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칼럼] 강설(降雪)
[詩가 있는 칼럼] 강설(降雪)
  • 이용대(시인)
  • 승인 2013.01.04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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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눈발이
갈대들을 축인다
 
외투를 입고 있던
언덕 위의 측백나무
어깨를 꾸부린 채 부처를 닮아가고
뻣뻣한 왕대도 머리를 수그린다
 
쏘다니던 바람이
찔레덩굴에 걸려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그 안에서 잠든다
 
홍수로 허물어지고
불타다만 솔밭은
상처 난 부위를 하얀 수건으로 가린다
 
무제한 공급되는 가루약을 뿌리면서
황사로 삭은 지붕마다
붕대로 칭칭 감는다
 
나도 심리치료를 받으려
문밖으로 나선다.
 
<이용대 제4시집 ‘저 별에 가기까지’ 98쪽에서>
 

 
요즘 내리는 눈은 가난하여 배고팠던 옛날과는 다르다. 그러나 삭막하기만 한 거리를 산동네 같이 포근한 느낌이 들게 해준다. 눈 내리는 길을 걸을 땐 누구나 동심으로 또는 향수에 잠시 젖게 한다. 내가 태어난 강원도. 그 영동지방은 해안선을 따라 폭설이 종종 내린다. 해송림에 서면 파도소리도 한층 낮게 들린다. 온 자연이 다 부드러운 모습으로 변한다. 몇 번의 큰 태풍과 방대하게 번졌던 산불로 난 상처가 있는 마을을 눈이 덮어준다. 그 눈이 녹은 수분으로 새 봄엔 파란 싹이 돋아난다. 비가 성장을 돕는다면 눈은 싹을 틔우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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