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할리우드 볼 음악회
[Essay Garden] 할리우드 볼 음악회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2.05.11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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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미국에 살면서 예술인의 숨결이 도는 할리우드 거리를 아직도 걸어보지 못했다. 로스앤젤러스로 볼일이 생길 때면 부랴부랴 일만 보거나 사람들만 만나고 와야 하는 쫓기는 생활이다. 별별 인종들이 모여 사는 로스앤젤러스는 뉴욕 다음으로 복닥거리는 큰 도시이다.

10번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한인 타운은 여전히 긴장되는 곳이다. 나의 한 미국 이웃은 천사의 도시가 아니라 지옥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기도 한다. 범죄가 거의 없는 조용한 동네에 사는 우리는 로스앤젤러스를 방문할 때마다 두려운 도시임을 은근히 체험한다.

몇 년 전, 내가 사는 한국일보 샌디에고 지사에서 마련한 전세버스를 타고 할리우드 볼 야외극장에 가보고는 돌아오는 길이 무척 고단하여 즐거운 음악회이지만 더 이상 못 갈 줄 알았다. 모국의 향수가 그리운 나는 한국의 문화행사 안내 글을 신문에서 만날 적마다 늘 가고 싶어 안달이다. 운전을 즐기는 편이지만, 이젠 예전처럼 날렵하게 가지 못한다. 눈의 시력도 나빠졌지만 내려오는 밤 운전 시간에 화장실 가기도 불편해서다.

뜻밖에 반가운 할리우드 볼 축제 관람권이 생겼다. 벌써 10년째 행사란다. 복잡한 곳에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의견이 어떨지 떠보았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부른 이용과 친정어머니가 즐겨 불렀던 ‘님과 함께’를 부른 칠순의 남진이 온다며 그를 꼬드겼다.

나의 여학교 때 친구도 가자고 불렀다. 처음 와본다는 친구 부부는 김밥을 사오겠다고 했다. 나는 달걀과 붉은 감자를 삶고 과일 등 오 인분의 간식을 준비하노라니 학창시절 소풍 가는 것처럼 마음도 붕 뜨던 전날 밤이었다.

 
우리에겐 낯선 곳이니 전화로 찾아가는 길도 알아보았다. 인터넷으로 들어가 만 팔천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 수에 놀랐다. 음악은 소리로 듣기에 꼭대기 근처의 자리여도 좋다. 미국의 유명한 도시 땅에서 한국인의 엄청난 저력을 뿌듯하게 느끼는 것만도 그냥 신이 난다.

로스앤젤러스의 북쪽 101번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할리우드 볼(Hollywood Bowl)이 나온다. 주변의 산이 품어 주는 넓은 야외극장이다. 무대 뒤에 병풍처럼 펼쳐진 산 사이로 언덕에 서있는 할리우드라는 사인 판이 보인다.

야외극장의 입구에서는 한국의 기업체들이 텐트를 치고 공짜선물을 주면서 자기회사를 광고했다. 가방, 방석, 셔츠, 비누, 풍선 정말 이런 후한 인심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내 앞에 서 있는 케이틀린이라는 파란 눈의 아가씨는 이 행사의 하루를 위하여 위시컨신 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단다. 같이 온 파아, 벨레는 한국가수들이 부르는 음악회에서 만났단다.

대학 일 학년생으로 K-pop의 열렬한 펜들이다. 한국노래와 가수를 사랑해주는 그들이 고마워 나는 함께 사진도 찍었다. 100불 자리 좌석 표를 망설이지도 않고 팍팍 사준 큰 손 아가씨들. 나에게 몇 마디 시도하는 한국말 애교도 귀엽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 값 때문에 멀리서 오니 비용도 은근히 들어 비싼 표를 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젊은이들의 두둑한 배짱에 세대차를 느낀다.

와아, 한국 노래를 사랑하는 외국인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최근 모나코에서 열리는 국제수로 기구 회의에는 못된 일본인들이 세계 지도 위에 동해를 일본해 라고 이미 바꾸어 놓고 계속 옳다며 주장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영토인 독도를 빼앗으려 하니 분통이 터지는데, 한국인의 문화교류 힘에 나도 모르게 눈물마저 고인다.

소프트 파워의 코리안 물결아, 제발 희망으로 널리 널리 세계를 향해 퍼져 나가거라. 오천 년 세월 속에 무수히 외국의 침략을 당하며 살아온 우리. 36년 동안, 조선 왕족의 씨를 말리려던 일본에 짓밟히면서도 다시 일어선 대한민국. 안타깝게도 세계에서 하나뿐인 공산 독재의 반쪽나라를 형제라고 불러야 하는 슬픈 나라.

 
환상적인 레이저 조명. 청중이 함께 흔들던 플라스틱 봉의 멋들어진 춤 물결. 가수마다 생전에 이런 큰 무대는 처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에는 뽕짝이라며 남진의 노래에 시큰둥했던 나도 ‘님과 함께’ 노래를 신이 나게 따라 부르다 목마저 쉬어버렸다. 긴 비행시간의 피곤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힛트 곡을 열창했다. 밤 10시. 화려한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음악회는 막을 내렸다.

네 장소에 서 있던 수많은 차가 어떻게 주차장을 빠져나갈지 걱정하는데, 11시가 지나도 차는 움직일 수 없었다. 겨우 빠져나오니 고속도로도 거북이걸음이다. 절반쯤 샌디에고를 향해 달려오니 6차선 도로가 하나의 차선으로 막혀버렸다.

도로국에서 나와 일을 하고 있다. 두세 개의 차선을 개방하고도 공사할 수 있건만, 안전 때문인지 차를 운전하는 우리만 골탕이다. 신사의 나라 국민은 그래도 불평하지 않는다. 길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던 우린 차 안에서 구시렁거리며 고속도로를 달팽이처럼 기어갔다. 이런 시간에 운전 신기록이라며 새벽 3시에야 집에 들어왔다. 그래도 할리우드 음악회는 또 가보고 싶으니 어찌할꼬.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를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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