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고구마를 겨울에 캐다
[Essay Garden] 고구마를 겨울에 캐다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2.12.2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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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한국의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고구마를 캐러 간단다. 서울에 사는 친구 중에는 남편들이 농사짓는 취미가 있어 시골에 땅을 사서 즐기고 있었다. 여학교 동창들과 함께 자가용을 타고 시골 친구 집 고구마 밭으로 나들이를 간다니 소풍을 가듯 즐거웠을 것이다.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삶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좋다. 육체적 노동,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밭일은 해 본 사람은 그 보람을 잘 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물과 햇살, 공기라는 영양소도 듬뿍 마셔야 수확을 할 수 있다. 건강해서 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 노동을 해서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올해 난생처음으로 나도 고구마 농사를 지어보았다. 한 개의 고구마를 땅에 심고 싹이 튼 부분을 뽑아 네 곳에 옮겨 심었다. 여름의 이곳 날씨가 가뭄이라 물을 충분히 주지 못했다. 수분이 적어서인지 고구마는 느릿느릿 더디게 자랐다. 초가을이 되어서야 줄기가 죽죽 뻗어 나갔다.

땅속의 고구마는 기대하지 않고 줄기라도 나물로 무쳐먹고 싶었다. 유기농이라 실처럼 가느다란 것을 차분히 앉아 일일이 껍질을 벗기고 있던 나를 보고 남편이 놀랐다. 지루하지 않으냐며. 단순한 노동을 반복하면서 수행을 한다. 마음으로는 평화. 무념 속에서 잠시라도 나의 부질없는 욕심과 성이 난 마음을 내려놓는다.

고구마 줄기에 올리브기름과 양파를 채 썰어 마늘을 넣고 볶아내니 남편이 잘 먹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즐겁게 다른 사람이 먹는 모습 또한 기쁨 아닌가. 고구마와 김치는 찰떡궁합이란다. 고구마 속의 칼륨은 우리 몸의 나트륨을 배설하기에 고혈압환자에게도 좋단다.

김치는 나트륨을 보충해 준단다. 우리조상은 과학자도 아니면서 어떻게 지혜로운 음식들을 만들면서 살아갔는지 참 자랑스럽다. 여학교 때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 집의 뒷방 안에는 늘 고구마 포대가 가득히 쌓여 있었다. 말려서 과자처럼 간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 고구마는 긴 겨울 내내 좋은 먹거리였다.

어릴 적 지혜로운 어머니는 흰 쌀밥보다도 맛이 있고 영양가가 좋다며 무안 밤 고구마를 섞어 밥을 종종 지었다. 고구마 조림 반찬을 도시락에 가지고 가면 친구들이 신기해했다. 나도 어머니처럼 늘 비싼 비용들이지 않고도 건강한 식단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만든다. 정성으로 만들어 먹은 음식은 우리 몸의 세포를 하나하나 만들기 때문이다. 좋은 마음으로 통하는 에너지가 만들어 놓은 세포는 건강한 우리 몸을 지켜줄 것이다.

지난번 고국에 나가보니 어떤 친구들은 살을 뺀다며 아침밥으로 고구마를 먹는다 했다. 푸대접을 받던 고구마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얼마 전 성인학교 동양화 그림 시간의 종강 파티에 나는 잡채를 만들어 갔다. 쫄깃쫄깃한 국수를 신기해하며 미국인들이 물었다. 고구마 전분으로 만들어진 당면에 대하여 신이나서 나는 설명했다. 마침 고기가 없어 가지가지 채소를 넣어 만들어 갔는데 잡채는 뜻밖에 대인기였다.

한국인 하면 대부분 그들은 불고기와 김치밖에 모른다. 김치는 무조건 냄새가 나고 맵다고 한다.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양념을 조정하면 한국 음식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인기 식품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겨울비가 내려 밤 기온이 10도 근처로 내려가니 잎과 줄기가 까맣게 얼어버렸다. 낮시간은 따뜻하여 더 성장하기를 기대했는데 고구마를 캐야만 했다. 정원 일을 이것저것 하다 고구마 밭일을 했더니 날이 껌껌해져 버렸다.

고구마가 달린 무거운 뿌리를 만지며 흥분한 나는 호미 끝에 딱딱한 것이 닿으면 뿌리를 뽑았다. 고구마가 네댓개씩 달려 있었다. 내 주먹만 한 것들도 있었다. 내 생애 지어본 첫 고구마 농사. 남가주의 12월 날씨에 수확하다니. 작은 양푼에 넣고 기념 촬영을 했다.

내 험한 손은 얼음같이 시렸다. 흙이 들어간 손톱은 새까맣다. 뜰에 나가면 이토록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사랑으로 자연과 놀면서 나는 뜰을 가꾸어준다. 그들은 되돌려 많은 걸 베풀어 주고. 고구마 농사에 마음으로 고사를 지내며 밤하늘을 보니 맑은 공기의 향기에 코끝이 시렸다.

하늘이여, 땅의 신이여 잔인한 인간들을 돌보소서. 오늘도 총이라는 물건으로 죄 없는 사람을 맥없이 파리 잡듯이 죽이나이다. 만약 태양의 별이 지구에 떨어진다면, 이 지구는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는데도, 서로 모함하고 증오하면서 혼자만 잘 먹고 살려는 인간들을 어찌하면 착한 마음으로 되돌릴 수가 있을까요.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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