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30] 호미
[아! 대한민국 30] 호미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2.10.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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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쟁기로는 밭을 갈고 삽으로는 흙을 뒤집는다. 괭이로는 땅을 파고 호미로는 김을 맨다. 농기구가 한둘이 아니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농기구는 아무래도 호미일 것이다. 호미 한 자루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데 호미의 장점이 있다. 땅을 파고 골을 내고 모종을 심고 돌이나 잡초를 제거하는데 두루 쓰일 수 있다. 체중을 이용하여 당기고 찍고 긁어서 사용한다.

중국 연변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더러 보게 되는데, 앉아서 호미로 김을 매는 사람들은 조선족이고, 서서 괭이로 김을 매는 사람은 한족(漢族)이라고 한다. 호미의 역사도 길다. 1446년에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에도 호미가 나온다.

농가월령가 6월령에 “날 새면 호미 들고/ 긴 긴해 쉴 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 막혀 기진할 듯”이라고 하여 논에서 두번 세번 김을 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송강 정철(1536~1593)의 시조에도 논매기를 노래한 것이 있다. “오늘도 다 새거다 호미 메고 가자스라/ 내 논 다 매거든 네 논 좀 매어주마/ 올 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스라.”

호미는 다른 농기구들과는 달리 앉아서 쓰는 농기구라 주로 여성들이 김을 맬 때 많이 쓴다. 얼마 전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 박완서 선생은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일구고 정원을 가꾸었다. 그러나 논을 맬 때는 남자도 호미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2-3차에 걸친 논매기가 끝나면 대개 칠석 무렵이 되는데 이 때에 맞추어 ‘호미씻이’와 ‘호미걸이’행사가 있어왔다.

‘호미걸이’는 김매기가 끝났으니 호미를 걸어둔다는 뜻으로, 어디선가 하서대(荷鋤臺)라고 추사가 쓴 액자를 본 적이 있다. ‘호미씻이’(洗鋤宴)는 김매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함께 자축하는 놀이다. 경기도 고양군에는 일찍부터 ‘호미걸이 소리’라는 노래가 전승되어 왔고, 호미씻이 놀이는 전국에 걸쳐 있다.

이 놀이는 가장 농사가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삿갓을 씌우고 황소에 태워서 노래하고 춤추며 마을을 한바퀴 도는 풍습이었다. 호미는 미국과 오스트랠리아 등 서양에서 Homi- Korean hand plow로 불리면서 인기있는 정원도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호미는 언제나 손에 붙어있으므로 대지에 대한 사랑, 더 나아가서는 조국과 국토에 대한 사랑을 얘기할 때도 호미는 곧잘 인용된다.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저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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