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조각가 1세대로서 어느덧 여든을 넘어선 그는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각 작업에 임한다”고 강조했다. 남미의 태양과 바람이 그의 작품에 한땀한땀 새겨져 있기 때문일까? 전시장 곳곳에 놓여있는 그의 조각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고대 마야문명의 신비스런 조각상을 대면하는 듯하다.
아르헨티나 동포 미술가 김윤신 작가가 2007년 이후 8년 만에 모국에서 전시회 <영혼의 노래·김윤신 화업 60년>을 6월11일부터 7월8일까지 서울 서초동 한원미술관에서 열고 있다. 지난 200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관한 ‘김윤신 미술관(관장 김란)’ 운영에 주력하느라 모국에서 전시회를 마련하기가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오프닝 행사가 열린 6월11일 오후 전시장에서 만난 김윤신 작가는 “좀 더 좋은 작품,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고, 결국 70여점의 작품들을 비행기로 싣고 왔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미술계 동지들과 후배들을 부둥켜안으며 안부를 묻고, 오프닝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방송사 취재진과 인터뷰 하는 등 몹시 분주해 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이국적 풍취가 느껴지는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작품 ‘내 영혼의 노래’들도 만날 수 있다. 김 작가는 “나의 작품은 영원한 삶의 ‘나눔(合과 分)’을 주제로 하고 있다”며, “나눔의 본질은 사랑이며 그 깊은 내면에는 원초적 생명력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것을 향한 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영혼의 노래, 그 영혼의 소리는 다양한 색상의 파장으로 선과 면을 이뤄 사랑과 나눔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한국 고유의 민간신앙과 가톨릭 메시아사상의 메시지가 묘하게 녹아있었다. 그는 “초기 조각작업에서는 인간본연의 마음을 반영코자 민간신앙에서 작품의 뿌리를 찾고자 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매일, 매순간 절대자와 대화를 나누듯 기도 속에서 시간과 유한성을 초월하고자 한다”며, “작품자체 뿐만 아니라 주위의 자연과 전체로 결합하는 총체적 합(合)과 분(分), ‘합이합일·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이란 연작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원산 출신인 김윤신 작가는 홍익대 조소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1974년 ‘한국여류조각가협회’를 발족시킨 주역으로, 이듬해 한국미술청년작가회를 출범시키며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상명대 조소학과 교수를 맡으며 중견 작가로 이름을 떨치던 그가 갑자기 아르헨티나로 떠난 이유는 다름 아닌 ‘나무’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조각재료들로 다양한 돌과 나무들에 매료된 것. 보다 넓고 새로운 것을 동경해 왔던 그에게는 창작욕을 충족시켜 줄 풍부한 재료들과 끝없는 팜파의 평원이 마치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로 보였고,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머물게 됐다고 한다.
김윤신 작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작업하는 ‘영원한 현역작가’로 남고 싶다”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다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젊은 남성이 운반하기에도 힘든 아르헨티나의 육중한 목재를 지금도 손수 옮기고 다양한 공구를 이용해 이를 조각하는 그에게서 세월과 나이의 무게를 찾기는 어려웠다. 신을 향한 구도의 길, 예술의 길로 여전히 맹렬하게 달려가는 그는 영원한 청년 작가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