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42] 주역과 사주
[삼강만평(三江漫評)-42] 주역과 사주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4.03.14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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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간적인 존재와의 접촉을 통하여 미지의 과거, 현재 및 미래에 관한 지식을 ‘얻는’ 과정을 ‘점친다’고 한다. 경기를 하기 전에 동전을 던져 점친다고 하자. 이 때 맞고 틀리는 확률은 1/2이다. 만약 주사위를 던져 점치면 확률이 1/6이 된다.

중국 고서 주역은 6경 중 하나지만, 사실은 점치는 책에 불과하다. 효(爻: 산가지) 12개 중에서 6개씩을 뽑으면 64괘가 된다. 맞고 틀리는 확률이 1/64이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한 결과가 수없이 나타나므로 사람을 우롱하기 쉬운 도구로 될 수 있다. 즉 주역은 사람을 우롱하기 편리한 점치는 책이다.

동전, 입방체나 산가지가 초인간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그것을 통해 미지의 세상을 탐지한다는 것은 너무나 황당하다. 그러나 몽매무지한 고대인은 동전, 입방체나 산가지에 초인간적인 능력을 부여했으며 이로 하여 수술라는 ‘학문’이 생겼다. 주역은 수술을 집대성한 ‘교과서’이다.

사실 옛날 중국인들도 주역이나 기타 수단의 점을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니다. 주무왕이 상주왕을 진공할 때 친 점괘에 ‘불길’이라 나타났다. 그러나 강태공이 우기고 진격한 결과 대승리를 거두었다. 한무제가 흉노를 진공할 때 점에 ‘길’로, ‘흉노를 크게 패배시킬 수 있으니 시간을 놓치지 말라’고 했지만 사실은 한나라 측이 큰 패배를 당했다.

한무제의 결혼 날에 관해 점친 결과 오행가는 ‘괜찮다’, 감여가는 ‘안 된다’, 건제가는 ‘불길’, 총진가는 ‘대흉’, 역가는 ‘소흉’, 천인가는 ‘소길’, 태일가는 ‘대길’이라 했다. 결혼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한무제는 오행가의 말만 듣고 결혼을 강행했다.

수술 중 천문학과 관계되는 성점술, 기상학과 관계되는 점운기술, 지리학과 관계되는 상지술, 맥진·설진·망진과 관계되는 상인술 등에는 다소 쓸 만한 것이 있을지 몰라도 괘에 의해 점을 쳐 미지를 탐지한다는, 말하자면 주역 자체에는 추호의 가치가 없다.

주역에 숫자의 소장(消長)에 관한 것이 많은데 여기에 철학적 의미가 좀 내포돼 있다. 주역은 많이는 운문이며 압운(몇 구절의 마지막 자의 중성과 종성이 같음) 한자의 고대 독음을 고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즉 주역에 문화적 가치가 있지만 점치는 의미상의 가치는 없다.

과학과 미신은 쌍둥이처럼 동시에 원시사회의 모체에 강탄했으며 인류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주역을 연구하는 목적은 인류가 몽매시대에 어떻게 미신을 믿었는가를 파헤치며 인류사상발달사를 정리하는 데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주역을 국수로 여기고 주역을 미지의 영역을 탐지하는 도구, 둘도 없는 보배로 여기고 있다.

거북이 뼈나 짐승의 견갑골에 구멍을 뚫고 쑥을 태워 점을 치는 점구술은 한나라 때 이미 종적을 감추었다. 중공 정권 수립 후 다른 점술들도 간신히 언명해 나가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법륜공 사건 후부터는 이런 것들을 모조리 현대 미신으로 몰아붙이고 된서리로 작살내고 있다. 인류문화의 찌꺼기를 없애고 정신오염을 제거하는 올바른 시책이라고 본다.

필자가 한국에 갈 때마다 사주에 관한 책을 사다 달라는 부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서울 교보문고에 사주에 관한 책이 수없이 많으며 심지어 적지 않은 책들은 철학박사 등 학자가 집필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사주를 인정하는 것은 주역을 답습한 인류 문화의 찌꺼기를 신봉한다는 뜻이다. 만약 한 사람이 태어날 때 부산과 서울의 거리가 480킬로미터 이상이면 출세할 수 있고 480킬로미터 이하면 출세할 수 없다고 한다면 누구나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사주(출생 연, 월, 일, 시)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태어날 때 우주, 태양, 지구 및 달간의 위치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인데 얼마나 황당한가?

조선조 어느 임금이 사주를 각별히 선호했는데 어느 대신이 이를 극구 반대해 나섰다. 그 임금과 서울의 어느 기생의 사주가 완전히 같은데 한 사람은 나라의 임금이 됐고 다른 한 사람은 기생이 됐는데 그래도 사주를 믿는가 하며 설득했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를 몇 천 년 후퇴시켜도 인정받지 못할 찌꺼기들이 지금, 21세기 과학사회의 한국에서 범람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다시 머리를 들고 있으니 한탄할 일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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