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 ⑦] ‘일자리 나누기’와 ‘평준자본주의’
[삼강만평(三江漫評) ⑦] ‘일자리 나누기’와 ‘평준자본주의’
  • 정인갑<북경 청화대 교수>
  • 승인 2012.09.15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행되는 말은 ‘경제민주화’, ‘복지’ 및 ‘일자리 창출’이다. 정당, 정치인치고 이 슬로건을 외치지 않는 자가 없다. 그러나 모두 애매한 말들이며 특히 현재 한국에서 ‘일자리 창출’은 거의 현실성이 없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쓰는 인력이 줄어든다. 게다가 한국은 노동집약적 기업일수록 해외로 옮기거나 아예 해외에 공장을 짓는다. 결국 실업인구의 방출은 선진국의 보편적 현상이며 어느 나라도 실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노인인력이 은퇴하고 젊은 인력이 대체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70세라면 같은 연령대(年齡帶)가 70만 명가량이다. 해마다 70K(K는 직업률)만 명이 은퇴하고 그에 상응한 젊은 인력이 보충된다. 이는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 교체이다. 일자리가 불어난 것이 없으니 말이다.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는 있겠다. 이를테면 버스정류장마다 질서를 장악하는 자를 두던가, 도시 복판에 길을 알려주는 자 또는 담배꽁초를 줍는 자를 세워놓던가 등. 그러나 이들의 봉급은 국가세금으로 지불되므로 그만큼 다른 공무원의 봉급 또는 해당 도시의 복지가 감소될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이는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 나누기이다.

최근 서울 모 구청 일자리사업과장의 특강에서 공공사업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줄이고 그만큼 인력을 불군 경험을 들었다. 이를테면 하루 8시간 근무에 60명 쓰던 것을 6시간 근무에 80명을 썼다. 20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만약 한국의 인력이 800만 명인데 600만 개의 일자리밖에 없다면 이 방법을 쓰면 실업인구가 모두 해소된다.

봉급이 2/8줄었으므로 일자리 나누기이지만, 세금을 올려 구제하느니 봉급을 내려 구제대상을 취직시키면 인간의 자존심존중, 사회안정 도모 등 여러모로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실행상 어려움도 많겠지만 시도해볼 수도 있다고 본다. 필자는 이런 일자리를 나누는 방법을 ‘평준자본주의’라고 이름 지어 본다.

1987년 필자가 처음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청계천에서 부딪힌 일이다. 일꾼 30여 명이 필자더러 중국얘기, 특히 중국에 실업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필자 왈: “실업인구가 있다면 무수히 많고 없다면 하나도 없다. 해마다 새 인력을 무작정 각 직장에 밀어 넣는다. 결과 100명이 먹던 밥을 110명, 120명...200명이 나누어 먹는다.” 듣던 사람들은 일제히 “참 좋은 나라이다”라며 찬사를 올렸다. 필자가 “무슨 소리냐? 그러니 중국은 가난해졌고, 지금 개혁개방 하여 이런 제도를 까부수고 있다”고 했더니 그들은 오히려 “좀 가난할 지언정 제발 취업하기 쉽고 실업이 없는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한민족은 좌경성과 평균주의 사상이 강한 민족이다. 옛날 중국농촌이 사회주의 체제일 때 다른 민족은 거부감을 가지고 게으름을 피웠으나 우리 조선족만은 열심히 일하였다. 개혁개방 하여 땅을 나누어주어 개인영농을 할 때 조선족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싫어하였다. 지금 전 세계에서 재래식 사회주의체제를 견지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뿐이다. 현재 한국국민 중 20%가 북한의 체제에 호감을 품고 있다는 설이 있다(황장엽).

좀 가난한 정도가 아니다. 30년 만에 중국대륙의 국민소득은 대만의 1/10로, 60년 만에 북한의 국민소득은 남한의 1/20로 떨어졌다. 이 방법을 잘못 쓰다가는 아이슬란드, 그리스, 이탈리아처럼 경제 파탄을 초래할 모험이 따를 수도 있다.

자유자본주의, 복지자본주의, 평준자본주의 중 어느 길로 갈 것인가 하는 제도적 문제이므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만약 경제발전에 큰 구애가 되지 않는다면 평균주의를 선호하는 한국국민의 기호를 염두에 두어 일자리를 나누어 먹는 평준자본주의를 시도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현가망이 거의 없는 ‘일자리 창출’을 만날 외치기보다는 낳을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