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기] 청룡부대 해병대전우들, 베트남 다시 찾다
[동행기] 청룡부대 해병대전우들, 베트남 다시 찾다
  • 베트남=박정연 기자
  • 승인 2012.11.1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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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불행한 과거역사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장학재단 설립

 
해방이후 6.25를 겪었던 우리 현대사와도 너무나도 흡사하게도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참혹한 전쟁을 겪어야만 했던 베트남. 그 전쟁의 비극을 온몸으로 체험한 주인공들이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고스란히 가슴에 품은 채 반세기만에 베트남을 다시 찾았다.

▲ 총알자국 난 전우의 철모를 바라보는 청룡부대원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명성을 안겨준 베트남 파병 청룡부대 해병대 전우회 회원들. 지난 1일 베트남 해병대전우회(회장 김일규. 해병 320기) 회원들의 안내를 받아 동남아를 비롯한 전 세계 흩어져 살던 옛 해병대 전우들과 함께 청룡부대 옛 주둔지였던 꽝남성 호이안(會安)을 방문했다.

호이안은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약 1,400여 킬로 떨어진 중부 동쪽바다에 위치한 고대도시로 지금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 세계적인 문화휴양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베트남 전 당시만 해도 ‘호이안’이란 이름은 우리 국민들에겐 청룡부대 주둔지로서 더 유명했던 곳이다.

불과 반세기 전 화약내 진동하는 M16 총자루와 수류탄, 심지어는 미군으로부터 받은 ‘크레모어’라 불리는 대인용 살상지뢰 등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들고 찾아온 그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의 주름진 손에 들린 것은 주민들과 어린아이들에게 나눠줄 옷과 학용품, 그리고 과자상자 꾸러미.

귓가에 어느새 하얀 서리가 내린 옛 전우들이 1965년 10월 9일 첫 파병 이래 40여년 만에 다시 찾은 옛 부대 자리의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다행히도 중대본부로 사용하던 건물이 남루하게나마 남아 있었지만, 부대막사건물은 농가창고로 바뀐 지 오래고, 위병소가 있던 자리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반쯤 부서진 채 뼈만 앙상한 콘크리트 벽 속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뙤약볕 아래, 흙먼지 펄펄 날리던 여단본부 연병장은 일부 텃밭으로 바뀌었지만, 대부분은 이름 모를 잡초들만 바람에 흩날리며 먼 길 온 손님들을 반기고 있었다. 반세기 만에 이곳을 찾은 이들 초로의 손님들은 자신들의 부대 터를 들러보며 다들 감회에 젖은 듯, 주름 가득한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 청룡부대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정글을 간다.
월남의 하늘아래 메아리치던 귀신 잡던 그 기백 총칼에 담고
붉은 무리 무찔러 자유 지키려 삼군에 앞장서서 청룡은 간다“

위령식 행사중 부른 청룡부대 해병대가의 가사다. 함께 따라 부르는 해병대 전우들의 목소리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히 느껴졌지만, 노래 가사처럼 백전백승 해병대의 기백만은 여전한 듯 했다.

이날 청룡부대소속 해병대 전우회원들은 호이안 디엔반 현의 Nguyen Vn Tam 중학교에서 수백여명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전우회 회원들이 준비한 의류, 신발, 운동용품도 함께 전달했다. 아이들도 맑은 미소로 대한민국 해병대 전우들을 환영해주었다. 순진하고 해맑은 그들의 웃음 속에선 과거 전쟁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 듯, 아니 잊으려 애쓰는 듯 보였다.

▲ 박정희 대통령이 베트남 참전 청룡부대에 전달한 휘호
그동안 베트남 해병전우회에서는 호이안 베트남재향군인회의 협조 하에 벌써 5년째 장학사업을 해왔다. 처음 장학사업 등 도움을 제안했을 때 한때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사이인지라 베트남쪽 입장에선 결정내리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베트남해병대전우회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지속적인 도움을 주었던 덕에 베트남재향군인들도 이제야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벌써 그사이 교육용 PC도 수십여대 기증했고, 금년에는 해병대중앙회의 지원을 받아 장학사업이 본격화 될 예정이다. 곧 청룡부대 이름을 딴 장학재단(준비위원장 류재묵, 해병229기)을 건립하고, 이를 시작으로 내년부터는 태풍지역 집지어주기와 재해복구사업 등 다양한 대민지원사업도 전개할 예정이다.

오후에는 김인식 전 해병대 사령관의 주재로 청룡부대전우들을 위한 합동위령제를 올렸다. 치사를 통해 장학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양국 국민간 과거의 아픈 상처가 다소나마 치유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생사고락을 함께 하다 산하한 옛 전우들의 넋을 위로하고, 전쟁의 와중에 억울하게 죽어간 200만 베트남 민간인들의 넋도 함께 기렸다. 베트남 해병대전우회 정종열 전우(해병 185기)에게는 공로패를 전달, 그동안의 공로를 치하했다.

▲ 청룡부대 본부 전경 (청룡부대전우회 제공)
최근 들어 베트남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베트남국민들의 의식수준과 역사의식도 높아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과거 베트남전 망자에 대한 전통적인 의례를 되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전통 속에서 심지어 적이었던 한국군들의 넋을 추모하는 것은 포함되었다고 한다.

변화는 전쟁이 끝나고 한 세대가 흐른 뒤 찾아왔다. 베트남이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을 시작했고, 한국과의 경제교류도 매우 활성화되었다. 이미 수만명의 베트남인들이 해외산업인력으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베트남 여성들의 국제결혼도 보편화된 지 오래다. 문화적으로도 인종적으로도 우리는 베트남사람들과 참 많이 닮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인도차이나반도 국가중 유일하게 우리처럼 몽골반점을 갖고 있다. 태고 적 중앙아시아 어느 평원에서 작별했던 같은 핏줄, 형제임에 틀림이 없다. 양국은 과거사의 멍에에 얽매이기에는 너무나도 특별한 관계다.

아무쪼록 베트남 해병대전우회를 비롯한 옛 참전 용사들의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과거 아픈 역사를 잊고, 다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큰 결실을 맺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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