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 ⑧] 티베트와 달라이라마
[삼강만평(三江漫評) ⑧] 티베트와 달라이라마
  • 정인갑<북경 청화대 교수>
  • 승인 2012.10.02 0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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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한국인들은 이렇게 말 한다. 티베트는 원래 독립 국가였는데 중공군이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었고 불복한 달라이라마는 해외로 탈출하여 지금까지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국은 세계에서 중국역사를 가장 잘 아는 나라임에도 이렇듯 몰상식한 말을 하므로 본문을 쓴다.

7세기 초 송찬간포(松贊干布)라 부르는 영웅이 티베트 10여개 부족의 정권을 무력으로 통일하고 지금의 라싸에 티베트왕조를 건립하였다. 그의 세력은 팽창하여 중원 당(唐)의 큰 위협이 되었다. 당은 티베트에 화친정책을 실행하여 당태종(唐太宗)의 딸 문성(文成)공주를 송찬간포에게 시집보내었다. 이로부터 티베트와 당은 정치, 경제, 문화 다방면에서 밀접한 관계였다. 당고종(唐高宗)은 송찬간포를 부마도위(附馬都尉), 서해군왕(西海郡王)으로 책봉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티베트가 행정적으로 당에 예속된 것은 아니었다. 1271년 몽고군은 중국대륙에 입주하여 원(元)나라를 세우고 1279년에 전 중국을 통일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티베트는 정식으로 중국의 판도에 들어왔다. 즉 중국의 한 개 지방정부로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733년간 티베트는 중국의 판도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

사실 티베트와 중국과의 관계는 이보다 더 오랜 역사까지 소급해 올라갈 수 있다. 고대 동아시아 각 민족은 중원에 하(夏), 동쪽에 이(夷), 서쪽에 융(戎), 남쪽에 만(蠻), 북쪽에 적(狄)이 분포돼 있었다. 夏가 세운 나라가 夏, 夷가 세운 나라가 상(商), 戎이 세운 나라가 주(周), 狄이 세운 나라가 원(元)이다.

지금 중국의 주체민족 한족(漢族)은 그 뿌리가 융이며 티베트와 같은 민족이었다. 기원전 11세기에 융이 상을 멸망시키고 周를 세웠으며 티베트도 당연 주의 주체민족이었다. 전국(戰國)시대부터 티베트일대와 중원간의 관계는 점점 해이해졌고 후세의 티베트, 강(羌) 등 소수민족들로 되었다. 그러다가 1279년에 다시 중원왕조에 편입되었다.

지금 세계의 주요 언어는 크게 인도-유럽어계, 차이나-티베트어계, 알타이어계 등 7~8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그중 차이나-티베트어계는 바로 한족과 티베트족의 언어를 대표로 하며 중국과 인도지나 반도에 분포돼 있다.

이들이 바로 고대 융으로부터 갈라진 민족들이다. 북경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출판된 <원시중국어와 차이나-티베트어(原始漢語與漢藏語)>에 이에 관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저자는 미국 학자 포니고(包擬古)이고 필자가 편집을 담당했다.

중공정부가 수립될 때 서남 사천(四川), 귀주(貴州), 운남(雲南), 서장(西藏, 즉 티베트) 각 성의 20여 가지 소수민족은 노예제사회였으며 다 무력으로 해방했다. 단 티베트만은 종교적 특수성 때문에 진압하지 않고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즉 중앙정부의 대표부를 설치하고 군대만 주둔하며 티베트의 사회제도를 건드리지 않고 스스로 서서히 변하기를 기대했다.

티베트는 다른 민족보다 더 암혹한 노예제도를 실행하여 민심을 극도로 잃었다. 체제 탓이겠지만 최고 권력자인 달라이라마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달라이라마가 지금까지도 티베트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1959년 3월 인도로부터 대량의 무기를 반입하여 무장폭동을 감행하였다. 중공군은 진압을 단행하였지만 달라이라마가 수만 명을 이끌고 인도로 도주하게끔 방임하였다. 즉 목숨을 살려 준 셈이다.

중공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당시 달라이라마 7세가 북경에 체류 중인데 강희(康熙)황제가 매일 찾아가 아침인사를 하였다. 박지원은 감탄했다. ‘달라이라마가 두려워서 매일 아침인사를 했겠나?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병사하나 파견하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티베트를 안정시켰으니 강희황제야말로 총명하도다.’

1959년 달라이라마는 25세였다. 중앙정부에서 그의 요구를 극력 받아주었으면 그만이다. 여자를 좋아하면 미녀 한 타스 주고, 금전을 좋아하면 황금 한 톤 주고, 명예를 좋아하면 국무부총리를 시켰으면 그만이 아닌가? 유교문화이므로 외국으로 망명한 중국정치인은 다 매장되었지만 유독 달라이라마만은 기적적으로 매장되지 않았다. 이 역시 중공의 오산이었다.

외국에 망명한 달라이라마는 정신을 차리고 교육을 중시하였으며 이미 수백 명의 석사, 박사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중국 안의 티베트민족은 아직 석사, 박사를 배출하지 못하였다. 또한 1959년의 무장봉기와는 달리 평화적 수단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국제사회의 지지와 동정을 받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금년에 78세이며 인생을 하직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포스터 달라이라마의 티베트의 전도는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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