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편견을 부수는 법
[대림칼럼] 편견을 부수는 법
  • 곽미란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 승인 2022.08.03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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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뚱뚱하고 키 큰 남자 셋이 우산을 접으며 가게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나는 활기찬 목소리로 맞이했다. 옷차림으로 보아 우리 가게 부근에서 출근하는 회사원들 같았다. 그들의 덩치를 보며 적어도 1인 15,000원에서 17,000원 매출은 나올 것이라고 나는 속구구를 했다. 그동안 손님을 상대하며 쌓은 노하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셋은 초등학생이 먹을만한 양의 마라탕을 주문했고 각자 공기밥 하나씩 주문했다. 세 사람 점심값은 다 합쳐도 2만 원이 넘지 않았다.

“아니, 뭐야? 조만큼 먹고 배가 부르기나 할까?”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서자 나는 볼 부은 소리를 했다.

“그러게, 덩칫값을 해야지.” 동생도 한마디 했다. “혹시 다이어트 중인가?”

나와 동생이 기분이 언짢았던 건 그들이 우리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상을 올려줄 거라 좋아라 했던 우리의 예상을 완전 깨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와 동생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편견이었다. 뚱뚱한 사람은 많이 먹는다는 일반화된 오류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중국 속담에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겉모습만 보고 한 사람을 판단하는 이런 보편적인 오류를 심심찮게 범하고 있다.

“쟤는 공부를 잘하니까 집안일은 전혀 할 줄 모를 거야.” “젊은 애가 무슨 돈이 있어? 부모님 돈 쓰는 거겠지.” “걔가 벌써 승진을 했다고? 빽이 있겠지.”

편견 ‘prejudice’이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praejudicium’이며, 이를 번역하면 ‘이른 판단’이라는 뜻이다. 즉 편견은 알기도 전에 상대를 미리 판단하는 행위를 뜻한다. 편견은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면 그 어디나 난무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인간은 오랜 세월 편견에 시달려왔다. 그런데도 인간은 쉽게 편견을 떨쳐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오해를 하고 편견을 갖고 있을 땐 피해자라고 자처하지만 나 또한 어느 순간 그 누군가를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상처 주는 가해자가 된 격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편견으로 대한다.

편견은 자칫 차별과 혐오로 번져지기 쉽다. 개인에 대한 편견은 집단에 대한 편견으로, 사회에 대한 편견으로, 한 민족 나아가서는 인종, 국가에 대한 편견으로 퍼져나간다. 전염병 바이러스처럼,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이 과정에서 대부분 사람은 별생각 없이 사회 구조의 현실을 따른다. 그러므로 자기들에게 편견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혹은 자각하더라도 인정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연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경멸로 홀로코스트를 주도해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했다. 이것은 편견을 폭력적으로 표출하는 최상의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편견은 소통의 부재를 의미한다. 편견은 대개 내가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판단이기에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으며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더 그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관계유지를 방해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이해에 그치고 만다. 불공평한 이런 관계는 한쪽을 피해자로 만든다.

국어사전에서는 ‘편견’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이 정의로부터 알 수 있듯이 편견에 사로잡히면 모든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좋지 못한 습관이 길러진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늘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제창했고 나 스스로는 편견을 적게 가지는 사람이라고 자처했는데 최근 들어 고객을 상대하면서 나 또한 편견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한때 나는 한국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작품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적이 있다.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하는데 그녀의 작품은 난해하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녀의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읽고 나서도 그녀에 대한 나의 인상은 바뀌지 않았다. 잘난 척하는 드라마 작가, 이게 그녀에 대한 내 평이었다.

그러다가 10년이 지난 뒤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 책의 어느 한 문장을 읽어주는 걸 듣게 되었다. 어머니에 관한 일화였는데 나의 어머니와는 많이 다른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왜 그렇게 공감이 가고 고개를 주억거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십 년 전 읽다가 어디에 내팽개쳤는지도 모를 그의 에세이집을 다시 주문했고 ‘노희경’이란 사람을 다시 펼쳐 들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삶과 사랑에 대한 그녀의 깊은 통찰력에 감탄했고 세상 모든 아픔을 어루만지려는 그녀의 인간애에 감동했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녀가 작가 지망생들에게 해준 말에 더없이 공감하게 된다.

“힘내라, 그대들……. 지금 쓰고 있다면, 지금 외롭다면, 지금 치열하다면, 지금 게으름에 분노한다면, 그대들은 분명 드라마 작가가 되는 바른길로 들어섰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건 예전에 나는 그녀의 드라마를 한 편도 제대로 시청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턱대고 이런 가혹한 평을 내렸다는 점이다. 어디에선가 주워들은 “노희경의 작품은 시청률이 낮다”라는 말에 애초부터 부정적인 시선으로 그녀의 작품을 대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 편견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시청률이 낮다고 무조건 훌륭한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 또한 편협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녀에 대한 인상이 180도로 바뀐 건 무엇 때문일까? 과연 내 마음을 쿵 하고 움직였던 그녀 어머니의 일화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와 어머니의 가슴에 수없이 대못을 박았던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해 하루에 세 번씩 백팔 배를 하던 그녀의 행동 때문일까. 십 년 전에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고 십 년 전에 나는 어머니를 잃지 않았으나 지금은 어머니를 잃었으니 부모의 부재와 화해를 다룬 그녀의 글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어서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열린 마음으로 ‘노희경’이란 사람에 대해 알고자 시도했기 때문이다.

윌리엄 해즐릿은 “편견은 무지의 산물이다”라고 말했다. ‘무지’는 아는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아는 것이 없다는 건 애초에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알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구글 AI가 30~40대 백인 중심으로 ‘사람’의 형태를 학습했다가 흑인의 사진을 보고 ‘고릴라’라고 인식한 것 또한 데이터 편향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다시 서문의 일화로 돌아가서 내가 편견을 가졌던 건 고객의 상황이나 사정에 대해 알려고 하는 마음가짐보다는 외모로 한 사람을 평가하려는 얄팍한 장삿속 때문이었다. 오늘부턴 편견을 버리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해야겠다. 가게를 찾는 고객들이 뜨끈뜨끈한 한 그릇의 마라탕으로 행복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나 또한 그것으로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필자소개
곽미란(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필명: 백한)
흑룡강성 탕원 출생, 숭실사이버대 방송문예창작학과 졸업
에세이집 <서른아홉 다시 봄> 출간
소설 <로마로 가는 길>, <이 밤은 아름다워>, <먹골에는 겨울에도 비가 내린다>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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