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엔나 '단군태권도회' 창시한 노르베르트 모쉬 박사
[인터뷰] 비엔나 '단군태권도회' 창시한 노르베르트 모쉬 박사
  • 김운하<본지 해외편집위원, 오스트리아 거주>
  • 승인 2015.06.2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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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관’ 재개관하고 유럽대회 개최키로...부인은 한국인 강유송 의학박사
▲ 모쉬박사와 수련원들

40년 전에 한국태권도를 비엔나에 들여와서 최초의 태권도장 ‘무도관(武道館, MUDOKAN)을 설립, 37년간 운영해 온 한국태권도 8단, 오스트리아 비엔나국립대학 문학박사 노베르트 모쉬(Norbert Mosch) 전 오스트리아 태권도연맹 회장이 비엔나 제 13구 히칭거 카이(Hietzinger Kai) 185에 자체건물을 마련하고, 전 유럽 한국태권도 대회를 준비 중이다. 지난 5월 1일 도장 재개관 축하회를 무술시범대회와 함께 성대하게 가진 노르베르트 모쉬 회장을 만났다.

“1975년 서울에서 한국태권도 9단 이광배 그랜드 마스터를 비엔나에 초청하였어요. 나는 이광배 그랜드 마스터를 모시고 비엔나에 ‘단군 태권도회’를 창립하였지요. 이광배 대사범은 저를 비롯하여 오스트리아 젊은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그 때는 동양무술로 유도, 카라테, 합기도뿐이었는데, 태권도에 매료되었어요. 저는 1978년 비엔나 제 7구역 자이덴가세(Seidengasse)27에 최초의 한국태권도 도장겸 학교인 ‘무도관’을 설립, 오늘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무술을 위한 인생을 살아 온 셈이지요.” 미남형 장군체격의 모쉬회장은 한국태권도와의 인연을 긴 소설을 읽듯 들려 주었다.

그를 처음 보면서 궁금했던 것은 한 평생을 무술에 종사해온 무술인이 박사칭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동안 합스부르크 제국을 경영했던 오스트리아 사회가 아직도 계급의식이 강하고 명예를 엄격하게 존중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겸손하고 입이 무거운 모쉬회장은 그동안 이에 대해 언급이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아, 12세 때에 일본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8년간 열심히 배웠지요. 일본의 각종 무술 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 등에 대하여도 큰 매력을 가지게 되었어요. 20세 때 비엔나국립대학에 입학, ‘일본학’(Japanese Studies)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연구가 더 흥미로워져서 석사, 박사학위까지 받게 되었어요.”

모쉬회장의 이러한 학문적 배경은 무도관운영에서 한국태권도 보급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각종 무술소개와 아시아문화, 종교, 무용, 서예의 소개 등으로 그 범위와 활동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도장운영을 체육학교 운영 식으로 하면서 도서관도 마련, 600여권의 무술서적과 100여권의 무술잡지들을 비치했다고 한다.

아시아무술소개는 사범들을 초청하여 특별 교육반, 워크샾 운영등을 통한 것이었다. 중국 소림사 쿵푸, 베이징 태극권(타이치)와 타이치 검도, 한국합기도, 홍콩 빙춘(Ving Tsun), 베이징 우슈(Wushu), 런던 에스크리마(Escrima)를 소개했다. 브라질 합기도는 2000년도 세계 참피언 파브리지오 웨르둠(Fabrizio Werdum)을 초청하여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먼저 와 있던 이광배사범을 비롯 김순철 사범(현재 시카고 거주, 8단), 표낙선 사범(현재 베를린 거주 6단)등을 초청, 학생들을 가르쳤다. 독일인 필립 바이어와 중국인 왕 첸샤오 사범들도 초창하여 가르쳤다.

“나 자신도 무도관을 운영하면서 태권도를 열심히 수련하였어요. 한국을 수시로 방문하면서 한국의 승단대회에 나섰어요. 1985년에 4단, 1989년에 5단, 1992년 6단, 1998년 7단, 2007년 8단이 되었어요.”

모쉬박사는 이러한 자기수련을 계속하면서 비엔나와 오스트리아 여러 곳에 태권도장을 차리면서 제자들의 태권도장 설립을 도왔다. 그는 니더외스트라이히 주도 세인트 푈텐과 아이젠슈타트, 귓싱 등 세곳에 자신의 태권도장 지소를 설립했다. 제자들의 도장에는 사범을 파견하여 수련체계를 세워주고 교사양성을 도왔다. 그의 영향력의 증대는 국가와 세계로 확대되었다.

“오스트리아 태권도연맹이 설립되었어요. 나는 1995년부터 2001년 까지 오스트리아 태권도연맹회장을 지냈어요. 내가 창설한 비엔나태권도연맹은 32년간 회장으로 일했고, 지금은 명예 회장으로 지도하고 있어요. 오스트리아 태권도연맹은 1997년 가을부터 2001년 5월 까지 나의 무도관을 오스트리아아 태권도연맹의 공식태권도수련장 2개 중 하나로 지정하였어요. 여기서 오스트리아 국가대표들과 톱 클라스 사범들이 특수훈련을 받았지요.”

블랙벨트 8단의 모쉬박사는 유럽태권도연맹과 세계태권도연맹의 여러 고위직책까지 지내고 지금도 명예직을 가지고 있는 그의 경력을 토로했다. 무도관에서는 봉술, 호신술, 여성자기방어를 위한 레슬링, 눈차쿠(Nunchaku), 일본 쇼토칸 카라테, 재즈댄스 반 까지 조직하여 가르쳤다는 모쉬박사는 순조로운 발전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시내 건물에 위치한 도장에서 울려 나오는 고성 등으로 주민들의 소음불평이 일어나 도장을 몇 번 옮겨야 했던 어려움과 집세의 상승으로 전세도장을 포기해야 했다. 2005년도 부터는 비엔나 시내의 각 공립학교와 정부기관, 피트니스 센터 등과 협업구조를 만들어 현지 연습장, 태권도 캠프 등을 차려 태권도를 보급해 오기도 했다.

몇 년동안 자체 도장 마련을 준비한 끝에 교통편이 좋은 비엔나 히칭지역에 자체공간을 매입, 한국에서 새로운 태권도 훈련기계 등을 들여 오는 보수개장공사 끝에, 지난 5월 1일 무도관 재개업식(?)같은 잔치를 벌였다. 여기에는 모쉬박사의 부인이며, 재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 부회장을 두 번, 평통 위원까지 지낸 강유송 의학박사의 개인병원도 함께 이전하여 자리 잡았다.

강유송박사는 전북 만경여상을 졸업, 1971년 서독간호보조사로 유럽에 나와 성공한 전설적 여인의 한 사람이다. 독일에 동양무술을 배우려고 나왔던 청년 모쉬를 여행 중에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어 1975년 비엔나로 왔다. 폴리클리닉에 근무하면서 야간 김나지움을 5년 만에 졸업, 비엔나국립의과대학에 진학해 1988년 의학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카이저린 엘리자베트 슈피탈 병원 외과응급실 담당으로 20여년간 일하다가 은퇴하여 개인병원을 차렸다.

강박사는 별도로 30여 년 간 한국수지침을 연구, 은퇴 후 수지침 전문병원을 개업 중이다. 한편으론 오스트리아 보건사회부 장관 동양의학고문으로 있으면서 오스트리아 보건의료정책의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1977년 노르베르트 모쉬박사는 비엔나로 초청한 강유송박사와 결혼, 슬하에 장녀 소라(Sora), 아들 빅토르(Viktor)를 두었고, 손자 한 명을 두었다. 부인, 딸, 아들, 가족 모두가 블랙벨트 유단자들이다.

“이제 자기 집에 자기도장을 가지게 되어, 한국태권도를 더욱 활발하고 댜양하게 펼처나갈 것입니다. 그 첫 행사로 오는 8월에 유럽태권도 대회를 이곳에서 열기로 하였습니다.” 현재 오스트리아 태권도 연맹 명예회장이기도 한 모쉬박사의 꿈은 벌써 유럽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다음은 한국과 세계이리라.

▲ 모쉬 박사
▲ 부인도 유단자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 무도관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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