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특별한 결혼 기념일
[Essay Garden] 특별한 결혼 기념일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3.02.04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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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특별한 행사가 엘카혼 도시 외곽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에서 있었다. 은퇴 후 남편이 함께 연주하고 있는 샌디에고 만돌린 오케스트라 회원 중 한 부부의 65주년 결혼기념행사였다. 라자냐와 피자, 또 만돌린 협주로 저녁을 마련한 늦은 일요일 오후. 회원 부부와 친척, 친구까지 예약한 사람들이 50여 명 모였다. 벽의 한쪽에는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결혼식 때 키스하는 젊은 부부의 커다란 흑백사진이 있고, 꽃과 손님들이 들고 온 카드가 앞에 놓여있었다.

수요일 저녁마다 지금도 사위나 딸, 아들 때로는 대리운전사를 데리고 오케스트라 협주단의 연습실로 항상 같이 다니는 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 살 연상의 아내(Pearl)는 아직도 연주하고, 두 해 전부터 86세의 포리스트(Forrest) 아저씨는 시력이 나빠 뒤편에 앉아서 감상을 한다.

바이올린을 치던 아내가 어느 날 악기점에서 만돌린을 보고 반하여, 남편까지 합세하여 연주한 세월이 20년이 넘었다.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음악이야말로 명쾌한 보약이 아닐까. 연주회를 볼 때마다 나는 100살 가까이 장수하다 세상을 떠나던 연주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1947년, 20대의 군인 청년이 전화회사 벨에 근무하는 아가씨에 반하여 청혼했는데, 펄 아주머니도 천생연분인지 즉각 ‘네(Yes)’라며 응했다. 포리스트 아저씨는 그동안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야기하여 참석자들을 웃겼다. 결혼할 때 가구가 달린 아파트의 렌트비는 매달 35불이었다. 남편의 봉급은 150불이라 아내도 잠시 짧은 직장생활을 하다 주부로 살아왔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사업가 남편은 삼 년 후 $4500주고 집을 샀다. 2년 후에 $6500가 되어 집을 팔고 옮겼다. 전기기술을 가진 그는 집을 지어 살다가 집값이 오르면 팔고 하면서 세 자녀를 키웠다고 했다.

지루할 수도 있는 오랜 세월을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살아온 비결은 무엇일까. 작은 것을 두고 다투지 않았다고 했다. 작은 일로 왜 우리가 싸우느냐며 서로 껴안으면서 살아왔다. 예를 들면 큰 문제는 우리가 누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지 하면서 머리를 맞대며 살았다고 해서 우린 배꼽을 쥐었다. 식당의 좁은 복도를 지날 때도 나하고 거의 부딪히게 되었는데 “오오, 여기 큰일이 났네.” 하며 큰소리로 그가 농담을 걸어와 내 얼굴을 붉히게도 했다.

게다가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남편을 만난 행운의 여인 펄 아주머니는 조용한 분이다. 지금도 연주단원들이 필요한 악보를 복사해 오는 봉사를 해오고 있다. 내가 당신 아내의 매력이 무엇입니까 물었을 때도 서슴지 않고 ‘아름답다(She is beautiful.)’고 그는 대답했다. 그런 멋진 신사를 만나며 나는 종종 늙은 아내의 얼굴 주름살을 들추던 어리석은 한국인 남편들을 떠올렸다. 팔팔했던 젊음을 다 보내며 헌신하던 조강지처를 구박하다 황혼이혼을 당하는 한국의 못난 남편들은 반성해야 하리라.

이글을 다시 교정하느라고 손질하던 날은 공교롭게도 슬픈 소식이 왔다. 몇 해 전 귀여운 여배우 최진실 씨의 자살 소식에 온 국민이 안타까웠는데, 전남편인 야구선수 조성민 씨마저 자살했다는 비보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사랑놀이에 천애의 고아가 되어버린 천진난만한 두 아이의 슬픈 얼굴과 그들을 돌보아야 하는 외할머니의 실신한 모습에 나의 가슴도 멍해진다.

알고 보니 그날의 특별한 결혼기념일 행사를 열었던 이탈리안 식당의 주인은 사위였다. 막내딸이 7년 전 심장 마비로 가버렸지만, 지금까지 홀로 사는 사위가 동서와 처남이랑 한마음으로 차려 놓은 축하 저녁상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40여 명의 만돌린 협주 회원들과 가족을 초청하여 피자를 대접하고 식당 손님들에게는 음악을 선물해주던 너그러운 주인의 사연을 오늘에야 알았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자기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멋지게 쓸 줄 아는 사장님을 보며 감동하였고 깊은 존경을 보낸다.

초청장 위쪽에는 부부가 1946년에 처음 데이트를 했던 캘리포니아의 마린 카운티에 있는 바닷가를 지난해 찾아 가 찍은 노인이 된 부부 사진이 들어있었다. 아래쪽에는 그냥 와서 즐겁게 먹고 놀고 가라는 부탁이 있고, 선물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은 나는 예쁜 양초를 선물로 가져갔다. 며칠 후 펄 할머니가 나의 선물을 잘 받았다며 금박과 은박으로 장식된 아주 예쁜 감사카드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그날에 느꼈던 우리의 깊은 정이 두 사람의 가슴속으로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던 것 같아 예쁜 카드를 한동안 나는 들여다보았다.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을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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