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넌 자라서 뭐가 되고 싶냐?”
난 그윽하게 눈을 내리깔면서 일단 하늘을 한번 쓰윽 올려다본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삐딱하게 꼽는다. 눈빛은 최대한 염세적인 몽롱함을 뿜어내면서 그리고 천천히 입을 궁굴리며 대답한다.
“난 정말이지 되고 싶은게 이 살아가는 게 꿈.이.다. 혹자는 그걸 무위자연이라고도 하지 아마도.” (하이고 맘속으로는 오만가지 오색찬란한 욕망으로 디글디글 끓고 있으면서)
그런 꼴값을 떨면서 잰체하고 있노라면 그게 또 그런대로 먹혔다. 그래도 너의 소망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세상의 모든 열쇠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도둑이 되고 싶다.”
(하이고 점점) 친구 녀석들은 “오호~ 역시!” 라고 탄성을 질러준다. 그러면 나는 시니컬한 웃음을 입가에 잔잔히 머금는다. (아 왜 나는 일찍이 배우로 나서지 않았을까) 그러나 도둑질은 그렇게 관념적인 근사함이 아니라 치사하고 비겁하고 살 떨리는 행위 라는걸 나는 일찍이 알고 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하교 길. 참새 두 마리가 늘 쉬어가는 방앗간이 있었다. 내당동 신도극장 입구, 그 당시엔 제법 큰 점방. 친구 녀석은 주범이고 나는 주로 똘만이었다. 내가 망보고 녀석은 신기의 손놀림으로 소라 빵 두개씩을 꼭 훔쳐내야만 우리들의 하교 길은 마무리가 된다. 사과는 훔쳐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훔친 소라 빵의 그 달콤함은 잊을 수가 없다. 이쁘게 쌓아올린 똥 무더기 형상의 그 소라 빵. 베베 꼬인 그 속에 꽉 들어찬 하얀 크림. 철철 넘쳐 나오던 그 도파민의 늪. 하교시간이 다가오면 우린 저도 모르게 발길이 그 점방으로 향하게 된다. 더욱 아이러니는 그 도둑친구도 부모님이 점방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점방집 아이. 만화방 집 아이. 쌀 집 아이. 내당동 대건 약국 집 아이.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무엇이 아쉬워 남의 방앗간으로 날아들었을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그 이끌림. 그 도파민의 늪.
점방의 역사, 점빵-구멍가게-가게-연쇄점-슈퍼-편의점-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