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2] 나의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연재-2] 나의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 토론토=송광호 기자
  • 승인 2012.09.1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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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 기자의 모스크바 특종기

 
모스크바에 상주하며 진작부터 외국기자들을 만났다. 현지 러시아 기자들과 일부 서방특파원이다. 그들에게 꼭 무슨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정보나 취재동향 등을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캐나다 기자와는 호텔 커피숍에서, 러시아 기자는 주로 술집이나 음식점에서 만났다.

외국기자들은 중앙지냐, 지방지냐를 가리지 않았다. 내가 한국 신문사 특파원이란 존재로 충분했다. 특히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과 러시아 이즈베스티야, 국제방송 기자 등과 친해졌다. 평양 고려호텔에서 마주쳤던 타스통신 기자도 만났다.

러시아 기자들은 대개 평양특파원 경력의 북한통이었다. 한 러시아 기자는 청년 김정일과 함께 원산 앞바다에서 배 낚시하는 사진, 6.25휴전 이후 50년대 폭격으로 황폐화된 평양을 재건설하는 흑백사진 등을 제공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클라우디 로젯(Claudia Rosett/여성)특파원은 하바로프스크의 북한 벌목공 현장을 다녀온 후 찍은 사진들을 건넸다. ‘취재한 기사가 내일 게재되니 그 이후 마음대로 사용하라’면서. 그 사진들을 며칠 후 화보로 이용하기도 했다.

94년 4월 어느 날 새벽. 사할린-하바로프스크에서 목회하는 한 한인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A라는 탈북자 한명이 모스크바에 있으니 적극 도와주라”는 부탁이다. A를 만났다. 생전 처음 만난 탈북자다. 로젯 기자와 상의하니 “모스크바 유엔HCR(난민국)에 그를 등록시키자.”고 제안했다. 솔직히 그때 나는 모스크바에 UN난민국이 있는 줄조차 몰랐다.

 
다음날 우리 셋은 유엔사무실로 찾아갔다. 아침 7시 이른 시간대를 이용했다. 외국공관 부근은 더욱 북한 감시가 심하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당시 북한공관은 탈북자 검거 선풍으로 총비상이 걸려있었다.
A를 데리고 UN난민국에 나타나자 내부소동이 벌어졌다. 갑작스런 2명의 특파원 등장이 달갑지 않는 눈초리였다. A를 제외하곤 기자는 출입금지 당했다. 나는 기자 입장이 아닌 A의 통역자로서 허용됐다. 로젯 기자는 물러나야 했다.

유엔사무실에는 책상 하나, 의자 서너 개와 노트북(컴퓨터)뿐 아주 간소했다. 모스크바에 문 연지 얼마 안 됐는지 비품정리가 어수선해 보였다. 이사벨(Isabelle Mihoubi/Legal Officer)이란 유엔여성담당자는 “영어나 불어 중 (통역은) 무엇을 택하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프랑스계로 보였다. 영어를 택했다. 담당은 A에게 “(북한에서)태어나서부터 오늘 UN사무실에 올 때까지의 모든 내용을 얘기하라”고 요구했다. 하루 종일 질의, 응답으로 시간이 지나갔다. 담당은 진술을 되묻기도 하며 계속 타이핑했다.

A는 답변할 때 책상다리로 발을 꼬며 장난삼아 말하듯 해 진실성이 부족해 보였다. 오히려 내가 민망했다. ‘과연 이 사람이 도망쳐 숨어 다니는 탈북자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중 얘기지만 줄곧 남을 비난하는 말투와 이기적인 태도,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쁜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탈북자였다.

오후 통역을 마친 후 담당에게 “그간 유엔에서 북한인의 난민신청을 받은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오늘 난민신청이 UN 첫 북한난민 등록”이라며 “서류에 첨부할 A의 사진을 준비해 갖고 다시 오라”고 말했다. 곧 사진 제출과 재 인터뷰를 마친 후 유엔등록을 마감시켰다.

이번엔 B라는 탈북자가 연락을 해왔다. 탈북자끼리는 서로 은밀히 정보를 주고받는 것인지. B는 A와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B 역시 곧장 유엔 난민국에 등록시켰다. 마침 미국에서 온 순복음교회 한인목사를 알게 돼 B를 인계하고 마무리작업을 부탁했다. 탈북자문제에 한번 손대니 끝이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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