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바늘 구멍처럼 세상은 좁아지네
[Essay Garden] 바늘 구멍처럼 세상은 좁아지네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2.08.25 0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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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의 정원에서 이글거리던 태양은 지글지글 끓었다. 화씨 100도를 오르락내리락. 온몸에 땀이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던 8월의 삼 주 동안은 한국의 여름과 다를 게 없었다. 지구가 병이 나서인지 늘 선선하던 샌디에고의 여름 얼굴은 이처럼 매년 다른 모습이다.

한국전쟁의 여파로 잘 먹지 못하고 자랐던 나는 어린 시절부터 허약체질이라 무더운 여름이면 늘 시체처럼 비실거린다. 밥맛을 잃으니 기운이 없고 살맛도 나지 않는 여름날은 지금도 싫다. 미국 주택의 카펫 거실 바닥이 싫어서 부엌의 시멘트 바닥에 등을 대고 벌렁 누워 멍청하게 시원한 저녁을 기다리곤 했다. 다행히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맹렬히 뛰는 모습을 보던 날은 더위도 물러갔다. 세상에 어디 쉬운 일이 있단 말인가.

이웃집의 에어컨 돌아가는 기계 소리가 요란하다. 오래전, 만약을 대비해 우리 집 창문에 달았던 작은 에어컨은 거실 하나만 겨우 시원하게 해준다. 에어컨을 하나 더 사고 싶지만, 지구를 조금이라도 살리려니 그냥 견디면서 여름을 넘긴다.

며칠 전 처서가 지났다. 내가 살았던 고국과 미국은 밤과 낮이 거꾸로일지라도 같은 북반구여서일까. 아침저녁으로 햇살이 조금씩 순해지고 있다. 오늘은 손바느질이 하고 싶어져 실 통과 가위를 가져왔다. 발 깔개의 헤진 부분을 꿰매기 위해서다. 시어즈 백화점에서 샀던 인도산 백 퍼센트 면제품이다.

지금은 구할 수가 없고 어울리는 색깔이라 오래 사용하고 싶다. 1960년대 시어즈(Sears)는 일류 백화점이었지만 지금은 월마트보다는 조금 질이 높은 중류 백화점이 되었다.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지역에 따라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

집안을 걸어 다니면 발이 차가운 게 싫어 화장실에는 두꺼운 고급 면의 발 깔개를 깔아두지만, 현관이나 문 근처에는 실용적인 넓은 발 깔개를 나는 깔아두었다. 모두 면제품이다. 인도산 발 깔개는 천의 자투리를 재활용하여 만든 수제품이다. 나름대로 예술적인 디자인이 돋보여 여러 개를 샀다. 벌써 십수 년이 지나서인지 조금씩 너덜거리기 시작했지만, 우리가 발로 밟아서가 아니라 빨 때 세탁기 속에서 돌아가며 헤진 것이다.

7080 음악을 틀어 놓고 바느질을 한다. 수를 놓듯이 이리저리 헤진 부분을 단단하게 실로 연결하면서 오래전에 이 물건을 만든 인도 사람을 상상해 본다. 천조각을 꼬아서 백 개의 줄이 넘는 가로로 엮어 평면처럼 만들어 놓았다. 드넓은 인도의 목화밭에서 나온 목화를 질긴 실로 엮어놓기까지 여러 사람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다본다. 가난한 동남아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완성된 것이다.

내가 자취생활을 하던 대학생일 적이다. 신암동 골목에 살던 아주머니 중에는 국외로 수출하던 우리나라 제품의 스웨터에 꽃 수를 놓아 용돈을 버는 분들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눈높이를 낮추고 그런 자잘한 일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소박한 물건들을 우리가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앉아서 쉽게 돈을 벌고 싶어하는 영악한 사람들은 남을 울리거나 억울하게 하면서라도 재산을 빼앗아 갈 궁리만 하면서 사는 데 말이다. 시간이 돈이라지만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도둑으로 만드는 시간은 더 큰 죄악이다.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닦아주는 바느질 시간은 그래서 좋다.

앉아서 바느질을 하다 보면 친정어머니 생각이 나서 마음으로 대화도 나눈다. 어머니, 저도 이제는 바늘구멍이 잘 안 보이는 딸이 되었나 봐요. 지금 세상은 바늘구멍처럼 좁아져 컴퓨터라는 기계를 통해 별의별 뉴스가 총천연색으로 빛을 통해 금방 날아옵니다.

커다란 접시 위성으로 세계의 소식을 받아보던 시대가 아니랍니다. 제 글도 열 장이 넘는 원고지에 비싼 우푯값을 부치지 않아도 전자 이메일이 공짜로 신문사에 즉각 배달해줍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준 옷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듯이 저도 하나밖에 없는 수필을 쓰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넘보지 않고, 세상에 한 사람뿐인 내 마음의 진실한 눈으로 바라본 그런 글을 말입니다.

어머니께서 손바느질하던 날이면 바늘귀에 실을 꿰어 드리곤 했다. 또 뱅뱅 돌리는 게 신나서 내가 손틀을 돌리면 어머니는 저쪽에서 천을 박음질하던 재봉틀 소리 들리던 어린 시절의 집. 지천명의 나이가 지나던 나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진 딸의 모습은 다행히 보지 않으셨다.

한국 노래를 들으면서 두어 시간 넘도록 손바느질에 푹 빠지다 보니 나의 엄지손가락은 벌겋게 되어있다. 골무를 손가락에 끼지 않아 따가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발 깔개를 몇 년 더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행복했다.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를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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