸다.

우리에게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1,5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20세기 가장 큰 대형선박사고로 기억된다. 여러 차례 빙산충돌 사전경고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선장의 안일함과 인간의 오만함이 만들어낸 가장 큰 인재(人災)사고가 발생한 날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당대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선박이었다는 사실과 탈출과정에서 전개된 극적인 사건들 때문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도 크게 성공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지구 반대편 한반도 북쪽 끝에서는 전혀 성격이 다른 군중집회를 연상케 하는 대규모 기념행사가 열렸다. 바로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태양절 행사였다. 20세기 대형참사 중 하나로 꼽히는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같은 날에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적 역사의 단초를 제공한 ‘김일성’이란 인물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타이타닉호가 만들어낸 엄청난 재앙 급 수준의 비극도 태양절의 주인공, 김일성이 만들어낸 비극적 역사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초라하다. 고작해야 20세기에 무수히 일어난 재난사고중 하나로 역사의 한 줄 정도로 기록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에 비하면 태양절은 타이타닉호 희생자 수의 수천 배가 되는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민족상잔의 6.25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반세기 넘게 이어온 ‘남북분단의 비극적 역사’라는 ‘불행의 씨앗’을 뿌린 자가 태어난 지 정확히 1세기가 되는 상징적인 날로 그 역사적 의미와 파급효과는 타이타닉 침몰과는 비교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북한에서 태양절은 10월 10일 노동당창당기념일과 더불어 3대 명절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위대한 태양’이라고 불리던 김일성의 호칭을 따 ‘태양절’로 불리는 이날은 특히 금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평양에서 더욱 성대히 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도 북한 작품 전람회를 가장(?)한 태양절 기념 전시행사가 열렸다.

메콩강변에 위치한 차토목 국립극장 앞에는 지난주부터 일주일째 이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캄보디아 전통새해명절인 ‘쫄츠남’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전람회장 주변은 오토바이와 차량으로 늘 북적이던 때와는 달리 매우 한산하기까지 했다.

홍보 역시 부족했던 탓인지, 내가 찾은 15일 태양절 오후에도 전람회장 주변은 썰렁했고, 입구 간판에 쓰인 입간판도 매듭 끈이 풀려 메콩강 강바람에 쓸쓸히 흩날리고 있었다.

북한에서 보름여 전 파견되었다는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훤칠한 키의 남자안내원이 전시장 입구에서 나를 안내해주었다. 관람객이 없어서인지 낮잠에서 막 깬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산하던 전람회장에 전혀 예상치 못한 남한손님이 들어 닥치자 처음에는 당황한 눈치가 역력했다. 곧 평정심을 찾은 듯 침착한 표정으로 나를 안내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도서, 사진 및 미술 수공예품 전람회’라는 거창한 이름이 무색하게 전면에서 들어서 처음 나를 맞이한 것은 멋진 수공예작품이 아닌 촌스럽게 장식해놓은 대형 컬러 사진들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최근 권력승계를 마친 김정은이 생전 김정일과 함께 찍은 사진들과 더불어 조부격인 김일성의 생전 활동모습을 담은 선전홍보용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김일성 일가 사진 사이로 수예작품과 인민작가들이 그렸다는 유화작품은 벽기둥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간간히 붙어 있었을 뿐, ‘김일성 일가 100주년 기념사진전’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정도로 태양절을 맞아 김일성일가 숭배를 위한 부대행사로서 초점을 맞춘 듯 싶었다.

이를 증명하듯 100여평 남짓한 전람회장 한가운데 눈에 가장 띄는 중앙벽면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고, 영어로 큼지막하게 Sun's day 100th Birthday(태양절 100주년)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여러 전시 사진 등 중 가장 눈에 띄는 사진은 캄보디아 전 국왕 시하누크와 평양공항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마중 나온 김일성이 양손을 부여잡고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담은 1965년에 찍은 오래된 흑백 사진이었다.


 

이들 두 사람은 연배도 비슷한 뿐만 아니라(참고로, 시하누크 국왕은 우리 나이로 현재 92세),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들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산주의를 정치적 신념이 아닌, 순전히 정치적 계산만을 위해서만 이용했던 절대봉건주의자 시하누크와 달리 레닌 마르크스주의를 철저히 신봉했던 공산주의자 김일성은 기질이나 성향은 물론 자라온 성장배경부터 엄청난 큰 차이가 있었다.

생각이 다르고 자신들이 추구했던 정치적 성향은 물론 성격마저 확연히 달랐던 그들이지만, 역시 극과 극은 통했던 모양이다.

50년대 중반 시작된 그들의 우정은 지난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근 40여년 가까이 이어졌다. 이는 거꾸로 대한민국정부와 캄보디아가 오랜 기간 동안 외교관계를 복원하지 못하는 만드는 걸림돌이 되기도 되었다.(참고로 훈센정부는 지난 1997년 시하누크 전 국왕의 강력한 반대에도 무릅쓰고 우리정부와 전격적으로 재 수교를 추진했다)

지금은 권력을 현 훈센총리에게 모두 빼앗겨 그야말로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시하누크 전 국왕이지만, 지난 과거 5~60년대는 그의 전성기라 할 만큼 아시아 무대를 넘어서는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였다. 그러나 오만과 자업자득의 결과로 1970년대 초 미국지원을 등에 업은 론놀장군의 쿠데타로 쫒겨 난 시하누크는 오갈 데 없는 국제사회의 미아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모든 권력을 잃어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던 이 보잘 것 없는 초로의 망명객을 받아들인 자가 있었다. 심지어는 평양인근에 주석궁에 버금가는 호화별장까지 지워줄 만큼 지극정성으로 돌봐준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북한의 김일성이었다.

미국제국주의를 무척 싫어했다는 공통점 외에는 김일성 입장에선 이념적 동지도 아니고 성격도 판이하게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덕 볼 것도 없는 망명객을 보살펴준 인연 덕분에 북한과 캄보디아의 혈맹에 가까운 끈끈한 관계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김일성 사후에는 곧바로 프놈펜 한복판엔 김일성 대원수 거리가 세워졌고, 최근에는 2012년도 국제 김일성상 수상자로 시하누크 국왕이 선정되기도 했다. 외부세계에 캄보디아가 그동안 친북성향국가로 분류되었던 것도 사실은 이런 오랜 인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람회장 가운데 다소 어지럽게 널려 놓은 사진집과 우표책들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북한의 자연을 담은 우표들과 을지문덕이나 서희 같은 시대의 영웅들을 소재로 만든 기념 우표집과 함께 故 문익환 목사를 기념하는 우표 역시 남한출신 관람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김일성 부자들을 찬양하고 업적을 기념하는 우표집들과 혁명구호로 가득 차 있는 정치홍보 자료책자들의 화려하게 장식되고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 놓은 표지가 더 눈에 들어온 것은 솔직한 심정이었다.

김일성, 김정일 양 부자의 일대기를 사진으로 담은 전화번호 책 크기에 영문설명이 곁들여진 대형 화보집 두권 역시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를 눈치 챈 안내원이 대뜸 다가와 북한말투로 물어왔다.
“이 책이 탐이 나십니까?”
“아, 예...”
대답하기 무섭게 구입의사를 물어왔다.
“원래 외국인에게 파는 가격으로 180유로(euro) 하는데, 선생께서 원하신다면...” 이라며 말꼬리를 흘렸다. 당신에겐 특별히 헐값이라도 팔겠다는 말투였다.

솔직히 화보집속 김일성의 젊은 시절을 담은 몇 장의 흑백 사진에 관심이 간 것은 사실이지만, 책을 통째로 구입하고 싶은 충동까지는 들지 않아 별다른 대꾸 없이 그냥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판매용이 아닌 오직 전시용 간행물로 나온 고가의 화보집을 나에게까지 싸게라도 팔려던 속셈은 뭘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혹시 부수입 챙길려구? 하지만, 그는 곧바로 순진한 속내를 고백했다.

“북한에서 직접 공수해온 사진과 작품들인데 도로 가져가려고 하면 오히려 배송비용이 더 들어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으면 골치 거리”라며 솔직한 대답을 해주었다. 나름 이해가 갔다.

한쪽 벽면에는 북한에서도 알아준다는 소위 ‘인민작가’들이 그렸다는 유화작품들이 몇 장 걸려 있었는데, 그 가운데 프랑스 개선문보다 더 크다는 ‘평양개선문’이 봄날 화려한 벚꽃과 함께 어울어진 채 화폭을 가득채운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유독 그 그림에 관심을 보이자, 안내원은 평양 시내를 주제로 한 유화작품 속에 나온 건물이나 나무의 종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열심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양개선문’의 높이가 얼마쯤 되냐는 뜬금 없는 질문에는 선뜻 기억을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운 지 몹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얼버무려 거짓말이라도 해도 될 듯싶은데, 그동안 만나본 북한사람들처럼 이 남자 안내원 역시 나이답지 않게 순진함이 묻어났다.

화제를 얼른 바꿔 이번엔 옥류관 얘기를 꺼내자, 금새 눈빛이 달라졌다. 신이 나서 옥류관 냉면맛과 프놈펜 북한 식당에서 파는 냉면 맛까지 비교하는 열성까지 보이며 친절히 설명해주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김일성 부자 사진 앞에 이르러서는 곧바로 입을 닫아버렸다. 슬그머니 뒷걸음치며 먼발치로 물러서기 까지 했다. 순간, 그도 내 눈치를 살피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나 사이엔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전람회실 실내는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후텁지근했지만 견딜 만했다. 하지만 안내원 남성은 40도 육박한 날씨가 견디기 힘들만큼 더운지 연신 땀을 닦고 있었다. 따스한 봄날을 만끽하다 습하고 무더운 열대나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적응이 힘든 모양이었다. 건강해 보이는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몹시 힘겨워했다. 어쩌면 난생 처음 접한 남한 손님 때문에 더 긴장해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음료수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주변엔 마땅한 구멍가게조차 없어 고맙다는 인사만 했다.

나오는 길에도 전시장 전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인민작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수예작품들은 물론이고, 일부 김일성 일가 사진은 렌즈까지 바짝 대고 찍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 안내원과 문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냉방시설도 없는 더운 실내에서 30분 넘게 나를 안내해주었던 고마운 사람이었지만, 일부러 통성명도 하지 않았다. 명함이라도 서로 건네면 오히려 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혹,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통일되면 만나자”는 틀에 박힌 뻔한 인사도 하지 않고 나왔다.
“안녕히 가시라요!” 라고 인사하는 북한 안내원의 미소에서 ‘분단의 아픔’이니 하는 그런 거창한 단어가 아닌 뭔지 모를 씁쓸함 같은 게 느껴졌다. 북한식당 등지에서 마주했던 접대여성들에게도 느꼈던 것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씁쓸함은 과연 뭘까 곱씹어 보았다. 문득 지난 13일 태양절에 즈음하여 발사한 광명성3호 탄도미사일 발사가 실패했다는 한국발 뉴스가 순간 뇌리를 스쳐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발사실패로 북한주민 식량 1년치에 해당되는 1조원 가량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폭발잔해와 함께 서해안 앞바다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태양절 행사비용만으로도 몇 천억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는 믿기지 않는 외신보도도 오버랩되어 기억이 났다.

이역만리에서 만난 같은 동포인데도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도,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올 때 느꼈던 그날 오후의 씁쓸한 감정도 어쩌면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분단이 가져온 그 씁쓸한 뒷맛은 언제쯤 사라질까? 그날 저녁, 전람회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며,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 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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