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쓰러진 나무를
스승으로 삼는다
땅을 꽉 거머쥔 듯 팽팽한 뿌리 겉으로
툭툭 불거진 힘줄에 진땀이 배어 있고
가지는 돌개바람을 이기며
꼿꼿하게 자랐다
가뭄에서도 잎을 피워 낸
억센 몸짓이 뚜렷하다
빈주머니 때문에
허리를 굽혔던 내가 부끄럽다
목피에 손을 얹고
수맥 한 가닥을 이식한다
다리의 근육이 샘물 같은 힘을 받는다
정월 초하루 새벽에 나를 곧게 세우는 건
쓰러져서도 죽죽자란
물푸레나무 한 그루다.
<이용대 제3시집 - 바위도 꽃을 피운다- 47쪽에서>
폭풍에 쓰러진 나무의 뿌리를 보면 살고자 하는 억센 모습에 전율하는 경우가 있다. 쉽게 뽑혀지지 않으려고 팽팽하게 흙을 거머쥐고 있는 잔뿌리들의 용틀임이 발길을 불러 세운다. 완전히 누워버린 나무지만 그 몸에서 돋아난 싹이 줄기를 세우고 수직으로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본다. 지위가 낮다고, 벌이가 시원치 않다고 좋은 집에 살지 못한다고, 고급 자가용을 끌고 다니지 못한다고... 그래도 세워보려던 머리가 절절로 숙여진 때가 많았다. 사람은 나무보다 못한 것일까. 나를 깨닫게 하는 것 모든 것은 다 스승이다 라고 공자가 말했다. 설날 새벽 우연히 걷게 된 고향 뒷산 길에서 산사태를 맞고도 이겨내며 살아 있는 물푸레나무를 조용히 만져보았다. 그래, 너는 나의 스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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