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편지] 일본 전범기에 패한 한국축구
[뉴욕편지] 일본 전범기에 패한 한국축구
  • 노창현<뉴스로 편집인(newsroh.com)>
  • 승인 2013.07.2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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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미주최초의 위안부기림비가 뉴저지 팰리세이즈팍에 건립된 것은 2007년 미연방 하원이 만장일치(滿場一致)로 통과시킨 ‘위안부 결의안’이 단초가 됐습니다. 일본이 2차대전중 자행한 위안부범죄의 역사적 책임을 명시하고 사과와 배상을 촉구한 결의안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도록 당시 유권자센터(현 시민참여센터)와 고교생인턴들이 위안부기림비 건립운동을 시작한 것이지요.

그 후 3년, 미국의 지방정부 최초로 버겐카운티 위안부기림비 등 동부에 3개의 기림비가 세워졌고 서부엔 30일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 건립되는 해외최초의 위안부소녀상 등 2개의 기림비가 존재합니다. 가끔 한국에 있는 이들이 궁금해 합니다. 왜 일본과 상관없는 미국에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되고 기림비가 세워지냐고요.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요.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자유와 평등, 인권 등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로 탄생한 나라입니다. 세계 220여개 민족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터전을 일군 나라입니다. 공공장소에 나치학살 희생자를 기리는 홀로코스트기념비와 아일랜드대기근 추모비, 흑인인권기념비, 아르메니아학살 추모비가 서 있는 것도 시대와 장소, 인종은 달라도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미 하원의 위안부결의안은 일본이 한사코 숨기려 했고 피해자 한국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인류최악의 집단성범죄를 전 세계에 고발하며 전쟁의 추악함과 여성, 어린이인권문제를 제기한 역사적인 장거(長擧)였습니다. 미국이 관심을 갖자 일본은 동요했습니다. 아무리 한국이 떠들어도 눈하나 깜짝 않던 일본이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손으로 일본의 뺨을 후려치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결코 공짜로 이뤄진 일은 아니었습니다. 뉴욕과 LA의 한인들이 연방의원들이 있는 워싱턴DC로 수없는 발품을 팔아 설득하고 또 설득하여 이룩한 ‘풀뿌리 로비’의 개가였습니다. 미국서 살면서 의로운 한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의 국적이 대한민국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뼛속까지 한국인’이니까요.

간도협약 ‘100년 시효설’로 우리 민족의 고토 간도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했을 때 “도시락폭탄을 든 심정으로 대한민국 국새(國璽)를 위조해서라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던 한인, 아프간 탈레반에 샘물교회 신도들이 피랍(被拉)됐을 때 아픈 여성대신 인질이 되겠다며 현지 접촉을 하다 미 정부의 만류를 받은 한인, 유태인 명절은 쉬는데 왜 우리는 안 되냐며 설날을 한인들이 많은 뉴욕의 공립학교 공휴일로 지정하는 운동을 펼치는 한인. 태극기 명함 수천 장을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깃발인 태극기를 알리는 운동을 펼치는 한인, 미국시민권자 1호인 서재필 박사의 후예이기 때문일까요. 그들은 어찌 보면 21세기의 독립군과도 같았습니다.

런던올림픽에서 일본체조대표팀이 전범기 컨셉의 디자인을 한 유니폼을 입고 나오고 운동장에서 체육관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욱일전범기를 흔들어대는 응원단을 보고 격분, ‘일전퇴모(일본전범기퇴출시민모임)’를 결성한 것도 이곳 한인들이었습니다. 뉴욕현대미술관이 일본전범기 배너를 만들었을 때, 뉴욕시가 전범기 컨셉의 광고디자인 홍보물을 온오프라인에 걸쳐 뿌렸을 때 강력하게 항의해 공식사과를 받아낸 것도 이곳의 한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국에선 전범기 컨셉의 광고물이 공공연히 신문 방송 온라인에 출몰(出沒)하고 어느 동네 공무원들은 야유회때 유사(類似)전범기를 흔들어대는 짓을 버젓이 저질렀습니다. 일부에선 “전범기를 닮았다고 문제 삼는 건 디자인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묻습니다. 일본전범기와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는 동급이 아닌가요? 전범기를 앞세운채 3400만명을 죽이고 20여만명의 꽃다운 소녀들을 성노예로 삼은 일본의 전쟁범죄는 유태인 600여만명을 학살한 나치의 만행(蠻行)을 넘어서는 인류최악의 범죄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욱일전범기 비슷한 것도 얼씬대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컬러도, 모양도 다른 유사전범기를 뉴욕시가 인정하고 사과했는데 전범기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인은 통 크게(?) 받아들이자는 건가요? 우리 언론도 피의 살육으로 얼룩진 전범기에 ‘욱일승천(旭日昇天)’이라는 좋은 말을 더 이상 진상(進上)해선 안 됩니다. 욱일전범기, 혹은 일본전범기로 칭해야 합니다.

28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전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한국축구가 일본에 1-2로 져서가 아닙니다. 결단코 용납해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바로 일본의 전범기입니다. 일본 응원단이 대형 전범기를 경기 중 휘두른 것입니다.

거꾸로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일본을 35년간 식민지배하고 20만명의 소녀들을 성노예로 삼고 수천만명을 전쟁으로 살육(殺戮)한 그 상징의 깃발을 일본 경기장에서 감히 휘두를 수 있었을까요. 안전요원들의 제지로 일장기를 대신 들었지만 이미 저들은 한국의 안방에서 전범기를 보란 듯 흔들어대면서 순국선열(殉國先烈)을 욕보이고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조롱(嘲弄)했습니다.

전범기는 소지 자체가 불허됐어야 합니다. 저렇게 큰 전범기를 일본응원단이 들고 오는데 몰랐다면 말이 안 됩니다. ‘울트라 니뽄’엔 이처럼 관대하면서 우리 문화체육관광부와 축구협회는 ‘붉은악마’가 애국가 제창 시 펼치려 한 조선제왕의 투구와 갑옷 현수막은 반입 자체를 막았습니다. 일본이 식민시대 몰래 빼낸 조선의 제왕 투구 사진이 펼쳐지면 일본이 망하기라도 하나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대신 붉은악마는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걸개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유훈(遺訓)을 플래카드로 펼쳤습니다. 그러나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축구협회의 의뢰를 받은 용역업체가 철거하려한 것입니다. 추악한 전범기를 노골적으로 흔들어댄 일본의 정신병자들과 ‘역사를 잊지 말자’고 침묵의 함성을 지른 우리의 붉은악마가 동급이란 말인가요?

백보 양보해서 그것이 정치적 제스추어라 해도 우리 경기장에서 우리 응원단이 그 정도 몸짓도 못한단 말입니까? 만약에 FIFA가 문제를 삼는다면 더욱 좋은 일입니다. 일본의 추악한 과거 역사가 널리 홍보될테니 말입니다.

붉은악마가 잔여경기에서 응원을 보이콧 한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아니, 할래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자주독립국가 대한민국 경기장에 있었던 게 아니라 일본의 통치를 받는 식민국가 경기장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축구협회가 박종우의 ‘독도는 우리땅’ 해프닝 때 일본협회에 극구 머리를 조아렸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문체부가 응원걸개를 놓고 반입을 금지하는 외압 논란을 일으켰겠습니까. 그대들은 누구의 정부요, 누구의 협회인가요, 미국의 한인들은 그것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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