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4)
[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4)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4.01.18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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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성 있는 우리 유산

우리나라에 자랑스러운 유산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선조들이 과학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정보부족을 들지만 보다 더 신랄한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신화나 전설 또는 문학작품에 과학성이 깃든 내용 즉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이나 과학적 관찰력을 엿보이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선조들에게 과학성이라는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바보와 같이 살았다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과학성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과거를 잘 잊는다는 것을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가스 불 위의 냄비와 같이 금방 달아오르다가도 불이 꺼지면 금방 식는다며 과거를 생각지 않는 선조들을 매도한다. 우리나라 소설이나 민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이야기 중에 하나는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란 말이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울 리가 없으므로 매우 오래되었다는 뜻으로도 이해되지만 이 말은 우리가 과거를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는 증거로도 활용된다.

학자들은 호랑이의 원류를 약 6000만 년 전에 살았던 마이어시스로 보므로 호랑이가 매우 오래 전부터 한반도를 포함한 지구상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담배이다. 담배는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에 서유럽으로 도입되었다가 일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므로 아무리 빨리 들어왔다 하더라도 16세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설사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더라도 500년이 채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민족에게 500년이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이라면 그보다 오래 전에 일어났던 과거를 생각하지 않았거나 무시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한마디로 우리의 선조들이 과거를 생각하지 않은 비문화적인 생활을 계속해왔으므로 과학이라는 말을 접목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과학이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유산을 통해 계속 발전하는 것이므로 500년 이상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자체가 우리나라 선조들이 창작한 문학작품들에 과학성이 없었다는 것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미래에 대한 식견이나 과학적 사고 없이 바보와 같이 살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과 매우 다르다. 가장 간단한 예로 흥부와 놀부 형제의 우애를 적은 『흥부전』을 보자.

 
흥부의 집에 둥지를 튼 제비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구렁이에 의해 제비 새끼가 다리를 다치자 흥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쳐준다. 흥부에 의해 치료가 된 제비는 강남으로 가서 다음해에 박씨를 물고 오고 흥부는 졸지에 부자가 된다. 이 소식을 듣고 샘이 난 놀부가 자기 집에 살고 있는 제비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부러뜨리면서 자신에게도 박씨를 갖고 올 것을 기대한다. 결론은 놀부가 파산하고 벌을 받는다는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한국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흥부전』의 작가는 매우 놀라운 과학적 지식을 갖고 소설의 플로트를 구성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놀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부러뜨렸는데도 다음 해에 자기 집에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비가 다음해에도 똑같은 장소로 되돌아온다는 귀소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제비는 인간과 매우 친하여 자신이 태어난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또한 『흥부전』 원본을 보면 “칠산 조기 껍질 벗겨 두 다리를 돌돌 말고 오색 당사로 찬찬 감아 제 집에 넣었더니 십 여일 지난 후에 양각이 완고하여 비거비래(飛去飛來) 노는 거동 보기가 장히 좋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칠산 조기껍질’은 붕대 대신, 잘 마른 살균 자연 재료라고 할 수 있고, ‘당사’ 또한 탄력 있는 부드러운 실크사로 현대의 압박붕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섣불리 제비 새끼를 치료한다고 따로 두기보다는 제 집에 넣어 주는 것이 새끼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다. 또한 새들은 뼈가 가늘고 연약하면서도 잘 붙으므로 10여일이면 충분히 회복된다. 최종욱 야생동물 수의사는 『흥부전』의 작가가, 직접 체험한 것과 다름없이 완벽한 자연 치료법을 구사했다고 적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온다는 장면이다.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온다는 것은 정확한 관찰력의 소산이다. 제비는 다른 철새와는 달리 인간과 매우 친근한데 자신이 살던 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면 반드시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한마디로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수컷을 잃은 암제비는 그 이듬해 반드시 홀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삼월 삼짇날 되돌아오는 과부 제비는 옛 시인들이 선호하는 시의 소재였다.

춘삼월에 찾아오는 제비들은 자기가 살던 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처마 밑에 집을 짓고 나서 반드시 조개껍질 두세 쪽을 물어다가 집에 놓아둔다. 이는 어린 새끼들을 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옛날 사람들이 업구렁이라 하여 보호하던 능구렁이는 우리가 전봇대에 손톱을 긁을 때 몸서리치는 것처럼 조개껍질과는 상극이다. 이를 잘 아는 제비가 먼 바다로 가서 조개껍질을 물어오는데 바로 그러한 상황을 관찰한 작가가 하얀색의 조개껍질 대신에 하얀 박씨를 물고 온다고 변환시킨 것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거의 모든 초가집 지붕에 박을 심었으므로 박씨에 의해 열리는 커다란 박을 행복과 불행을 가져오는 소도구로 삼았다는데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렁이가 제비집을 자주 습격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흥부의 제비집도 구렁이가 습격했고 일전에 TV에서도 제비집에 동아리를 튼 뱀이 방영되기도 했다. 여하튼 제비로서는 조개껍질이 구렁이에 대항하는 최선의 방안이므로 지금도 조개껍질을 갖고 오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참고적으로 근래는 제비의 이동이 남다르다. 해방 전 기록을 보면 한반도에 북상하는 제비 수는 약 500만 마리로 한 해에 2600만 마리의 새끼를 낳고 2300억 마리의 해충을 잡아 먹었다고 하는데 근년에는 제비보기조차 어려워 제비가 나타났다고 신문에 나올 정도다. 농약 때문이라는 물리적인 이유 말고도 이지러는 한반도의 풍토 때문에 제비들이 정신적으로 살기 어렵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이규태는 적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쥬라기공원」에서 공룡 복제를 내놓아 일반인들로 하여금 동물 복제에 관심을 갖게 한 이래 복제 관련 이야기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다. 양이나 원숭이, 소나 돼지 등의 복제는 이제 상식이 되었고 인간이 복제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기술이 총 결집되었다는 인간복제도 우리의 선조들은 이미 예견하고 작품에 사용하였다. 『옹고집전』이 바로 그것이다.

황해도 옹진골 옹당촌이라는 묘한 곳에 옹고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성격이 고약해서 매사에 고집을 부리는 것은 물론 인색하여 팔십 노모가 냉방에 병들어 있어도 돌보지 않았다. 학대사가 어린 중과 옹고집의 집에 시주를 구하러 왔다가 매를 맞는 등 수모를 당하자 원출봉 비치암의 도사는 옹고집을 징벌하기로 한다. 그가 허수아비를 만들어 부적을 붙이니 옹고집이 하나 더 생겼다. 가짜 옹고집이 진짜 옹고집의 집에 가서 둘이 서로 진짜라고 다툰다.

옹고집의 아내와 자식이 나섰으나 누가 진짜 옹고집인지를 판별하지 못해 관가에 고소를 하지만 가짜 옹고집이 승리한다. 진짜 옹고집은 곤장을 맞고 쫓겨나 거지가 되며 가짜 옹고집은 집으로 들어가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살며 아내는 아들을 몇 명이나 낳기까지 한다. 거지가 된 옹고집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드디어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친 후 산 속으로 들어가 자살을 하려고 한다. 이때 도사가 나타나 부적을 주어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집에 돌아가서 그 부적을 던지니 그동안 집을 차지하고 있던 가짜 옹고집은 허수아비로 변하고 아내가 가짜 옹고집과 관계해서 낳은 자식들도 모두 허수아비였다. 그 후 옹고집은 새 사람이 되어 착한 일을 하는데 여기서 옹고집이 두 사람이 있다고 설정한 것 자체는 복제인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고전 중에서 SF요소를 두루 갖춘 것은 시대를 앞서갔던 조선왕조의 풍운아 교산(蛟山) 허균(許筠)이 지은 한글소설 『홍길동전』이다.

 
국문학사에 길이 빛나는 허균의 『홍길동전』은 몇 가지 기록과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점이다. 둘째, 조선왕조의 병폐의 하나였던 서얼문제를 소재로 삼은 최초의 사회소설이며 셋째, 주인공 홍길동이 의적이라는 점에서 반골소설이다. 넷째, 홍길동이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는 실존인물이라는 점에서 실명소설이며 다섯째, 주인공을 전설적인 민중의 영웅으로 만든 영웅소설로 한국에서는 보기드믄 소재다. 여섯째, 홍길동이 갖가지 도술을 부리는 SF소설인데 그는 축지법은 물론 자신을 여러 명으로 만드는 복제술도 갖고 있다.

‘홍길동의 정체는 전임 판서 홍 아무개의 서자요 병조좌랑 홍인형의 배다른 아우라는 사실이 밝혀져 그들은 의금부에 갇히게 된다. 인형은 임금에게 길동을 잡겠다는 약조를 하고 경상감사가 되어 곳곳에 방을 붙인 결과 마침내 길동으로 하여금 자수토록 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노릇인가. 그런 식으로 각도에서 잡혀 올라온 홍길동이 여덟 명이나 되는 것이다. (중략) 말을 마치자 여덟 길동이 동시에 넘어지는데 자세히 보니 모두 짚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임금이 더욱 놀라 진짜 길동을 잡으라고 다시 팔도에 명령을 내렸다. 길동은 그렇게 조정을 우롱하고 사라졌다가 ‘병조판서를 한 번 시켜주면 조선 땅을 떠나겠다는 소원을 들어주자 마침내 조선을 떠나 중국 남경을 거쳐 남해 율도국(聿島國)으로 들어가 5만 군사로 그곳을 점령하고 왕위에 올랐다.’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것과는 다소 다른 내용이지만 홍길동은 조선에서 3000리 거리로 유배당하는데 근래 학자들은 홍길동이 도착한 율도국을 일본의 오키나와로 추정한다. 오키나와에는 고려시대의 유적이 있는데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고몽연합군에 패배한 후 일부가 오키나와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하며 조선에서 홍길동이 사라진 시기와 오키나와에서 홍길동집단으로 추정되는 일단이 입도한 시기가 유사하다. 여하튼 소설로 보면 이상국 율도국의 임금이 된 홍길동은 30년 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홀연히 병을 얻어 70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홍길동전』의 작가인 허균이나 『옹고집전』의 작가가 스티븐 스필버그보다 훨씬 전에 복제인간을 만들었다는 아이디어를 창안했다는 데 찬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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