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 ⑥] 재일본 조총련 방문기
[삼강만평(三江漫評) ⑥] 재일본 조총련 방문기
  • 정인갑<북경 청화대 교수>
  • 승인 2012.08.26 0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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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필자는 북경고려문화경제연구소 방문단의 일원으로 재일본조선인상공연합회 설립 60주년 축제행사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 방문에서 필자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으며 지금도 그 심각한 인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경축회의는 상공연합회 회장의 개막사로 시작했다. 개막사 발언은 온통 우리는 목숨으로 김일성 수령님 및 김정일 지도자님을 사수하고 사회주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사수하며 일본당국의 박해를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러시아, 미국대표의 축사도 같은 내용으로 일관했다. 다만 중국대표의 발언에만 이런 내용이 없었다. 북한과 혈맹관계인 중국대표단의 발언인데 이런 내용이 없으니 우리는 좀 겸연쩍게 느낄 정도였다.

조총련계에서 가장 이름난 도쿄의 한 조선인고등학교도 견학했다. 학교의 소개는 60년간 어떻게 일본정부의 탄압에 맞서 투쟁했는가 하는 내용이 위주이며 영어와 조선어로만 소개하고 일본어는 한 마디도 없었다. 필자는 또 역사과당과 조선어과당의 강의를 각각 반시간씩 들었다.

역사교과서에는 김일성의 어록이 고딕으로 수없이 섞여 있었으며 조선어교과서에는 문익환의 시 한 수가 수록돼 있었다. 그 시를 대충 회고하면 제목은 ‘평양으로 간다’이며 내용은: 간다간다 나는 간다 / 어디로 가나? / 평양으로 간다 / 뭣 하러 가나? / 통일 위해 간다…이다.

축제의 마지막 행사는 상공연합회 기업의 제품전시였다. 전시장 중앙에 계약서 체결을 위한 테이블이 있으며 마침 재떨이가 있으므로 필자는 담배를 피웠다. 그때 한 50대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 조선인고등학교를 견학하였나?
“견학하였다.”

- 교과서를 보았나? 어떻던가?
“보았다. 엉터리더라.”

- 왜 엉터리라고 하는지 말해보면 어떤가.
“역사교과서에 김일성 어록을 싣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이고, 조선어교과서 중 문익환의 시는 수준이 졸렬하더라. 국어교과서에 실리는 문장은 다 최고수준이어야 한다. 김일성 어록이나 문익환의 시 같은 것은 따로 정치교양서를 만들어 실으면 될 것인데…”

- 손님은 이곳 상황을 전혀 모른다. 어떤 교과서든 다 정치교과서처럼 만들어야 한다. 그 교과서 다 내가 편집하였다.
“그런 줄 모르고 너무 실례했다. 미안하다.”

조총련계학교는 일본당국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고졸이어도 정부에서 그 신분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일본의 어느 대학에도 갈 수 없다. 다만 조총련계 대학이나 북한의 대학에만 갈 수 있다. 조총련계의 학교나 학생 수가 해마다 줄며 지금은 옛날의 절반도 안 된다.

이튿날 우리 방문단 중 한 분이 조총련계 친구의 식사대접을 받을 때 필자를 동석시켰다. 대여섯 사람이 자리를 같이 하였다. 마침 사석이어서 필자도 하고 싶은 말을 하였다. “당신네가 60년 전부터 침략의 죄행도 승인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싸워 민족의 존엄을 지킨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냉전체제가 해소되고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없어진 지금, 아직 호랑이 담배피울 적 행세를 하나? 골수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김일성, 김정일, 사회주의조국을 사수한다? 일본 정부를 반대한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마땅히 현명한 지도자가 나와 노선과 방침을 개혁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그들 왈: “당신네는 중국 올바른 민족정책의 우대를 받지만 우리는 박해를 받는다. 당신네와 상황이 틀리다.”

필자: “천만에 말씀이다. 만약 중국조선족이 북경의 한복판에서 그런 슬로건을 외쳤다가는 사형, 무기형, 장기형을 받은 자가 수두룩할 것이다. 당신네는 한 사람도 이런 처벌을 받은 자가 없지 않나? 그만하면 일본이 꾀나 무던하다. 일본이 민주국가이므로 다행인 줄 알아라. 일본의 법을 지키며 국가와 협력관계로 사는 것이 교민의 도리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에 미련을 가지지 말라. 국가 체제로서는 이미 끝났다. 당신네 그러다가는 일본 동포사회에서 고립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중의 한분 왈: “우리는 한 사람이 남아도 우리의 이념과 정치견해를 고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교수님, 앞으로 다시는 일본에서 이런 말씀을 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매듭을 지었다. 필자는 착잡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지금도 금할 수 없다. 물론 북한이 변하지 않는 한 조총련의 변화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 7백만 재외동포 중 재일본 동포가 약 10%를 차지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암혹의 도탄에서 헤엄쳐 나오도록 도와야 한다. 이 또한 통일에 대한 중대한 기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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