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시(詩)로 승화해 감동 준 파우스트의 욕망과 고뇌
[논단]시(詩)로 승화해 감동 준 파우스트의 욕망과 고뇌
  • 탁계석 논설주간
  • 승인 2011.03.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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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파우스트’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품을 만드는 입장이라면 몰라도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한 파우스트 오페라를 보면 곧 오해였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모호한 스토리로 보고 나서 남는 게 뭘까 싶은 안방 드라마 시청자라면 충분히 오페라가 이렇게 가슴 두근두근하는 감동을 주는지, 왜 내가 여태껏 이런 걸 외면하고 살아왔을까 후회가 들지 않을까 싶었다.

개막 공연이 열린 16일 저녁(18,19,20일까지) 오페라하우스 로비는 관객들로 북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오페라 ‘파우스트’는 놓칠 수 없는 관전 포인트가 몇 가지가 있다.

우선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주역으로 한국 성악을 빛낸 ‘테너 김우경’의 출연이다. 스포츠와 비교하자면 박세리의 LPGA우승에 비견되는 쾌거다. 이 멋진 금의환향의 순간을 놓치면 그렇지 않은가. 두 번째는 새뮤얼 래미(Samuel Ramey)다. 일흔 가까운 고령임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운 역사적 시간이다.

評者(평자)는 10년 전에 이태리 스칼라극장에서 그의 독창회를 보았는데 앵콜로 무려 30분을 하는 열광적인 장면이 지금도 고스란히 기억에 남았기에 각별했다. 여기에 환상의 커플이 된 마그리트 역의 불가리두(Alexia Voulgaridou)다. 이 들이 한 치의 양보없이 펼친 연기와 가창은 두고 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멋진 것은 또 있다. 바로 연출이다. 그간 국내 파우스트 무대를 거의 다 보아왔지만 이번 작품처럼 고품격의 세련된 詩로 승화한 작품은 처음이다. 인간의 욕망과 몰락, 고뇌와 구원에서 일체의 과장성을 버렸으니 오페라 파우스트가 관객뿐만 아니라 국내 제작자들의 눈을 한 차원 높였다고 본다.

2년 전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파우스트를 보았을 때 우리의 자랑인 연광철이 메피스토펠레스를 해서 반가웠는데 2막에서 포도주 술통을 밀고 나오는 장면이 있었지만 이번 오페라는 너무 엄격해서 파우스트 서재에 책장하나. 파티 장면에 술병하나 나딩굴지 않게 만들었으니 가혹하리만치 ‘절제의 美’가 뭔가를 보여 준 것이다.

 

파우스트 김우경이 그 유명한 아리아 ‘정결한 집’을 불렀을 때 품격의 톤칼라와 전혀 힘이 가세하지 않은 발성의 미감(美感)의 호소력은 ‘나도 저런 청순한 사랑을 꿈꾸던 때가 있었지’, 관객을 사춘기 시절로 되돌려 놓는 듯싶었다.

파우스트가 책을 던지고 내 인생 모든 걸 포기해서라도 사랑하고 싶은 처녀, 마그리트는 왜 또 그리도 순결하고 예쁘던지. 또 한 사람의 사랑의 삼각관계(시에벨- 이동규)가 준 보석상자를 열고 휘둥그레진 눈동자를 보았는가. 그 화려한 아리아 선율의 흥분과 흔들리는 여자의 마음을 읽었는가.

그럴수록 슬픈 것은 더욱 빛났다. 물에 젖은 비올라의 음성처럼 빼앗긴 이동규의 사랑은 그대로 가슴 저미는 탄식, 울음이었다

3막은 내면 깊숙이 감추어진 사랑과 욕망, 간교함이 벌이는 각축전으로 이 오페라의 백미다. 아니 누구라도 유혹되지 않을 수 없으리만치 간교한 메피스토펠레스의 굵고 깊은 음성은 이중성의 배음처럼 들렸다.

세익스피어는 스토리만 보는 관객을 낮은 관객이라 했다. 그렇다. 알면 더 많이 보이는 게 오페라의 묘미다. 무대 전편은 마치 아파트 공사장의 철골 구조같이 언뜻 보면 삭막해 보인다. 그게 누구의 머릿속을 형상화했다면 파우스트, 마그리트, 메피스토펠레스의 머릿속 고뇌였을까 .아니 어쩌면 부질없는 욕망으로 가득찬 채 허둥대는 우리들일까.

마그리트의 정원이 어느새 십자가 하나 없이 조명하나로 삐걱거리는 마루바닥처럼 오래된 성당을 그려낸 기도장면에서 이소영 연출과 무대 디자인, 조명은 무릎을 치리만치 탁월했다. 그뿐인가, 탐욕의 영육이 고통 받는 장면에서 빨간 불빛 조명을 커텐 처럼 감춘 것은 아는 사람만 알라는 퀴즈였을까?

오타비오 마리노(Ottavio Marino)의 코리안심포니 음악도 섬세하고 유려하면서 가수와의 호흡이 좋았고, 나라합창단이 다시 멋진 합창을 들려주어 그간의 불협화를 잠재웠다.

일체의 구체적인 장치의 물증을 없애고 전체를 모노톤 칼라로 정하고 집중력을 높여 관객의 상상력을 풀동원시킨 이 작품은 그래서 더 여운이 남는다.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곳에 예술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종교적인 죄와 벌의 구원을 말하지는 않는다. 오페라엔 중,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듣고 불렀던 ‘병사의 합창’도 있지 않던가.

관객들의 그칠 줄 모르는 커튼콜에는 우리가 더 늦기전에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하루속히 한강 노들섬 오페라를 완공시켜 한국이 세계 관광객을 불러 올 수 있는 ‘오페라 메카’의 꿈을 이뤄야 한다는 것. 우리의 자랑스러운 젊은 성악가들이 한창 불타고 있는 이 성장 동력을 꺼트리면 역사에 오페라를 후퇴시켰다는 오명을 남기게 된다. 이들이 영광스럽게 노래할 수 있도록 마당을 만들어 주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서울시 의회 상임위를 통과한 오페라 노들섬 프로젝트가 전체회의에서 부결되어 수면 아래로 깔아 앉았다는 것. 지난해 미국 LA에서 바그너 축제에 400억 예산의 축제에 자금이 부족하자 이곳 LA 시장이 지불보증을 서 주었고 이를 안 시민들이 자존심이 상한다며 다투어 기금을 내어 축제를 성공시킨 사례가 너무나 부럽다.

무슨 이유에서 노들섬에 성난 방망이를 내려치게 했을까. 이 분들 중 누구라도 파우스트를 보기나 할까. 그러지 않고 고작 정치적 이유에서 결정하고 뒤풀이에서 '우리가 이겼다!'며 ‘위하여~’를 외친다면 이 승리는 분명 시민의 문화 향수권을 상당히 침해한 슬픈 합창이다. 자기들만의 위하여~니까.

할 수 만 있다면, 메피스토펠레스의 역할이 하나 더 있다. 노들섬 오페라하우스를 수면(水面)아래로 묻어버린 저 비문화적이고, 정략적인 분들의 잠자리에 매일 밤 나타나 그 영혼들을 문화로 선하게 인도해 줄 수는 없을까.

국립오페라단의 파우스트는 우리가 지닌 자원과 외국의 기술을 잘 결합하면 오페라로 국가브랜드를 높여 온 이탈리아, 비엔나, 프랑스, 독일, 미국 못지않게 우리가 오페라의 메카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가능성과 희망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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