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우의 문학 산책] 역설의 문학, 최명희의 ‘혼불’··· 1942년 부서방을 위하여
[장인우의 문학 산책] 역설의 문학, 최명희의 ‘혼불’··· 1942년 부서방을 위하여
  • 장인우<순천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8.05.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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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설 『혼불』 (도서출판 매안. 2014. 제2판 제19쇄) 제3부 제1권에 나온 아랫몰 부서방에 얽힌 글을 『흥보가』 완창본 사설을 토대로 하여 재창작한 내용입니다. 부서방의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은 봉건사회의 신분제도와 일제강점이라는 한국 사회의 질곡, 그 역사 속에 살아가는 민중이 처한 시대고(時代苦)라 할 수 있습니다. 

1942년 민중의 뼈아픈 가난, 그 고통을 조선후기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던 시대, 민중들의 한을 녹여내 주었던 흥보가 청암부인 초상마당에서 차려 준 음식에 손도 대지 못하고 울부짖는 부서방의 가련함을 위로해 준다는 내용으로 재창작했습니다. 청암부인의 삶이 당시 매안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보며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필자 주)

[진양조]
두 손 합장하여 무릎을 꿇고
“비나니다 비나니다. 형님 전의 비나니다. 살려주오 살려주오. 불쌍한 동생을 살려주오. 그저께 하루를 굶은 처자가 어제 점도록 그저 있고, 어저께 하루를 문드러미 굶은 처자가 오늘 아침을 그저 있사오니,
인명이 재천이라 설마한들 죽사리까마는 여러 끼니를 굶사오면 하릴없이 죽게 되니 형님 덕분에 살거지다. 벼가 되거든 한 섬만 주시고 쌀이 되거든 닷말만 주시고 돈이 되거든 닷냥만 주옵시고 그도저도 정 주기 싫거든 뉘명기나 싸래기나 양단간의 주옵시면 죽게된 자식을 살리겄소. 과연 내가 원통하오. 분하여서 못살겄소. 천석꾼 형님을 두고 굶어 죽기가 원통합니다. 제발 덕분에 살려주오.”(흥보가- 흥보 매 맞는 대목) 중에서

이렇듯이 애원하며 빌고, 애통하게 빌던 지난 먼 옛날 일들이 남원골 매안 아랫몰에 산다는 부서방 이야기를 들으니, 바로 엊그제 일인 양 울먹울먹 썽클거리는 것이 가슴 언저리가 뜨끔뜨끔허고, 목구멍에 가래가 한 톳 치솟는 것마냥 까실까실 훗훗허고, 콧마루가 찌르르 맵게 울리며 눈자시가 뜻뜻해지네그려.

그래도 내가 살던 시절은 그나마도 떳떳한 세상이었네. 그나마도 평화롭던 시절이었네그려.

내 부모님 살아계실 적에는 동방이 군자지국이요, 예의지방이라 십실지읍에 지나지 않을 내 고장에도 충신이 있었고, 효자, 열녀가 다분히 있었으니, 형제간에 윤기인들 없었겠는가. 니 것 내 것 다툼이 없이 평생을 호의호식 먹고 입고 쓰고 남고, 쓰고 먹고 입고 남어 세상 분별조차 두지 않고 살았네. 

그런데 부모님 돌아가신 후, 어느 하루 추적추적 비 내리던 날 형님께서 와가리 성음을 내어 나가라 내쫒으시니 누구 명이라고 어기겠는가. 낙목한천 엄동설한에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 주려죽든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일러줌도 없이 쫓겨나니 울며불며 매달려 봐도 소용없는 일이제.

가진 것 아무 것도 없이 처자식 이끌고 막막한 중에 산중으로 가자하니 전라도라 지리산이요, 경상도라 태백산이니 생물이 없어 살 수가 없고, 도방으로 가자하니 일원산 강경 삼포주 사법성이라 비린내 찌우어 살 수 없고, 서울 가 살자하니 경우 몰라 따구만 맞고, 충청도로 가자 하니 양반들이 억시어서 살 수 없으니 살 수 없으니,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렁저렁 오다가다 성현동 복덕촌에 머물게 되었으니,

그래도 내가 살던 시절은 그나마 떳떳한 세상이었네, 그나마도 평화롭던 시절이었네. 

철모르는 자식들은 떡 사 달라, 밥 달라, 엿 사 달라 조르고, 큰자식은 장가보내 달라 조르니 어쩔 수 있나. 하루는 환자 맡은 호방한테 환자 섬이나 얻어 굶어 죽어가는 자식들을 구하려 관가에 가려는데, 체면에 의관은 갖추어야지 싶어 

“여보 마누라, 내 갓 좀 내오오.”, “갓은 어디에다 두었소?” 
“굴뚝 속에 두었재.”, “갓은 어째서 굴뚝 속에 두었소?”
“신묘년 조대비 국상시에 쓰던 백립 갓양이 단단하다 하여 돈은 없어 칠은 못허고 끄스름에 끄실려 쓸라고 굴뚝 속에 두었재.” 
“내 도복도 좀 내오오.”, “도복은 어데다 두었소?”, “장 안에 들었재.”
“우리 집에 무슨 장이 있단 말이요?”, “아 이 사람이, 닭구장은 장 아닌가.”
이렇게 치장을 채리고 들어가는디 별안간 걱정이 생기는거여. 내가 아무리 궁수남아가 되었을망정 반남박가 양반인디, 호방을 보고 허게를 허나, 존대를 허나, 애매하지. 별 수 있어. 재주없지. 말은 허되 끝은 짓지 말고 웃음으로 닦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지.
“박생원 들어오시요?”, “호방 뵌 지 오래군. 하하하하.”
“어째 오셨소?”, “양도가 부족해서, 환자 한 섬만 주시면 가을에는 착실히 갚을 테니, 호방 생각은 어떨는지? 하하하하.”
그날 나는 그 고을 좌수 대신 다음날 곤장 열 대를 맞고 한 대에 석 냥씩 서른 냥 꼽아논 돈, 마삯까지 닷 냥이 있다는데, 곤장 열 대 매품을 팔아 보라는데. 흔쾌히 대답했지. 
내 손에, 글쎄 흥보놈 손에, 말 타겠는가. 돈 닷 냥을 받어 나왔지. 

[중머리]
“얼씨구나 좋구나. 돈 봐라 돈돈 봐라 돈 돈 돈 돈 돈 돈 봐라 돈. 이 돈을 눈에 대고 보면 삼강오륜이 다 보이고 조금 있다 지화를 손에 쥐고 보면 삼강오륜이 끊어져도 보이난건 돈밖에 또 있느냐. 돈 돈 돈보라 돈 (중략) 여보게 마누라 집안에 어른이 어딜 갔다 들어오면 우루루루 쫒아 나와서 영접하는 게 도리옳제 계집이 사람아 당돌히 앉아서 좌이부동이 웬말인가 에라 이 몹쓸사람”

내가 매품을 팔았을까. 자네도 알겄지만 그것도 돈 나오는 기맥힌 구멍이라, 마누라가 밤새 가지마오 가지마오 울고불고 생 난리를 꾸미더니만, 글쎄 옆집 꾀수아비란 놈이 박흥보 대신으로 맞고선 돈 삼십 냥을 가져가버렸네.   

[중중머리]
“흥보 마누라 좋아라 흥보 마누라 좋아라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영감이 엊그저께 병영길을 떠날 때 부디 매를 맞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시라 하나님전에 빌었더니 매 아니 맞고 돌아오시니 어찌아니 즐거운가. 얼씨구나 절씨구 옷을 헐벗어도 나는 좋고 굶어 죽어도 나는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어찌 좋았는지 우리 부부 그날은 절굿대 춤을 한 번 추었지.

“여보게 부서바앙, 어서 술 한 잔 쭈욱 들이키고 상위에 놓인 음식들도 먹어보소. 안서방네 인심에 손끝 야문 거야 동네사람 다 알지 않은가.” “예? 예에…….” 
“청암 부인 향기가 이 마당에 가득하지 않은가. 이 마당에 있는 누구도 자네를 도둑놈이라 하지 않네. 비웃고 조롱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 마시고 먹게나. 이른 아침 마당만 쓸어도 곡식 한 말씩을 넉넉히 담아 주시던 생전의 어른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조차 넉넉히 한 상을 주시잖은가. 괜찮네. 그러고 언제라도 위로가 필요하면 말하시게나. 제비노정기로 한판 놀아 보세나”

[필자소개] 
전라북도 정읍 태인생, 순천시 거주
순천문인협회, 팔마문학회 정회원,
전남교육청 학교폭력방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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