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4] ‘아버지의 6.25 일기’
[연재-4] ‘아버지의 6.25 일기’
  • 서지원(전 텍사스오스틴상공인회장)
  • 승인 2012.09.1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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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원 회장
필자 서지원씨는 텍사스 오스틴에서 부동산 컨설팅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향은 진주. 그는 1970년대 후반 자신이 경영하던 화장솔 공장을 위한 오더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정착한 케이스다. 그가 소장하고 있던 선친의 전쟁일기를 본지에 공개했다.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이기도 하다. 이를 본지에 연재한다.<편집자주>

1950년 8월 4일
개양굴이 폭격 당하고 굴 안으로 피신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데 그중에는 목이 달아난 끔찍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저녁에 어머님을 모시고 시내로 들어갔다. 강을 건널 때는 비행기 몇대가 우레같은 소리를 지르며 날아온다. 말죽고개를 넘으니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져 나르고 있다. 이 사람들이 물건 임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구나.

우리가 들어 있는 집 앞에 젊은 과부가 어린것 몇을 데리고 살고 있다. 지붕은 몇해를 인 적이 없고 토벽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는 다 찌그러져 있는 2평 남짓한 이 집에 오늘 좋은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내 머리를 스쳐간다.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다. 이런 때 법이고 뭐고 있단 말인가. 남강 다리는 며칠 동안의 폭격에 만신창이가 되어 드디어 절단되었다.

1950년 8월 5일
고 박태영 모친의 온정에 감사드리며 최복치씨와 현장으로 갔다. 최형은 태영씨의 매부이며 일본서 폭격을 겪고 해방되자 돌아온 귀환 동포이다. 폭염의 태양은 체내의 마지막 한방울의 수분마저 앗아가려한다. 거무튀튀한 양철은 이미 담금질이 되어있고 이것이 뿜어내는 열기에 숨이 막힌다.

불을 잡은 듯 뜨거운 양철을 한 장 두 장씩 포개 불탄 철사로 묶고 있을 때 소리보다 빠른 정찰기가 머리 위로 날아가고 있다. 엉겁결에 진주극장 콘크리트 계단 밑으로 뛰어 들어가니 한두 명이 먼저 들어와 있다. 이때 봉래동 뒷산에 매달아 놓은 사이렌은 장송의 오인인양 가냘프고 구슬프게 울려온다. 조금 뒤에 여러 대의 폭격기가 고막을 째는 듯 소리를 지르며 날아왔다.

포탄은 바로 머리위에다 퍼붓는 듯하다. 우리들의 몸둥아리는 공중으로 치솟는다. 머리가 멍해지고 현기증이 인다. 어머니는 두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염불을 하고 있다. 죽음의 장막은 몇번이나 가리었다가 걷어지고 한다. 아마도 한시간은 더 계속 되는 동안에 몇년의 세월이 혼미 속에서 흘러가는 듯했다. 비행기는 모두 가버리고 없다. 차차 맑은 기류가 모세관으로 돌고 있음을 느꼈을 때 우리는 악몽의 자리를 벗어났다.

1950년 8월 6일
숨이 막힐 듯한 더운 날이다. 푸른 대숲에도 바람은 자고 매미가 여름의 재왕처럼 기승을 부린다. 바람을 찾아 이 그늘 저 그늘로 가도 매 한가지다. 호우씨는 과일을 짊어지고 온다. 강 건너 과수원에서 따가지고 오는 길이다. 어제 집터에서 소이탄에 혼이 났다며 셔츠 군데군데에 구멍이 나 있다. 김봉현군을 만났는데 기총에 발을 다친 조카를 데리고 가족들이 영현으로 피난을 했다는데 아이의 발은 별 약도 못하고 썩어가고 있다고 한다.

1950년 8월 7일
이 마을에 무었을 탐색하려는지 아침부터 수대의 비행기가 번개처럼 날아와서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휘파람 소리를 내는 폭격기는 자골 사람들이 하나 같이 겁내는 비행기다. 저공의 요란한 소리는 귀신의 소리가 틀림없다. 바로 머리 위를 날면서 기총사격을 하고 있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듯 하는 저 소리, 죽음은 지금 눈앞에 다가와 있다. 안전지대라던 북창과 단목골 쪽으로 갔던 T씨는 자골로 되돌아 왔고 월하로 간 김 선생은 진주로 되돌아왔다는데 마전으로 간 허형은 소식조차 막연하다.

1950년 8월 8일
어제는 마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데 허형은 마전을 떠나 어디로 갔을까? 일본서 마누라와 생이별을 한 아우가 형수도 없는 형과 함께 어린것들을 데리고 어디서 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3살 난 여아가 엄마를 찾으며 울어울어 목이 쉰 그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청렴한 허형은 누추한 꼴을 남에게 보이기 싫었던 것이 자골을 떠난 이유였을 게다. 머리는 터부룩하고 때에 저린 옷들을 입고 어린것들을 앞세우고 지금은 어디로 헤매고 있는지 부디 죽지만 말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것인데.

1950년 8월 9일
대잎도 까딱하지 않는다. 매미만이 단조로운 곡조로 목청을 빼고 있다. 논들은 담뿍 물을 담고 있고 푸른 묘는 한 자는 더 커 보인다. 오랜만에 논을 메는 사람도 있고 못가에는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질식할 정도의 더위는 이보다는 좀 더한 것일까? 저녁에 점숙이를 데리고 어머니와 같이 시내로 들어갔다. 강군 댁에서 이 밤을 묵게 되었고 덕중 동생 소식은 강군 엮시 통영을 떠난 뒤로는 모르고 있다.

1950년 8월 10일
진주여고는 지붕은 내려앉고 벽은 여러군데 구멍이 뚫려 있으며 사택은 대문이고 벽장문이고 다 열려 있고 물건은 하나도 없이 가져가 버렸다. 강군 어머니에게 된장과 간장을 얻었다.

1950년 8월 11일
최복치씨를 만났다. 최형은 그 뒤에 양철을 챙겨서 제재 도구도 덮고 한군데다 묶어 재어두었다면서 요새는 폭격이 하도 심해서 현장에 가보질 못했다 한다. 말죽고개를 넘으려 할 때 몇대의 비행기가 날아와 머리 위를 빙빙 돌고 있다. 몇 그루 서있는 나무 밑에는 이미 사람들로 차있고 우리를 접근조차 못하게 한다. 얼씬도 못할 형편이다. 비행기를 바라보면서 걸을 수밖에 없다. 조금 뒤에 비행기는 사라지고 그늘 밑에서 겨우 안정을 되찾고는 강을 건넜다. 저녁에 호우씨 가족은 봉래산 기슭에 방을 얻어 두었다고 그리로 옮겨갔다. 고생을 한 집에서 같이 하다가 떠나니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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