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까치발 내려놓기
[대림칼럼] 까치발 내려놓기
  • 최옥란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 승인 2022.05.09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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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가 미켈란젤로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다비드상을 빼놓을 수 없다. 미켈란젤로는 어느 날 시의회로부터 다비드상을 조각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됐고 5.49m의 거대한 다비드상을 완성했다. 그런데 사실 이 조각상을 의뢰받은 사람은 미켈란젤로가 처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에게 의뢰가 들어오기 40년 전부터 수많은 조각가가 다비드상 제작 의뢰를 받았지만 이를 위해 준비한 거대한 대리석의 결이 좋지 않아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모두 거절을 한 것이었다.

몇몇 조각가들은 용기를 내어 시작해봤지만 오히려 대리석만 망가뜨렸을 뿐 완성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주인을 찾지 못한 거대한 대리석은 40년간 방치되며 구석에서 먼지만 쌓였던 것이었다. 어느 쪽은 푸석푸석하고 어느 쪽은 단단해서 너무 어려웠던 터라 손을 대고 대다가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공화정이 수립되며 독립을 상징하는 다비드상의 제작을 다시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조각가들은 이를 거부했고 돌고 돌아 당시 26살의 젊은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의뢰가 왔다.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미켈란젤로가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놓자 사람들은 “당신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조각을 했기에 남들이 모두 포기한 대리석으로 이렇게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때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돌 속에 갇혀 꼼짝 못 하는 다비드만 보고 그를 가로막고 있는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을 뿐이다.”

미켈란젤로는 좋은 돌, 나쁜 돌을 가리기보다 돌 자체가 갖고 있는 완전함과 원만함을 인정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위대한 조각이라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그 속에 예술의 눈으로 보았던 다비드를 이끌어 낸 그런 결과였던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숨어있는 그와 같은 진실한 것, 소중한 것, 이것이 우리의 마음속 탐심들과 여러 수식 때문에 가로막혀 있을 뿐 모두의 존재 자체가 원만함 그 자체이다.

40은 불혹의 나이라고 했는데 불혹은커녕 그동안 무시로 올라오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휩싸여 산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원인이 결국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밖으로 고개를 돌려 까치발을 들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이상화된 자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이상에 자신을 맞추고 동일시하려고 했다. 까치발을 더 높이려고 애썼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 봤자 150센티라는 내 실제 키가 커지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좀 더 낫게 보이려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잘 보이기 위해서 실제 모습을 가리고, 까치발을 들며 애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자신이 그러고 있는지도 몰랐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까치발을 인식하고 내려놓으니 세상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나’로서 살아야 한다. 미켈란젤로가 돌 속에 갇혀 있는 다비드를 보았다는 것은 돌 자체가 이미 원만한 다비드를 품고 있었다는 말이다.

미켈란젤로가 했던 예술은 다만 자신이 원만한지도 모르고 숨어있던 다비드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던 작업이었다. 만약 미켈란젤로가 돌 속에 가려져 있던 다비드를 보아내는 혜안(慧眼)이 열리지 않은 채 오로지 예술적 테크닉을 발휘해 다비드를 만들어내려고만 했더라면 오늘날까지 세계인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안의 실제 나’의 모습을 부정하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우리는 사는 게 힘겨워질 수밖에 없다. 내면의 보석인 다비드에 집중하기보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다 보면 까치발을 더 높이 드는 데에만 에너지를 쓰게 된다. 실제 내 모습이 어떤지는 까마득히 잊은 채 말이다.

미켈란젤로가 본 것은 결이 나쁜 대리석이 아니라 대리석이 품고 있는 원만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조각상은 수백 번 수천 번의 망치질을 거친 후에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우리도 저마다 내면에 값진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보물을 두드리지 않으면 그저 모난 돌일 뿐이기 때문이다. 두드림과 담금질을 통해 무한한 생명력이 부여된다. 하지만 두드림과 담금질을 하기 전에 ‘원석’이 가지고 있는 완전함을 인정하고 착수하자.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완전한 존재거늘, 원만한 원석이 다시 더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 여러 가지 고통을 감내해가며 모난 부분을 잘라낼 뿐이다.

사회의 편견이나 대다수 사람의 의견에 맞추기 급급하여, 혹은 나만의 기준이 옳다고 생각해 남의 개성이나 가치관을 무시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모든 삼라만상은 완전함 그 자체이다.

차츰 까치발을 내려놓으니 조금씩 ‘내 발자국’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보는 그 모습 그대로, 세상이 나를 보아주기 시작했다. 그 차이가 없어지니 불안해할 일도 화날 일도 줄어들었다. 여러분들은 어떤 까치발을 들고 살고 있는가?

필자소개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문학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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