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9] ‘아버지의 6.25 일기’
[연재-9] ‘아버지의 6.25 일기’
  • 서지원(전 텍사스오스틴상공인회장)
  • 승인 2012.11.17 06: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지원 회장
필자 서지원씨는 텍사스 오스틴에서 부동산 컨설팅 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향은 진주. 그는 1970년대 후반 자신이 경영하던 화장솔 공장을 위한 오더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정착한 케이스다. 그가 소장하고 있던 선친의 전쟁일기를 본지에 공개했다.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이기도 하다. 이를 본지에 연재한다.<편집자주>

1950년 9월14일
아침에 2대의 비행기가 시내 쪽으로 날아가고는 하늘은 고요하다. 청명한 날씨다. 오후에는 어머니와 아내와 그무못으로 놀러갔다. 그무못은 월하산 밑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못이며 주위가 십리는 된다. 못 아래 비옥한 평야가 앞들 이란 이름이다. 못물은 앞들을 흘러 저산을 구비 돌아 뒷들로 흐르는 데 뒷들은 앞들의 3배나 되는 넓은 들이라 한다.

황록색의 벼가 벌서 고개를 숙여 있고 추수 때 까지는 바쁜 일이 없는지 일하는 사람이 없다. 지서(파출소)는 지난날 소위 빨갱이에 대한 방비가 얼마나 어마 어마 했는가를 철통같은 이 모습이 생생하게 말해주는 것 같다. 학교는 심한 피해는 안 보이며 면사무소는 아담하게 지은 문화적 건물인데 인민 위원회가 자리잡고 있다. 한가한 노리에 오랜만에 마음이 안온 하나 해가 서산으로 기울 때는 우리는 시장기가 들었다.

그러나 요기할 곳도 없다. 막걸리라도 있으면 하여도 이곳에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라곤 없다. 이때 하늘높이 비행기가 우러렁 되며 진주 쪽으로 가고 있다. 논길을 질러 산을 넘어 돌아왔다. 마침 이 마을에 술이 있어 한잔 마시니 기분이 둥실 뜨는 듯하고 호기가 인다. 어머니는 시장하셨던 차에 한잔 드시고는 욕을 보셨다. 밤에 강 넘어에 폭탄 터지는 소리에 아침까지 잠을 설치고 말았다. 주인 박 씨는 간밤에 부역하러 나갔다.

요리조리 빠지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고지식한 박 씨는 그렇게 하려고도 않는다. 정이 많고 과묵하며 겸양의 덕을 갖춘 분이다. 할머니도 부인도 아량이 있고 종일 묵묵히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전쟁도 아랑곳 없고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비록 가난한 농가이나마 이집안의 가품을 말하고 있다.

1950년 9월15일
고구마 값이 많이 내려서 우리에겐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나락을 팔려고 조동으로 갔다. 이곳 치안대장으로 있는 고문석 씨는 해방직후 나에게서 과수원을 산 사람이다. 그때의 인상이 좋았고 인품이 온유한 사람이었다. 조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활엽수가 우거져있고 이 숲속에 인민군과 군기가 있으며 신병을 교육하고 있다. 양쪽으로 보초가 서 있으나 검문 하는 바도 없다. 나락은 팔 수 없고 사들로 가는 길에 어떤 노인의 안내로 백미 1말3되를 되 당 450원에 팔았다.(구입) 노인에게 사례를 하고 속살 마을 뒷산을 넘으니 한결 길이 가깝다. 돌아와서 쌀을 보니 아주 저질이어서 얼마 되지는 않으나 노인에게 바가지 쓰고만 것이다.

1950년 9월 16일
박 씨는 사봉까지 갔다가 새벽에 돌아왔다. 5살 난 아이의 생일이 되어 같이 조반을 했다. 비는 쉴 새 없이 내리고 마음도 적막하다. 이 마을 사람들이 박 씨 집에 모였다. 박 씨는 이 마을 농민위원의 5인중의 한사람이다. 가난한 농민들 끼리 식구와 능력에 따라 토지를 무상 분배하고 있다.

1950년 9월17일
어머니께서는 회갑은 절로 가서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겠다고 하신다. 종일 내린 비로 사장은 덮였다.

1950년 9월18일
중촌 근방을 폭격하던 비행기도 우리가 떠날 채비를 할 무렵에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주는지 사라지고 천지가 조용하다. 내일의 어머니 회갑을 모시기 위하여 우리 식구는 성은암으로 향해 출발하였다. 조동 입구에서 치안대원을 만났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어머니 회갑을 모시려 성은암으로 가는 길이라 했다.

아마 국민학교는 나왔는가한 글로 나의 주소 성명을 서툴게 적고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불교를 믿느냐고, 활엽수 숲을 지나면서 보초병에게 묵례를 하고 청곡사에 다달았다. 이 가람은 월하산 암 숲속에 자리해있다. 봉우씨 동생을 만나 같이 성은암으로 올라갔다. 성은 암에는 이분의 가족이 와 있다고 한다. 산길은 멀지 않으나 숨이 가팠다.

반달은 저 아래 속세를 빛이고 있고 진성 문산 일대가 아련하고 아름답고 또 답답하게도 보이는구나. 어느새 구름은 달을 가리고 모두가 희미하고 몽롱한 장막을 둘러썼다. 주지에게 우리가온 뜻을 말하고 내일 아침 공양할 약간의 금원을 드렸다. 가난한 암자이지마는 적은 금원 에도 구애 없이 어두운 밤길을 5리길이나 되는 조동까지 사미승을 보낸다. 너무도 미안스럽고 거룩한 스님의 마음에서 인생의 참된 빛을 보는 듯하다. 사미승은 어둡고 험한 산길을 다녀와서 어느새 저녁밥을 지어 왔다.

비록 보리밥에 된장 과 고추선 그리고 나물이 있을 뿐이다. 속세에서는 보잘것 없는 음식일지 모르나 이렇게 맛있고 고마움이 담긴 밥을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먹어 봤을까. 어머니 기분이 좋으시고 우리 모두 기분이 그만이다. 월하산 정기 자욱한 여기서 저 살기 찬 속세를 멀리하고 영원히 살고 싶다. 불은 끄고 방안은 캄캄 한데 문틈으로 찬바람이 스며든다. 그러나 군불을 많이 때워서 방은 뜨끈뜨끈하고 우리는 돼지 같은 삶에서 해방이 되어 하룻밤만이라도 이렇게도 행복한 것을 첫째는 우리 어머님께 그리고 스님에게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훈훈한 속에서 아침 늦도록 얼마나 단잠을 잤는지 모르겠다.

1950년 9월20일
창문을 여니 산뜻한 바람이 정신을 맑게 한다. 모두 새 옷을 입고 법당으로 들어갔다. 상위에 안치된 금불은 어느 조각가의 손으로 다듬어 졌는지 인자한 모습이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고 가슴에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어머니의 회갑을 축하 해주시는 스님의 독경 소리가 법당 안에 낭낭히 울려 퍼지며 우리 모두 숙연한 자세로 부처님 앞에 엎드려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 한다.

일찍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자식 5남매를 키우시느라 고 몸도 마음도 여일대로 여이셨든 어머니 고맙고도 불상한 우리 어머니 어머니의 회갑을 동생들의 생사조차 모르고 이 고독한 산속에서 맞이하신 어머니의 마음 은 얼마나 쓸쓸하시며 가슴 아파 하실까. 그러나 어머니는 조금도 이런 기색 보이지 않으시니 우리 어머니 장하시고 크시다.

오랜 불교의 신앙에서 욕심도 잡념도 없는 어머니는 바로 부처님 같이 거룩하게만 느껴진다. 어머니에게 정성을 드린 뒤에 공양 밥을 먹었다. 우리는 허무한 마음으로 스님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드리고 암자를 내려올 때 스님은 우리를 작별하면서 이곳으로 피난 올 의향이 있으면 반갑게 맞아 주겠노라 하신다. 내려오는 길에 청곡사 에서 정종문씨 모친을 만났다. 가족의 안위도 모르시고 홀로이 이곳에 계시면서 눈물로 나날을 보내시는 모친을 대하니 반갑기도 하려니와 눈물이 절로난다. 건강하게 계시기를 빈다며 인사말을 남기고 큰길로 나섰다. 많은 인민군이 진주 쪽으로 가고 있다. 물어보니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 한다는 것이다.

1950년 9월21일
대곡면으로 강을 건너든 2사람이 폭격에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시내로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문산으로 전선 부대가 후퇴 하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1950년 9월22일
포성은 마을 가까이 에서 들려온다. 모두 얼굴빛이 하얗다. 그러나 만성에 젖어있다. 수많은 폭격기는 문산 쪽으로 집중하고 있다. 군북, 함안, 반성, 문산, 사람들은 모두 피난가고 없다고 한다. 함안사람 가족7명은 동산이 재로 피난 갔다가 떼죽음을 당했다 한다. 보리를 찧는다. 시계가 또 자니 갑갑하다. 대포소리는 밤 내내 문산 쪽에서 들려온다.

1950년 9월23일
점숙이는 시내 갔다 오겠다고 졸라댄다. 조심해서 빨리 갔다 오라했다. 용심으로 피난민이 몰려든다고 한다. 위기는 자꾸자꾸 자골로 닥쳐오는 것 같다. 인민군이 달음산으로 많이 들어갔다는데 저 험한 산으로는 왜들어 갔을까, 비행기는 달음산 상공을 선회하고 있다. 대포는 속살 앞들 에도 떨어졌다하며 용심 쪽으로 지금 폭격은 명열하다. 점숙이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강군이 통영으로 가다가 인민군과 국군사이에 전투가 너무 치열해서 되돌아 왔다면서 소문에 외삼촌께서는 고성 쪽으로 피난도중 국군에게 총살 되었고 덕중이는 어디론가 피난했다고 하드라는 것이다. 위험이 닥치면 외조모님을 모시고 섬으로 들어 갈 것이라 하셨는데 믿을 수 없는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